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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책을 읽고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Sep 23 2024 06:32 AM

이용우(언론인)


Elephant in the room이란 말이 있다. 
눈에 명백하게 보이는 문제이지만, 막상 말은 꺼내기 어려운 골치 아픈 문제를 의미한다. 
여기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예민한 주제들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학력, 출신지역, 정치적 성향 등이 그것이다.  

0…최근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란 책을 정독해서 읽었다. 
원제가 ‘Don't Think of an Elephant!: Know Your Values and Frame the Debate’인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인지언어학자(cognitive linguist)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지난 2004년에 처음 쓴 베스트셀러 서적이다. 

한국에선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란 부제를 달고 출판됐다. 
여기서 프레임(frame)이란 용어를 촉발시킨 바로 그 책이다.   
책의 핵심어인 프레임은 액자, 틀 등의 사전적 의미 외에 인지과학 용어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짜는 계획, 행동하는 방식,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프레임이다. 

0…눈을 감고 천천히 10초를 세어 보자. 
단, 그 시간 동안 코끼리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하지만 1초를 채 세기도 전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코끼리를 떠올릴 것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코끼리를 떠올린다. 

0…특히 ‘절대’나 ‘무슨 일이 있어도’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정의 어조를 강조할수록 사람은 더욱더 깊이 코끼리 생각에 빠지게 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할 때 이미 우리 뇌에서는 코끼리라는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따라서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고한다는 것, 즉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인식하고, 또 의식하진 못하지만 각자의 프레임 속에서 세상의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0…특히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하기 때문에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며 이를 재구성하는 일이 바로 사회적 변화이다.
하지만 그같은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게 아니다. 
한번 굳어진 사람의 고정관념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선거의 투표를 통해 잘 나타난다.  

0…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소위 ‘서민층’은 미국의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식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하며 자기가 '동일시 하고 싶은 대상'에 투표한다.
이래서 서민계층이 전통적으로 그들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돈과 권력을 가진 ‘부자 정당’을 찍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0…저자 레이코프는 미국 사회에서 보수진영이 어떻게 자신들의 프레임을 짜 왔으며, 어째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주의자에게 투표를 하고, 진보는 어떻게 하면 이 프레임을 부수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찰한다.
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 자체가 코끼리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코끼리라는 말을 자꾸 하려는 상대방의 의도를 무시하고 다른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진보진영이 사회적 변혁을 이루어내려면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한다. 
즉 대중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될 인상적인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구 반복해야 한다.    

0…이 책이 나온 건 20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다소 생소했던 프레임이라는 말이 지금은 사회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상대방을 내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가두어 담론에 있어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 정치세력들이 '프레임 전쟁'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언어다. 
즉, 단어는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는데 상대편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려면 상대편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프레임의 기본 원칙이다. 
미국 공화당은 이 면에서 능수능란하게 월등한 실력을 발휘한다.

0…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프레임에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한번 고착된 한국의 정치 프레임(오만과 편견)은 개선은커녕 세월이 흐를수록 도를 더해가는 것 같다.    
고정관념(편견)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한번 뇌리에 박힌 그릇된 관념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한국에서는 이 비뚤어진 편견이 정치-사회적으로 무수히 남용돼왔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과 집단에 대해 “좌파” “빨00” “00도 출신”이라는 단어만 갖다 붙이면 그 대상은 하루아침에 생매장된다.  

0…“좌파” “빨00” “00도 출신”이라는 한국의 대표적 금기어(禁忌語)는 상대방 정적(政敵)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잔혹하게 악용돼왔다. 
한국에서 이들 악질용어가 사라지는 날이 바로 편견의 프레임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될 것이다. 
가진자들의 오만과 철학적 성찰이 빈약한 집단의 사상 편견이 사라지고 상대를 존중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국엔 비로소 희망이 싹틀 것이다.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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