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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불러준 <오 캐나다(O Canada)>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09 2025 06:00 PM
한국에 살던 딸과 두 손녀들이 지난해, 토론토로 와서 5개월간 같이 지냈다. 사위가 미국으로 발령받아 가족들의 이주 정착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딸아이는 교육 걱정 때문인지, 그새를 못 참고 첫째 손녀를 사립 초등학교 2학년에 입학시켰다. 손녀의 ‘운전병’ 노릇을 하던 나는,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며 내내 안쓰러워했다.
학교 공부는 따라갈지, ‘혹시 왕따당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손녀는 물어볼 때마다 ‘너무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하엘아,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하고 물으면 “몰라, 친구들하고 놀았어” 한다. 속으로, ‘뭐라고, 비싼 돈 들여 학교 보냈더니 놀았다고?’하며 씁쓸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오 캐나다>가 흘러나오는데 하엘이가 따라 부르는 것이다. “O Canada!/ Our home and native land!/ True patriot love in all of us command~” 참, 신기한 일이었다. 왠지, 캐나다 할아버지의 국가를 부르는 것이 뿌듯했다. 허투루 쓴 등록금이 아니지 싶었다.
캐나다 국가(國歌)는 <오 캐나다(O Canada)>다. 원래 이 곡은 1880년에 칼릭사 라발레(Calixa Lavallée)가 퀘벡 주에서 살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 그러다가 정확하게 100년 후인 1980년에 캐나다의 국가로 지정되면서, 캐나다 연방 모두를 상징하는 노래가 된다.
〈오 캐나다〉의 영어 가사는 프랑스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어서, 원곡의 가사와 약간 차이가 있다. 국가가 현재의 〈오 캐나다〉로 바뀌며, 기존의 국가였던 영국 국가인 〈신이시여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는 왕실의 노래(Royal Anthem)가 되었다.
‘퀘벡 주는 20세기 초부터 〈오 캐나다〉를 프랑스어로 부르지만, 퀘벡인을 상징하는 노래는 사실 따로 있다. 퀘벡 분리주의 진영에서는 1975년에 만든 <Gens du pays(나라의 사람들)>이 비공식 국가(國歌) 역할을 한다. 이 노래는 퀘벡의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질 비뇨(Gilles Vigneault)가 작사 및 작곡을 했다.
퀘벡인은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 문화가 있지만, 실제 프랑스 사람과는 차이가 많다. 프랑스어를 사용한다고 모두 프랑스계 조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등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퀘벡 주의 28.9%가 프랑스계이고 퀘벡의 캐네디언이 60.1%라고 한다.

오 캐나다(O Canada)>는 원래 1880년에 칼릭사 라발레(Calixa Lavallée)가 퀘벡 주에서 살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을 위해 만든 노래였다. ⓒNorthern Lights Films
프랑스인이 캐나다에 처음 온 것은 1534년이고 1763년 파리 조약 이후, 캐나다가 영국령이 되며 그들은 퀘벡인으로 독립적인 권리를 인정받는다.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스스로 프랑스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행사 때마다 <오 캐나다> 뒤에 <애국가>를 부르는 우리 한인들처럼, 퀘벡에서 프랑스인 모임 때 <프랑스 국가>를 부르는 일은 없다.
퀘벡 주로 이민 오는 사람은 주로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는 나라인 모로코, 알제리, 레바논, 튀니지,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이다. 소수의 프랑스 이민자는 주로 젊은 직장인과 유학생들이다. 특히 몬트리올 대학교를 보면 상경, 이공계의 경우 전체 학생의 30%가량이 프랑스 국적 학생들이라고 한다.
퀘벡 주와 프랑스는 오래된 역사만큼 관계도 깊다.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퀘벡이 낳은 세계적 스타, 셀린 디온이 개막식 피날레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파리의 에펠탑 위의 무대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샹송인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사랑의 찬가’를 열창했다. 세계는 캐나다와 프랑스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국가 대표 선수들이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Jana Chytilova/NHLI via Getty Images
셀린 디온이 노래하기 바로 전, 센강 곳곳 숨겨져 있던 구조물에서 ‘여성들의 황금빛 동상’이 차례로 떠올랐다. 이들 6명의 동상이 떠오를 때, 34명의 여성 합창단이 가수 액셀 생 시렐과 함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곡은 세계 최초로 법으로 정해진 국가다. 경쾌한 행진곡풍의 노래는 사실 무시무시한 가사 내용을 지니고 있다.
가자, 조국의 자녀들아,/ 영광의 날이 왔노라!/ 우리에 맞서 저 폭군의/ 피 묻은 깃발이 올랐도다, (반복)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고함치는 흉폭한 적들의 소리가?/ 그들이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다,/ 그대들의 처자식의 목을 베러! <후렴>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대오를 갖추라,/ 전진, 전진!/ 저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노래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한 직후인 1792년 4월에 작곡되었다. 프랑스군이 부를 행진곡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혁명군 공병대 장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클로드 조제프 로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이 <라인군의 군가>를 작곡하였다.
금지와 복권이 반복되던 이 곡은 최종적으로 1879년에 정식 국가로서 채택된다. 그런데 2013년, 대 반전이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 귀도 리몬다(Guido Rimonda)가 조반니 비오티(Giovanni Viotti)의 작품 중에서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과 같은 곡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주제와 변주 C장조>의 악보를 발견한 것이다.
‘프랑스 국가가 비오티의 선율에 가사를 붙인 표절이다’라고 이탈리아 언론이 밝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인들은 경악하고 낙담했으나, 확실한 증거인 악보가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리몬다가 주장하는 표절곡의 악보 표지에 ‘1781년 작곡’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라 마르세예즈> 보다 이미 11년 전에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프랑스 언론은 다른 의견을 냈다. ‘표지는 나중에 붙여진 것으로 보이고 1795년에 출간된 비오티의 <변주곡들> 악보에는 ‘아래의 사중주곡은 결코 내가 작곡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석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실이 무엇인지, 서로 공방을 하지만, 나 같은 이방인이 화두를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주제다. 어찌 됐든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유와 애국심의 상징이 된 <라 마르세예즈>는 오늘날에도 프랑스 국가로 크게 사랑받고 있다.
국가(國歌)란 한 나라의 상징이고 마음을 하나로 묶는다. 그래서인지, 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 경기 때마다 〈오 캐나다〉를 들으면, 왠지 뭉클하고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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