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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반(反)인권위원회”의 출현
강남순 교수(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Sep 12 2024 03:49 PM
한국의 인권위원회는 퇴행하는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인권위원장
강남순 교수 |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지난 10일 내가 가르치는 대학에서 상담(counseling) 분야의 교수가 "성소수자와 트랜스 사람들의 돌봄(Queer and Trans Care)"이라는 주제에 관한 강연을 했다.
온종일 이어지는 행사에서 채플 설교, 대화, 그리고 공개 강연을 한 특별행사의 주강사로 온 샌더스(Cody Sanders) 교수는 성소수자다. 그는 또한 침례교에서 안수받은 목사며, 현재 미네소타에 있는 루터 신학대학원(Luther Seminary)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샌더스 교수는 내가 나의 대학원에서 2009년부터 해오던 '이론 그룹(Theory Group)'의 멤버이기도 했다. 나의 여러 세미나를 택해서 나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이기도 하고, 나는 그의 박사논문 위원회의 한사람이기도 했다. 나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이 학위를 받고 졸업하여, 저서를 출판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것을 이렇게 보게 될 때 감회가 새롭다. 내 대학은 '젠더, 섹슈앨리티, 그리고 정의' 주제를 다루는 특별 프로그램이 있고, 이렇게 강사를 초청해서 매년 연례행사를 한다. 사실 나는 내 학교인 미국 대학의 특별 프로그램을 한국 페북에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하면서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연합뉴스
지난 6일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안창호’가 취임했다. 그가 후보자로 등장했을 때, 나는 설마 ‘인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사람이 한국의 인권문제를 대변해야 할 중대한 역할을 하는 위원장으로 임명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했지만, 그의 인권의식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가 가진 성소수자 문제를 포함하여 포괄적 차별 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보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인권위원회'가 아니라 '반(反)인권위원회'라고 해야 정확한 이름이 될 것 같다.
21세기에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교회 및 국가 공동체의 변질과 해체의 원인이 되어,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긴 행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동성애를 반성서적이고, 반사회적, 반공동체적이라고 보는 사람이 한 나라의 ‘인권’을 확장하고 보호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중책에 임명됐다는 것이 참으로 착잡하다. 어떻게 이렇게 21세기 한국이 ‘인권 후진국’으로 역주행하고 있을까.
안창호 위원장과 같은 기독교인들이나 한국 시민들은 나의 학교와 같이 미국의 주류 신학대학원에서 성소수자와 트랜스 사람들의 돌봄과 같은 주제를 이렇게 공식적으로 다룬다는 것을 어떻게 볼까. 아마 새로 임명된 위원장과 의식을 공유하는 다수의 기독교인이나 국민은, 나의 대학과 같은 학교들은 ‘문제 많은 대학'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미국, 그 미국을 ‘존경’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다수의 보수적인 시민과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그 건국이념의 토대를 이루면서 대통령 취임식 때 여전히 기독교의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국가 미국에서, 동성애자가 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을 어떻게 볼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미국을 ‘공산주의’ 나라라고 하지도 않으며,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성소수자의 인권 확장을 21세기 예수 가르침을 실천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가르치는 미국의 주류 신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고 돌아온 한국의 신학대 교수들이나 기독교 지도자들의 의식과 행동은 새로 임명된 인권위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이들을 정죄하고, 신학대 입학을 금지하고, 목회자 출교까지 시키는 ‘불의’에 침묵한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그 불의에 동조하고 교회나 신학대의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다. 이들에게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근원적인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인권 확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이들이 서서히 그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면서 역사가 그 진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인 남성만이 누렸던 참정권이 여성과 흑인들에게도 점차 확장되어 왔다. 또한 제2등 인간(the second class citizen) 대우를 받던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온전한 인간으로 제도적이며 법적 보장을 확장하는 사회로 진전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일수록 그 사회 모든 구성원 개개인이 모두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제도적이고 법적인 보호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간으로서의 권리.’ 즉 인권이 어떻게, 얼마만큼 제도적 차원에서 확장되어 있는가가 한 사회의 민도와 국가의 선진성 또는 후진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한국이 '인권 후진국'으로 줄달음질치는 현상을 보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지금도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로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무수한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2019년 7월1일, 나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여 명의 직원 대상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한 강연 제목은 '혐오·차별 시대, 인권 문해력 확장을 향하여'였다. 나는 대중적으로 사용되곤 하는 '인권 감수성'이라는 표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인권 문해력(Human Rights Literacy)'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 21세기에 인권의 범주와 그 개념은 이전보다 확장되고 세분화되었기에 지속적인 학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연 후 그 당시 인권위원회가 벌이고 있던 '마주 캠페인'을 위한 동영상을 녹화했다. 그 동영상은 2020년 4월에 인권위원회 유튜브로 소개되었다.
이제 2024년 9월부터 3년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 캠페인’이 아니라, ‘혐오캠페인’을 벌일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2019년 당시 인권위원회 건물 옆의 공간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종북 빨갱이’ 또는 ‘동성애 조장하는 국가인권위는 없애야 한다’와 같은 플래카드를 걸고 구호를 외치고, 통성기도까지 하던 기독교인들의 시위가 계속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통성기도를 인도하던 이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예수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이런 장면들이 내가 <철학자 예수: 종교로부터 예수 구하기(행성비, 2024)>를 쓰게 된 요인들이다.
한국 사회가 또한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인권 후진국’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 모두 각자, 그리고 함께 묻고 씨름하고, 그 '어떻게'를 각자의 자리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 참으로 긴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2024년 9월8일 강남순 교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angnamsoon)에 실렸던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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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인권위원회의 '마주 캠페인'에서 내가 참여했던 부분의 링크
'국가 인권 위원회 (마주 켐페인) 동영상' 2020년 4월10일
① 강남순 교수가 말하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ygCmRDvuUus
② 강남순 교수가 말하는 ‘성소수자,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sM1wIFUYlwA
③ 모두와 함께 하는 마주 캠페인
https://www.youtube.com/watch?v=dHB0UkHvh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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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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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세상 ( jayh45**@gmail.com )
Sep, 13, 12:45 PM이 좋은 글을 읽을 기회를 준 한국일보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