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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문근영을 지우다
넷플릭스 ‘지옥2’서 광신도 연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03 2024 01:12 PM
광기 어린 모습으로 군중 현혹 시청자 “목소리로 겨우 알아봤다” 소녀·여동생 이미지 과감히 탈피 “배우로서 굶주려... 신나게 연기”
“드라마 ‘미친 여성 캐릭터’는 문근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지난 25일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시즌2가 공개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이런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원조 ‘국민 여동생’으로 불렸던 문근영이 ‘지옥’ 시즌2에서 광신도 집단의 선동가로 등장해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줘서다.
드라마 ‘지옥’ 시즌2 속 문근영(위 사진)과 그가 20년 전 찍은 영화 ‘어린 신부’ 속 모습. 넷플릭스·컬처캡미디어 제공
극에서 문근영은 얼굴에 핏기를 닮은 빨간색을 칠갑하고 한복을 입은 기괴한 모습으로 연단에 올라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라고 소리치며 군중을 현혹한다. 두 눈썹엔 백발 노인처럼 흰 깃털 장식이 줄줄이 붙어 있고, 입술은 새까맣게 칠해져 있다.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괴이한 분장에 시청자들은 “목소리 듣고 간신히 (문근영이라는 걸) 알아봤다”며 낯설어했다.
문근영이 맡은 역은 유치원 ‘햇살반’ 교사로 아이들을 돌보다 갑자기 이단에 빠져 돌변한 오지원.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득인다. 죽음을 관장하는 사자의 초자연적 처단 현장에 뛰어들어 까맣게 탄 팔을 들고 “(신이) 내 죄를 용서하셨다”며 웃는 장면에선 엽기적인 면모까지 보여준다.
지난 26일 서울 송파구 한 극장에서 열린 ‘지옥’ 시즌2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시리즈의 팬으로 참여한 봉준호 감독은 문근영의 변신에 대해 “영화 ‘펄프픽션’에서 (우마 서먼과 ‘복고춤’을 춘) 존 트라볼타처럼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치 못했던 배우의 어떤 놀라운 순간을 목격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소녀, 여동생 이미지에 오랫동안 갇혀 살았던 문근영이 틀을 과감하게 깼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옥’ 시즌2에 특별 출연으로 참여한 문근영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평범한 시민의 위태로운 모습으로 ‘지옥’ 시리즈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문근영은 2000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 아역으로 데뷔했다. “난 아직 사랑을 몰라~”라고 노래하고(영화 ‘어린 신부’·2004), 남장 여자로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을 연기하며(드라마 ‘바람의 화원’·2008) 사랑받은 그는 작품에서 ‘순수하고 풋풋한 소녀’로 오랫동안 살았다.
배우로서 ‘일탈’과는 거리가 멀었던 문근영은 어떻게 광신도 역을 맡게 됐을까. ‘지옥’ 시리즈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KBS 단막극 ‘기억의 해각’(2021)에 출연한 문근영을 보고 그를 섭외했다.
문근영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을 간호하다 똑같이 알코올 중독이 돼 비틀거리는 오은수를 연기했다. 연 감독은 “촬영 전엔 ‘문근영이 ‘햇살반 선생님’ 역에 어울리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걱정도 했다”면서 “하지만 촬영장에서 압도적인 몰입감을 보여줘 놀랐다”고 촬영 뒷얘기를 들려줬다.
문근영은 2017년 근육 통증으로 오른팔 수술을 받았다. 재활을 거친 그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꿈이 늘 있었지만 기회가 제 마음대로 주어지지 않아 배우로서 늘 굶주렸다”며 “이번에 정말 신이 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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