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뭔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21 2024 03:52 AM
‘뮤지컬 <물랑루즈!(Moulin Rouge!)> 공연이 11월 중순에 토론토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린다’는 기사를 보고, 코미디언 이주일이 출연했던 극장식 레스토랑, ‘무랑루즈’가 떠올랐다. 1980년대 초에 TV 광고를 할 정도로 대단했던 곳으로 종로 2가, 화신백화점과 YMCA 사이의 뒷골목에 있었다.
이 ‘무랑루즈’를 이주일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안병균이라는 기업인이 운영했다. 그는 중국집과 일식집 등의 요식업을 하다가 1970년대 중반에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초원의 집’, ‘홀리데인인 서울’ 등의 유흥업장을 인수해 큰돈을 번다. 그 후, 그의 고향인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의 이름을 따서 ’나산실업’으로 사명을 변경해 패션, 관광, 레저, 오피스텔, 골프장, 스포츠센터, 건설 등으로 사업을 그룹 규모로 키워 나간다. 1994년에는 논현동 영동백화점을 인수해 유통업에도 진출했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997년의 외환위기 여파를 이기지 못해 그룹이 해체된다.
1980년대, 극장식 레스토랑 '무랑루즈'의 신문광고
1980년대 초에는 이주일의 ‘뭔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라는 헤드라인의 신문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당시, 이주일은 밤의 제왕이었다. 극장식 레스토랑은 널찍한 무대가 전면에 있고 그 아래로 많은 테이블들이 배치되어 있어,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즐겼다.
야간 업소에 가수가 출연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특이하게 유명 배우들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그때도 유명 배우는 CF와 출연료, 행사 등으로 돈을 쓸어 담던 시대였지만, 그들에게 극장식 야간 업소는 또 하나의 ‘금맥’이나 다름없었다.
해외를 마음대로 나갈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연예계에서는 라스베이거스의 ‘주빌리 쇼’, 방콕의 ‘알카자 쇼’ 그리고 프랑스의 ‘캉캉 쇼’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명소가 ‘물랑루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내가 1988년에 유럽으로 연수를 하러 갈 때, 프랑스 출장을 다녀왔던 직장 선배가 ‘파리에 가면 꼭 물랑루즈에 가봐”라고 추천할 정도로 ‘물랑루즈’는 최고의 관광 코스였다.
1989년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한국인의 영순위 여행지는 단연 프랑스 파리였다. 파리를 찾는 여행객들은 낮에는 대부분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면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물랑루즈)'로 몰려갔다. 고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분위기의 관능적인 판타지 공연을 보며 문화 충격을 받는다. 상반신 나체의 댄서들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띄였고 숨소리 조차 낼 수 없었다.
‘물랑루즈’는 1889년에 문을 열었으니, 13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물랑루즈’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비운의 화가'로 불리는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1864~1901) 때문이다. 이 술집의 단골손님이었던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가 무용수들을 모델로 홍보용 포스터를 그린 것이 히트를 하면서다. 그는 남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1864년에 태어난다. 14살에 사고로 다리 성장이 멈춰 버리는 장애를 갖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를 미술학교에 보낸다. 그 후,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생계를 위해 무랑루즈의 상업 포스터를 그려주며 생활한다. 술집의 무용수나 성매매 여성들을 그리면서 자신의 장애에 대한 한을 달랜다. 매춘과 더불어 화가의 삶을 달래 주는 것은 술이었다. 잦은 폭음은 그의 건강을 빠르게 해치게 된다. 게다가 매독까지 더해지며 결국 3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이 그린 ‘무랑루즈’ 포스터.
‘물랑루주’의 카바레 쇼는 온통 붉은색인 기둥과 벽면에 붙은 홍보 포스터들은 옛 향수를 소환한다. 60명의 무용수를 비롯한 100여 명의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천벌의 의상을 입고 관능의 퍼레이드를 펼친다. 최소한을 가리고, 최대한 드러낸 도리스 걸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샴페인 반 병을 곁들인 저녁 식사가 제공된다. 화려한 색채 공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가 캉캉 춤이다. 캉캉 춤의 원조는 ‘물랑루주’가 아니지만, 캉캉 춤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곳은 ‘물랑루즈’다. 공연만을 보는 경우(샴페인 반 병 포함) 1인당 요금은 C$180 정도이다.
134살의 ‘물랑루즈’는 스타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전설적인 배우 장 가방도 이곳에서 데뷔해 잔뼈가 굵었다. 이들 중 빠트려서는 안 되는 인물이 바로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4)다. 열다섯 살부터 거리의 가수로 나서 피갈(Pigalle) 역 일대에서 이슬 맞으며 잠을 자는 고생을 하며 천신만고 끝에 스타덤에 올라 무대에 선 곳이 바로 ‘물랑루주’였다.
그녀는 ‘물랑루주’에서 막 데뷔한 신인 가수 이브 몽탕의 매니저 겸 후원자를 자처한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브 몽탕은 1년도 안 되어 스타가 된다. 스타덤에 오르자 영화계에서도 러브콜이 쇄도했다. 더 이상 피아프 도움이 필요 없자, 이브 몽탕은 그녀를 떠난다. 이브 몽탕과 헤어지고 실연의 아픔을 노랫말로 쓴 곡이 불후의 명곡,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다.
토론토에서 펼쳐질, 뮤지컬 <물랑루즈!>는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2020년엔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한 총 10개 부문에서 토니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1899년 파리, 카바레 '물랑루즈!’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다. 오는 11월 19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 CAA 에드 미어비쉬 극장(CAA Ed Mirish Theatre)에서 펼쳐진다.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