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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日 시골집서 ‘선원전 현판’ 처음 발견”
대들보에 매달아 보관해 홍수 등 훼손 막았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6 2025 12:41 PM
김성연 구루시마 다케히코 기념관장 日 현지서 현판 추적 과정 기록한 ‘아니다 거기 있었다’ 지난해 출간 “다시 사라진지 7년 만에 환수, 감격 100년간의 자취 고증 사료 될 것”
어떤 이야기는 야사(野史)가 정사(正史)를 압도한다.
최근 국가유산청이 100여 년 만에 일본에서 환수한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현판의 숨은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일본 오이타현에서 현판을 마주한 김성연(47) 구루시마 다케히코 기념관장 이 10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현판의 사연을 담은 책 ‘아니다 거기 있었다’를 최근 냈다. 100여 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귀향하기 전까지 일본 땅에서 겪은 현판의 비사다.
2016년 일본 오이타현에서 경복궁 선원전 현판을 발견한 김성연 구루시마 다케히코 기념관장. 본인 제공
시작은 우연이었다. 문학 전공자인 김 관장은 2016년 연구차 찾은 일본 야마구치현의 도서관에서 ‘조선총독부’ 자료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반복해서 나오는 이름 중 하나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였어요. 뭔가가 있구나 싶었죠.” 야마구치 출신인 데라우치와 관련된 자료를 살피다 집어든 책의 뒷표지에는 ‘조선관 앞에서 미야노 지역 사람들과 찍은 집합 사진’이라는제목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 속 건물 표지판에는 ‘경복궁의 일부를 철거해서 이건했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이미 건물은 1951년 폭풍우에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조선관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몇 달을 헤매다가 포기하려던 찰나 당시 현장을 수습한 건설업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스쳤어요. 전화번호 100개를 들고 수소문해서 어렵게 찾아낸 지역의 한 업체 창고에서 발견한 건, 뜻밖에도 ‘선원전’이라는 금색 한자가 쓰인 거대한 현판이었죠. 그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요.”
책은 경복궁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전각의 현판이 일본 시골집 창고 천장에 매달리게 된 사연을 상세히 다룬다. 그에 따르면 당시 조선관의 잔해에서 소장자의 증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현판을 수거했고 대를 이어 보관했다. 폭풍우나 홍수를 대비해 창고의 대들보에 매달아 놓은 덕분에 현판이 65년간 훼손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 “조선 왕의 어진을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眞殿)의 현판 이 이렇게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슬프고 감격스러웠어요. 그 뒤로 밖에서 한번 더 볼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나 온전한 모습에 웃음도 나고 마냥 좋기만 하더군요.”
이후 선원전 현판을 옮겨온 데라우치에 대해 파고들다 그의 태생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놀랍게도 데라우치는 백제에서 야마구치로 망명한 임성태자를 섬기는 절에 같이 살던 부하의 후손이었어요. ‘조선이 뿌리’ 격인 선원전 현판을 고향으로 옮겨온 이유도 데라우치 개인이 정체성을 조선에서 찾았던 데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김 관장은 이후 다시 소장자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건물이 철거돼 현판의 행방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현판이 곧 세상에 나올 것을 직감했다. 200일간 홀린 듯 현판을 쫓았다. “언젠가 선원전 현판이 다시 세상에 나오면 100년 동안 잊혀 있던 자취를 고증하는 사료(史料)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자비를 털어 책을 낸 이유다.
선원전 현판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23년 1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경매에 나왔다. 경매 전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인쇄물에 현판이 실려 있다는 연락을 받고 경매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한국 정부가 환수한 후였다. 무릎에 힘이 탁 풀렸다. “지난 몇 년간 갈증과 애달픔이 한 번에 가라앉은 느낌이었죠. 이렇게 신속하게 문화재를 찾아 환수한 국력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국내로 들어온 현판은 27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후 2030년 경복궁 복원에 맞춰 제자리를 찾는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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