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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이 아저씨의 한 마디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30 2024 10:09 AM


KMS(K문사방) 강의를 마치고 나서 뒷정리를 하는데, 머리가 띠잉~ 했다. 강의를 진행한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 나가가다 뭔가 생각이 딱 막히면서, 멍해졌다. 바고 그 순간, 경거망동하지 않았나? 회초리가 뒷덜미를 후려쳤다. 

‘어녹다’를 설명할 때였다. 설명을 잇는 과정에서 한 겨울의 대관령 황태덕장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런데 대관령얘기를 왜 했지? 어디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지? 그 이야기로 하기 전에 뭔가 분명 핵심적인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게 뭐였지? 뭐였지? 틀림없이 뭔가 내용이 담겨있었을 한데...생각이 맴돌기만 할뿐, 답이 나오지 않고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치매기운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경거망동을 저지르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더욱 짙어졌다. 

 

스크린샷 2024-11-30 090732.png

언스플래쉬

 

 

경거망동(輕擧妄動)! 

말이 많으면 저질러지기 쉬운 행동이란 생각으로 조심하며, 늘 마음속으로 금기시하는 말이어서 나에겐 좌우명과 같이 지침 삼는 말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에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온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많다. 수양(修養)이 되어서가 아니라 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책상에 앉은 채로 항상 부족한 시간에 쫒길 뿐이다. 가족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가거나 콘서트에 가는 것 외에는 외출도 없다.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온라인으로 하는 오로지 KMS(K문화사랑방)의 강의 때이다.

강의를 끝내고 나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때마다 으아해 지기도 하면서 가끔 염려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강의 중에 한 말, 했을 법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쩔쩔매고 있다. 

강의 중에 황태덕장으로 이야기가 옮겨가기 전에 분명 무슨 이야긴가를 했던 것 같은데, 이어질 무언가가 있었을법한데 생각나지 않으니 답답하다. 왜 그랬지? 뭐였지? 애써 돌이켜 생각하며 짚어본다. 되짚어보다가 이토록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나는 분명 말이 많았을 것이고 말을 많이 하다보면 경거망동이 없을 수 없지 않은가. 

건망증? ⇒ 치매? 로 이어지다가 기억조차 못하니... 우울해진다. 그 우울의 끝은 끝내 경거망동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강의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경거망동하지 말자!’ 

이 말을 새기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그날도 우리 오남매가 장기판을 둘러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대목에선가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동생들과 함께 자지러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쯧쯧, 경~망스럽긴!” 

갑자기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정미소와 제재소 파트의 기계 담당일꾼인 갑술이 아저씨의 말소리가 들렸다. 토방에 선 채 마루에서 장기놀이에 빠져있는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어리둥절, 올려다보았다.     

“큰 공주 말이야.” 

이어 쯧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비웃는 듯한 갑술이 아저씨와 눈길이 마주쳐졌다. 그것은 나를 향한 확인사살이었다. 

그 찰나, 총알이 되어 나의 심장에 박혔다. 

모멸감과 불쾌함과 부끄러움과... 그런 것들이 뭉쳐져 나는 후끈 달아올랐다. 숯불을 뒤집어쓴 듯, 너무나 창피해서 화를 내기는커녕, 되묻거나 항의할 염도 내지 못한 채, 무렴 당 한 그 순간을 불에 덴 듯 아무 말도 못한 채 넘기면서, ‘절대로 경망스런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결심이 총알 박힌 심장 깊숙이 박혔다.
  
철없던 그 시절, 그렇게 내 안에 박힌 경계어(儆戒語)가 된 후 지금까지 나의 마음속 저 아래편에 내색 없이 배어 있다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나를 감시하는 감시관으로, 나의 행동을 간섭하며 좌지우지하는 생활방침으로 회초리를 휘두르곤 했다. 

그렇게 나의 일생을 관통해온 채찍 중의 하나가 된 경망(輕妄), 경거망동(輕擧妄動)! 

어쩌면 지금쯤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를 ‘갑술이 아저씨’, 한 번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처음엔 미웠고 차차 고마워졌다. 나의 삶에 있어서 행동 지침을 깨우쳐 준 어른이었다.

사는 동안 당황스럽고 다급한 일이 어디 한 두 번일까. 더구나 부족한 점이 많은 내가 어찌 항상 침착할 수만 있었을까. 크든 작든, 아무리 조심하며 살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망스럽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고, 또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조심한다고 하는데... 

오늘 강의에서 내가 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뜻밖의 일로 그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으니 혹시 경거망동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단순히 무거워지는 것만이 아니라 혀끝을 잘라 내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고 아직도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어 우울해진다.  

나이는 자꾸 쌓여만 가는데, 

나는 언제 경거망동(輕擧妄動)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을까
 

 

스크린샷 2024-10-31 145840.png

권천학 | 문학컨설턴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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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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