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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닭·마귀할멈...“길들여지지 않은 내가 여기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 외 앤솔러지 '복수의 여신'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18 2024 12:20 PM

여성 위한 출판사 ‘비라고’ 50주년 여성을 향한 15개 멸칭을 주제로 애트우드 등 작가들의 앤솔러지


“경고한다. 이 책에는 사나운 글들이 모여 있다. 여성 독자라면 각오를 하시길. 고삐는 단단히 매셨나? 신경질은 가라앉혔고? 남편에게 허락은 구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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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마거릿 애트우드. 위키미디어 커먼스

 

 

세계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여성을 향한 15개 멸칭을 주제로 쓴 앤솔러지 ‘복수의 여신’은 이처럼 서문에서부터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영국의 작가협회장을 맡았던 작가이자 코미디언, 또 여성평등당을 세운 정치인 산디 토츠비그는 이어 “이 책을 집어 든 여성은 영영 회복이 어려울지 모른다”고 덧붙인다. “눈을 혹사해 시력을 잃을 수 있고 흡수한 내용을 감당하기엔 심신이 너무 예민하여 신경이 괴이하게 곤두설 게 분명하다”는 것.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에도 주눅 들지 않고 책장을 넘긴다면 그리스 신화에서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홀리는 여자의 얼굴을 한 새 괴물 ‘세이렌’을 시작으로 기가 센 여성을 가리키는 ‘테머건트’, 나이 들어 사나워진 여성 ‘해러던’, 호랑이처럼 자녀를 엄하게 교육하는 ‘타이거 맘’ 등 여성을 대상화하는 여러 단어가 쏟아진다. 얼핏 낯설게 들리는 외국 단어지만, 한국에도 이를 대체할 말들은 얼마든지 있다. 테머건트는 ‘싸움닭’, 해러던은 ‘마귀할멈’이나 ‘할망구’ 등으로.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와 영국의 앨리 스미스, 카밀라 샴지 등의 작가들은 ‘복수의 여신’을 통해 여성 혐오 단어를 자신만의 사고와 언어로 풀어냈다.


“내가 여기 있다” 외치는 다양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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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이수영 옮김·현대문학 발행·368면,


‘복수의 여신’ 속 열다섯 명의 여성을 하나의 수식어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은 세이렌이라는 신화 속 존재나 억울하게 죽은 파키스탄 여성 귀신, 트랜스젠더, 포르노 배우, 홀아비하고만 데이트하는 여성, 노인 등 다양한 얼굴로 저마다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친다. 이들 여성의 이야기에는 인종 차별, 기후 위기, 온라인 폭력 등 오늘날의 문제점도 촘촘히 덧대어져 있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전형적인 아시아인이라는 괴롭힘을 당하는 아들을 보고 진짜 호랑이로 변해 버린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호랑이 엄마’(클레어 코다)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서 아시아계 ‘마마’와 아이들의 성취는 인종적 특성으로 그저 쥐어진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역사와 사건에서 가져온 작품도 여럿 보인다. 레이첼 시퍼트의 ‘피압제자의 격분’은 1942년 폴란드에서 나치 독일군에게 돌을 던지며 저항했던 여성들의 실화로부터 출발했다. 신문 구혼 광고에서 결혼 상대를 부지런히 찾던 하녀 ‘캐슬린’이 결국 자신을 남성에게 ‘양도’하는 대신 “30(세) 전후의 고독한 여성 저항자가 있다면, 그러한 다른 이와 우정을 전제로 서신을 나누지 않겠습니까”라는 광고를 내며 끝나는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엠마 도노휴)도 마찬가지다. 이는 1909년부터 1948년까지 다양한 신문에 페미니즘과 결혼, 동물권 등 다양한 주제의 기고를 썼던 실존 인물 ‘캐슬린 올리버’에게서 왔다.


여성 위한 출판사 ‘비라고’ 50주년 기념 앤솔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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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출판계에 저항하고자 1973년 세워진 영국 비라고 출판사 홈페이지.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부터 페미니즘이라는 목적을 명시해뒀다. 비라고 출판사 홈페이지 캡처


책 ‘복수의 여신’은 호주 출신 작가이자 비평가 카르멘 칼릴(1938~2022)이 여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세상을 알리려 1973년 세운 영국의 ‘비라고 출판사’의 5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비라고(Virago)는 남자 같은 여자, 여장부를 의미했으나 오늘날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호전적인 여자’로 통용된다. 비라고 출판사 설립 자체가 남성이 주도하는 출판 산업에서 문제적 대안이 되려는 움직임이었다. 칼릴은 한 에세이에서 “1960년대 식사 자리에서 남성들이 ‘심각한 문제’를 논의하면 여성들은 장식된 설탕 병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면서 “그 침묵을 깨고 싶었다”고 밝혔다.

잊힌 여성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비라고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출판사는 억눌린 여성의 성(性)을 공개적으로 다룬 이브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세상에 내놓는 등 침묵을 ‘당한’ 이들과 함께해 왔다. 그렇다면 ‘복수의 여신’은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여성만을 위한 책일까. ‘내가 읽을 책은 아니네’라며 넘기려는 당신에게 “이 책이 여성에 대해 점점 더 공격적으로 구는 여론과 온라인의 흐름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재밌다”고 말한 영국 일간 가디언의 평가를 덧붙인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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