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두 개의 구사일생(九死一生)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11 2024 09:13 AM
11월로 들어서자마자 구사일생을 떠올리는 두 개의 기사가 들이닥쳤다. 하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 병사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전자는 파병된 북한병사가 전장(戰場)에서 앞서 죽은 전우의 시체 밑에서 죽은 척하여 확인사살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며 파병한 북한병사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한 명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혔고, 후자는 대저택에서 사는 7가족 중 그 집안의 셋째인 11세의 여자아이가 유일하게 살아남아 범인은 죽은 작은오빠가 아니라 15세의 큰오빠라고 사건의 팩트를 말했다.
게티이미지
큰오빠가 아버지의 총기인 은색 글록으로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와 동생을 죽이고, 자신에게도 2발의 총을 쏜 후 복도로 나가서 쓰러진 어머니 아버지의 시신을 뒤적여 죽음을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 그 끔찍한 죽음의 고비에서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러 다시 온 큰오빠에게 죽은 척 하며 위기를 모면했고, 큰오빠가 경찰에 전화해서 동생(작은오빠)이 가족들을 죽인 후 자신도 자살했다고, 동생이 간밤에 불금영화를 보고 뭔가 잘못된 정신 상태였던 것 같다고 신고하는 것을 보면서, 그 틈을 타 가까스로 이웃으로 탈출하여 목숨을 건진 그 소녀는 병원에서 뒤늦게 깨어나 아버지의 총기보관 비밀번호를 큰오빠만 알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본 사실을 밝힘으로써 작은오빠를 범인으로 지목한 수사의 방향을 틀게 하는 목격자가 된 셈이다.
둘 다 지난 사건이다. 총기사건은 이미 10월 21일에 일어나 기소되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고, 북한병사의 사건도 정확한 날짜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첫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10월 25일쯤이다. 좀더 공론화하기 위해서 친 우크라이나 텔레그램 채널 ‘엑사일노바’(ExileNova)에서 10월 31일에 ‘쿠르스크에서 경고’라는 제목의 2분7초짜리 동영상을 공개하여서 눈길을 끈 사건이다. 수사는 수사당국이 이어갈 것이고, 북한 병사의 일도 국제간의 문제가 얽혀 떴다 지며 결과가 나오겠지만, 두 사건 모두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일로 소름이 돋는 일이다. 동시에 둘 다 죽은척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점에 더욱 소름 돋는다.
‘죽은 척’하는 기지? 이걸 단순히 ‘기지’라기보다 천운(天運)을 타고났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아니, ‘인명(人命) 재천(在天)’이라는 말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기적 같은 이런 일들은 이전에도 가끔 있어왔다. 전쟁만이 아니다. 삼풍 아파트 붕괴사고, 쓰나미와 지진 등에서도 그랬고, 꼭 대형사건사고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한 순간, 한 찰나의 차이로 위급한 상황을 피하게 되는 믿기 어려운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살아남은 목숨에 대한 경외감 내지는 운명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총을 쏘는 큰오빠를 기억해내고 그 행동까지도 기억해낼 수 있는 열 한 살짜리의 의지. 전우의 사체 밑에서도 살아야겠다는 본능의 발동. 극에 달한 공포를 어찌 이겨냈을까. 이래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것 아니겠는가.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본능은 나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다 있다.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죽음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왔다.
어물쩡 10월을 건너뛰어 11월로 왔고, 엄벙덤벙 가을의 복판을 건너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다잡았던 일조차도 미흡하게 느껴진다. 이 얼마나 헤슬프고 가벼운 삶인가. 단순히 헐렁해선 안 되겠다는 그 생각을 뛰어넘어 더욱 처절하게, 철저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확은 들판이나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실천하며 목표를 향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겠다.
두 사건을 접하면서, 의지부족과 게으름은 참으로 사치스러운 핑계라는 생각이 든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면서 바빠서~ 라는 이유로 실행하지 못한다.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미뤄진다. 틈새시간을 이용해서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일 텐데, 허투루 보내는 시간은 없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외출할 때마다 ‘갓 쓰다 장 파하겠다’던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저절로 꾸무적대면서 곧잘 나이 탓을 한다. 꼭 나이 탓 만일까?
이제라도 열심을 내야할 일들의 목록을 꺼내어 실천에 옮기도록 철저를 기해야겠다. 그래야 수확의 계절인 가을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니까.
이 가을, 누구라도 갓 쓰다 장파하는 일이 없도록 머뭇거리지 말라고 권하며, 특히 K문사방 식구들에겐 좀 더 철저히, 좀 더 처절하게 살아보라고, 그렇게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
권천학 | 문학컨설턴트·시인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