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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면 대통령실 국민청원부터?
"조선시대도 그랬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6 2025 11:06 AM
[임용한 대표·노혜경 교수 인터뷰] ‘형사법 중심’ 법문화 고찰 보고서 조선의 ‘민사 억제’ 지금까지 지속 법은 상벌 수단, 소송은 안정 위협 공권력으로 소송 종결 비일비재 “최고 권력자에 민원 폭발적 반응 사법제도가 한계 달했다는 증거”
한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란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 지 10년도 더 됐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개인 간 합의와 소송 대신 형사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21년 22만여 건이던 고소 사건은 매년 증가해 지난해 30만 건을 넘었다. 법무연수원은 고소·고발에 매달리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법제도 개선에 참고하고자 ‘한국 현대사회의 형사법 중심 법문화 현상에 대한 역사적 원인 고찰’을 주제로 연구용역을 맡겼고, 최근 보고서가 완성됐다.
임용한(오른쪽)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와 노혜경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교수가 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류기찬 인턴기자
보고서는 형사 중심 한국 법문화의 기원을 조선시대에서 찾았다. 성리학 기반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라는 국가 체제와 사회경제관이 민법의 발달을 막았고, 그런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수행한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와 노혜경 호서대 혁신융합학부 교수는 5일 한국일보와 만나 “해결이 안 되면 고소하고 국민청원을 제기하며 국가가 처벌해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조선시대와 너무 닮아 있다”고 짚었다.
“외지부 옥씨, 실제였으면 3000리 유배”
저자들은 조선시대에 형사가 민사보다 발달한 원인을 크게 2가지로 요약했다. ①당시 법은 국가가 백성을 다스리는 상벌 및 교화 수단으로 여겨져 민간의 사법 관여가 제한됐고 ②성리학 예법론에 따라 소송은 국가 안정을 위협하는 부정적 요소로 인식됐다. 특히 ‘농본억말(농사를 근본으로 하고 상업·수공업은 억제함)’ 사상에 기반해 이권 분쟁이 대다수인 민사소송은 더더욱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임 대표는 “세계적으로 상공업, 무역이 먼저 발달한 곳에선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자연스럽게 민사제도가 발달했는데 조선은 일찍이 원재료 조달부터 제품 유통까지 상공업 전 과정을 정부가 장악해 이런 기회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인식은 민사소송 자체를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표적 사례가 수령의 인사고과 항목 ‘수령 7사’에 포함된 “사송(민사의 소송)을 줄인다”는 항목이다. 국가에선 명판결보다는 고을에서 발생하는 분쟁이 소송까지 오지 않도록 해결하는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국가가 공권력으로 소송을 강제 종결하거나 ‘도덕적 잘못’을 문제 삼아 형사처벌하고 소송을 무산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주인공 옥태영(임지연)이 외지부로 등장한다. JTBC 제공
전문 법률가인 ‘외지부’는 탄압 대상이었다. 최근 인기를 끈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주인공은 소송 능력이 탁월한 외지부로 등장하는데, 노 교수는 “현실이었다면 최소 3,000리 밖 유배형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경국대전에선 “본인 일에 대해서만 소송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문서 사기와 조직 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범죄가 등장해 외지부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정부는 여전히 활동이 적발되면 중형에 처했다. 노 교수는 “정부가 국가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소송 제도, 수사 전문기관, 변호사 제도를 발전시킬 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빗발치는 국민청원은 사법제도 한계라는 증거”
기존 사법체제로는 백성들의 갈등을 해소할 수 없게 되자, 조선은 제도 정비 대신 왕에게 직접 민원하는 제도를 활성화했다. 대표 사례가 ‘격쟁’(억울한 사연을 호소하기 위해 궁궐이나 왕의 행차 길에 징·꽹과리를 치는 행위)이다. 격쟁은 불법이라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조금씩 제한이 풀리며 늘어났다.
‘직접 민원’을 민권 발달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임 대표와 노 교수는 조선의 중앙통제적 사법체제 실패를 보여 주는 고육지책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왕 앞에 가기까지 시도한 모든 사법적 수단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삼심제, 일사부재리 원칙이 있었지만 왕이 민원을 받아들여 재조사를 명령하면 원칙은 무시됐다.
임 대표는 최근 청와대와 대통령실 국민청원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헌법소원이 쏟아지는 것도 한국의 사법제도가 한계에 달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법제도 내에서 개인의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조선 후기처럼 폭력에 호소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민사와 형사를 두 다리에 비유한다면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한 다리로만 성장해온 건데, 다리가 길어질수록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 늦었지만 뒤처진 민사제도를 발전시키고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이전의 법문화를 고수하면서 쇠락할지, 한국은 지금 중요한 시험대 앞에 서 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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