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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엄마의 헌신보다 제도를 믿고 싶었다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10 2024 01:53 PM

청소년지원센터 활동가 김도미씨 항암 치료 경험기 모은 에세이집 가족 내 여성이 도맡는 돌봄 노동 아픈 환자의 사회복귀 시스템 등 환자·병원·질병 둘러싼 맥락 살펴


“요즘 암은 암도 아니라더라.” “긍정적으로 생각해.” “왜 현미 밥을 먹지 않아?” “가끔 산책도 하고 그래.”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의 저자인 김도미(35)씨가 백혈병을 진단받은 후 들은 말들이다. 걱정과 애정이 깔려 있는 말이라는 걸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안다. 하지만 김씨는 이런 말들로 종종 불행했다. 환자의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긍정적인 마음 상태까지 은근히 강요하는 이런 말들에 대해 “사람들은 암 환자에게 통제적이거나 지나친 수준의 성찰과 자기돌봄을 요구한다”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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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의 저자 김도미씨. 그는 백혈병을 진단받고 난 후 경험한 이야기를 엮어 책을 냈다. 동아시아 제공

 

 

김씨는 성폭력 상담소, 청소년 건강지원센터 등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30대 중반인 2022년 6월 백혈병을 진단받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다. 책은 2023년 6월부터 2024년 1월까지 그가 뉴스레터로 쓴 암 경험기를 모은 에세이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낸 출판사 ‘동아시아’가 질병을 주제로 만든 또 다른 결의 책이기도 하다.


닭발 곰탕 뒤에 숨은 ‘돌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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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백혈병을 진단받고 난 후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렸다. 김도미씨 제공


먼 거리에 떨어져 사는 김씨의 엄마는 전화를 걸어 “엄마가 되어가지고, (아픈) 애 있는 데에 가서 곰탕도 끓여주고 그래야 하는데” “딸이 암에 걸렸는데 엄마가 가서 돌보지도 않는다고, 몸보신도 안 시킨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그래···”라며 전화로 탄식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플 때 돌봄은 대부분 가족 내 여성이 도맡는다. 유구한 한국식 가족주의, 가부장제의 단면이다. 고단백 요리인 닭발 곰탕 같은 정성스러운 항암 식단 사진을 암 환자 커뮤니티에 인증하거나 “나는 그렇게 못 해줬다”며 자책하는 댓글을 다는 것도 대개 엄마나 딸이다. 김씨는 “정성과 헌신의 이 지독한 성별성”을 지적한다. 그는 “각개전투하듯 해다 먹이는 항암식단이 아니라 제도와 관계망을 통해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씨의 암 경험기에는 가족보다 친구가 더 많이 등장한다. 부모가 돌볼 능력이 됐지만 간호간병통합 병동을 이용했다.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 후 무엇보다 위생이 중요했던 그를 위해 집을 대청소하고 소독 티슈로 구석구석 닦아준 것도 엄마가 아닌 친구들이었다. 이식 과정과 예후를 설명하는 자리엔 가족 대신 지인을 보냈다. 병원에선 “혈연가족이 아닌 사람이 교수 면담 자리에 온 경우는 고아인 경우밖에 없었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지금도 하루에 한두 끼는 간편식으로 먹는다. 엄마의 노동력을 갈아 넣지 않고 스스로 청소하고 밥을 차려 먹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타협하며 “지 쪼대로 아플 자유”를 실천하고 있다.


암 완치의 신화를 넘어서
암에 걸리고도 삶은 이어진다. 이를 위해 중요한 건 밥벌이다. 국립암센터가 2021년 발표한 ‘암환자 사회복귀 국내·외 현황’에 따르면 한국에서 성인 암 경험자가 일터에 복귀하는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는 30.5%에 불과하다. 감염, 재발 등에 대한 우려로 “나인 투 식스(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노동시간조차 아직 버거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젊고 건강한 사람만을 노동자로 상정하는 사회에서 ‘아픈 몸 노동권’”이 더 많이 이야기돼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후일담 형태를 띠는 신성한 암 극복기가 아니다. 암에 걸린 저자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환자, 병원,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세심하게 살핀다. 사소한 일에도 말 끝에 “환자분 때문”이라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간호사를 보며 “너무 자주 부당한 탓을 받아온 직업인이 택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가 아니었을까”라고 간호사의 처지를 헤아린다거나 병실에서 만났던 간호조무사를 떠올리며 ‘간호사도 아니면서 간호사인 척하는 사람’이라는 비하의 대상이 된 병원의 계급사회를 겹쳐본다. “너는 네 건강만 생각해”라는 말을 듣고도 나의 안녕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너무 많이 늘어난 일회용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고민하기도 한다. 변호사이자 배우인 김원영이 추천의 글에 썼듯 “그저 아름답거나 위안을 주는 질병 서사가 아닌, 삶과 사회를 다루는 입체적인 이야기”라는 것이 책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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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김도미 지음·동아시아 발행·360쪽. 동아시아 제공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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