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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리판으로 가고 있는 ‘정직한 야만의 시대’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2 2025 05:34 PM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행정부를 시작하자마자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주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당신은 카드가 없다”라며 힘이 최강인 미국은 카드가 많고, 그래서 모든 협상에서 이겨야 한다. “어리석은 과거 대통령들은 잊어라. 미국은 이제 봉이 아니다. 이제 그동안 뜯긴 것을 되받아내야 한다.”라며 젤렌스키를 몰아붙였다.
지난 3월 7일에는 “캐나다는 오랫동안 우리를 착취해 왔다. 특히 목재와 유제품에서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지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가 미국산 유제품에 최대 250%의 관세를 부과하며 목재에도 “엄청나게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며 이에 상응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유예를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캐나다산 목재와 유제품에 대해 250% 관세를 경고한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언행이라고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그의 몰염치와 비상식적인 행위는 국제 사회에서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외교 전략에 대해 서울대 통일 평화연구원 이문영 교수는 국제 질서가 ‘우아한 위선의 시대’에서 ‘정직한 야만의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이라 말한다. 이제는 강대국들의 노골적인 이익 추구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어린이들이 야생의 섬에서 어떻게 야만인으로 변해가는지 과정을 그린 영화다. Columbia Pictures
되살아나는 폭력, ‘정직한 야만의 시대’라는 화두를 들으며,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1990년에 미국에서 제작된 모험, 드라마, 스릴러 영화다. 1954년에 발표된 영국의 작가, 윌리엄 골딩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은 이 책의 명성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제 막 대여섯 살부터 열두 살에 이르는 어린 소년 15명이 2차 세계 대전 중,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무인도로 떨어진다.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어린 사관생도들이 야생의 섬에서 어떻게 야만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금세 적응하고 섬에서 살아 나갈 규칙을 정한다.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누는데, 뿔소라를 든 사람만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 아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먼저, 리더 랠프(Ralph)는 아이 중 계급이 가장 높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이다. 봉화를 피워 연기를 올려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구조’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러한 리더십으로 아이들은 랠프를 대장으로 뽑았고 회의를 주최하고 아이들을 이끌어 간다.
잭(Jack)은 성가 대장이었지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섬 안에 있는 멧돼지를 잡는 데 혈안이다. 랠프는 잭의 의견을 존중해 사냥부대를 이끌게 했고, 산 정상에 봉화를 지켜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임무를 맡겼다. 불은 지나는 선박에 의해 구조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리는 수단으로, 구원의 한 줄기 희망이었다. 마침, 구조 헬리콥터가 섬을 지나가는데, 잭과 아이들이 사냥하느라 봉화를 살피지 않아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없었다. 랠프는 잭을 질책했고, 결국 그와 싸운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극한 상황에 처해지면, ‘우아한 민주주의’가 ‘야만의 권위주의’에 의해 파괴 되곤 한다. Rex/Shutterstock
잭은 랠프의 통솔을 거부하며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데리고 떠난다. 잭이 이끄는 사냥부대는 이후로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토인을 흉내 내는 춤을 췄다. 잭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바위에 묶거나 매질을 가하는 방식으로 집단을 다스린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은 점점 일을 하지 않고, 랠프의 무능력을 지적하는 아이들까지 나타난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둘 잭의 무리를 향해 가 버린다. 결국 랠프에게는 몇 명만이 남고, 잭에게는 다수의 아이가 모인다. 잭에게 가면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아한 민주주의가 야만의 권위주의에 의해 파괴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극한 상황이 처했을 때, 야만인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잭과 아이들은 폭력적으로 변해 랠프와 남아 있던 피기(Piggy)에게 커다란 돌을 굴려 버린다. 무슨 말을 하기는커녕 신음을 낼 틈도 없이 피기는 바위와 함께 허공으로 떨어져 죽는다.
아이들을 편으로 가르고 다른 한편에 서게 하고 잭을 따르게 하는 그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야만적인 폭력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자신은 해결하지 못하는 공포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누구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권위를 손에 쥐고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 길이 야만으로 대변되는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며 광기 어린 세상인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있던 무인도가 아니더라도, 요즘 세상을 보면 ‘야만의 시대’라는 표현이 딱 맞지 싶다. 얼핏 보면 국익을 위한 리더의 행동 같지만, 그저 이익에 따라, 일관된 입장 없이 정세에 따라 말을 바꾼다
트럼프는 국제 규범을 위반한 러시아를 편들고,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협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관계를 회복한 후, 중국을 고립시키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싶다. 하지만, 푸틴과 시진핑 그리고 김정은은 벌써부터 연대해 ‘야만의 시대’를 이끌어 왔다.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들이 아니다.
“미국이 지난 80년간 이룩한 세계 질서를 버리고 있다. 강대국 정치의 시작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연 것이며,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미국의 전 국가정보국 부국장 베스 새넌 (Beth Shannon)은 비판했다.
통일 평화연구원의 이문영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던져준 교훈은 국제 질서의 변화가 얼마나 급격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움과 증오를 부추기는 자들이 승리하는 세상 될 것 같아 걱정스럽고 불안하다”라고 말한다. ‘아사리판’으로 가고 있는 ‘정직한 야만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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