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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출신 방송인, 오샤와 시장 되다
“내 불행한 삶의 경험이 이웃을 도울 나의 밑천”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28 2024 11:09 AM
2018년 10월 22일 캐나다 지방선거에서 만 58세 노숙자 출신 정치인 댄 카터(Dan Carter, 1960~)가 온타리오주 오샤와(Oshawa) 시장이 됐다.
유권자들이 69.35%의 압도적 지지율로 그를 새 시장으로 선택한 것은, 15년여 동안 약물중독 노숙자로 살다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삶을 구원했듯이 시장으로서 실업과 약물 사태로 기진해가는 도시 경제와 시민의 삶을 되살려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샤와 시장 댄 카터. 그는 약물중독-노숙자의 삶을 극복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됐다. oshawa.ca
걸음마를 배우던 무렵 입양돼 양부모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글을 읽지 못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8세 무렵 성폭행까지 당하면서 더욱 위축됐다. 친동생처럼 그를 보살펴주던 형이 오토바이 사고로 숨지면서 그는 10대 초반부터 술을 입에 댔고 15세 무렵엔 아예 집을 나가 토론토 길바닥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91년 어느 날, 그는 노숙자 쉼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 죽겠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고 한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며 그가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던 입양 가정의 누이 모린(Maureen)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린은 그를 집으로 오게 한 뒤 몸을 쥐어박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발 정신 차려. 차라리 죽어 버리든가.”
만 31세의 그는 그 길로 중독자 회복센터에 입소했고, 동료들 앞에서 난생처음 수치심을 무릅쓰고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난독증 진단을 받았다.
약 1년 뒤 시설을 나온 그는 누이 사무실 사환으로 일을 배우며 방송국에 다니던 이웃의 주선으로 지역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자원봉사 일을 시작했다. 헌칠한 키에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그는 말솜씨도 좋아 이내 방송사 관계자의 눈에 띄었고, 점차 책임 있는 역할을 맡다가 한 채널의 쇼 진행자로 승진했다. “학교도 못 다닌 사람이 출연료(편당 75~100달러)를 받으면서 양복에 미용 서비스까지 공짜로 받는” 생활을 하게 된 거였다.
그의 인생사가 알려지면서 지역 대형 복음주의 교회가 그를 연사로 초청하는 등 삶의 외연도 확장돼 갔다. 교회 목사와 함께 자서전을 출간하고 불우이웃 돕기 모금행사를 진행했고 노숙자와 가정폭력,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프로그램 홍보와 기획, 진행을 맡기도 했다. 정치계도 그를 주목했다.
그는 2014년 더럼(Durham) 자치지구 의회 선거에 출마해 지방의원이 됐고, 의회 재정위원회 부의장과 의장을 역임한 뒤 2018년 시장이 됐다.
2018년 지방선거 결과가 발표된 직후 기뻐하는 댄 카터와 그의 아내 폴라 카터. 가족사진, cbc.ca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온타리오 호수를 따라 북동쪽으로 60km가량 달리면 닿는 오샤와는 주민 수 17만 명(2021년 기준) 남짓의 작은 도시다. 20세기 초부터 자동차 및 부품 제조단지로 흥성했던 도시는 20세기 중반 중공업이 쇠락하면서 오대호 러스트벨트의 전형적인 도시 중 하나로 전락했다. 도시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던 제너럴 모터스 공장 직원은, 그가 선거를 치르던 무렵엔 1980년대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들었고 이듬해 말 그 공장마저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실업 사태와 함께 알코올-약물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선거에서 그는 “나는 인생에서 불행한 선물을 받았지만 그 선물 덕에 나는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점을 꾸준히 상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요 공약도 도시 경제 다각화와 취약계층 의료 복지 개선이었다.
시장으로서의 그의 치적을 일일이 나열하긴 힘들고, 아직 평가를 하기엔 이를 것이다. 다만 유권자들은 2022년 재선에서도 64.94%의 지지율로 그를 선택했다. 올해 초 오샤와시는 인공지능과 증강현실, 사이버보안,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한 10개년 도시 경제개발-혁신플랜을 발표했다. 카터는 “항구와 공항, 철도 인프라와 연구 자산을 모두 갖춘 북미 최대 경제지역의 관문 도시로 오샤와만 한 곳은 캐나다 전체를 통틀어봐도 찾기 힘들 것”이라며 투자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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