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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강녕(壽福康寧) vs 복수강녕(福壽康寧)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Apr 24 2025 02:33 PM
얼마 전, 몇 군데에서 이 계절에 맞는 시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시, 시조, 수필 등을 쓰는 <K문화사랑방>의 식구들에게도 계절에 맞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뤄오고 있던 터여서, 마침 잘됐다 싶어 곧바로 나의 ‘시 창고’에서 몇 편의 봄시를 골라내어 슬라이드 작업을 시작했다.
<춘분(春分)>, <조춘(早春)> <봄 예감>... 그리고 <수복초(壽福草)>였다.
지난 회에 <『수복초(壽福草)』를 제안(提案) 한다!>라는 글로 복수초의 이름을 ‘수복초’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긴 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문화사랑방> 식구들에게는 이미 한 말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진지하게 듣는 지 모를 일이다. 그렇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더하여, 이 기회에 미처 별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인식을 바꿔보면 좋겠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름으로 불러왔다.
오십년도 넘는 그때, 당시의 대표적으로 꼽히던 잡지에서 ‘복수초’라는 제목의 눈이 부신 화보사진에서 처음으로 본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복수초일까! ‘복수초’보다는 ‘수복초’가 더 우리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영향력은 부족해서 그저 나만의 생각일 뿐, 어쩌다 이야기를 트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만 나누었던 이야기였고, 해마다 봄철이 되면 떠오르는 안타까움이었다. 이번 봄에도 여전히 그 생각이 도져서 끄집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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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때 일본 통치하에서 억눌리고 많은 것을 빼앗긴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이라는 미명아래 ‘일본 황제의 통치하에 드는 영광된 국민’이라는 뜻의 ‘황국신민’이 되게 하는 그들의 국책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과 성(姓)을 강제로 바꾸게 했다. 그것이 곧 창씨개명이다. 그러나,
지울 건 지워야한다.
바꿀 건 바꿔야 한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은 싹이 트고 살을 올리며 살아났다. 우리의 선대(先代)들은 일본의 우리민족 말살정책에 온갖 고초를 겪으며 견디다가 해방이 되긴 했지만 그런 와중에 일본의 잔재가 우리의 생활이나 의식 속에 스며 이전(移轉)되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 속에 스민 일본의 잔재는 곳곳에 있다. 여전히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이슈로 활용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프레임을 마치 정치담론처럼 써먹는 정치인들은 작은 꽃 이름에 스며있는 친일을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글을 쓰고 문화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우리의 전통 문화의식에 맞게 말하고 쓰는 것은 우리의 문화전통을 따르고 잇는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수복초’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을 ‘역(逆)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한 이유이다.
‘복수초’라는 이름조차도 일본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되고, 우리 역사의 상처를 그대로 상기하게 만드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만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식물에게도 이름이 중요하다. 기왕이면 우리 정서에 맞고 자연스러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글자 한 자(字) 바꾸는 일이 뭐그리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대수라고 생각한다. 대수? ‘대단한 것,’ 또는 ‘최상의 일’이라는 사전적 풀이이다.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새해맞이 가족모임이나 어른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향연(饗宴)에서 ‘수복강녕(壽福康寧)’이란 말을 쓴다. 벽장식 문구나 주렴(柱簾), 병풍에도 베갯잇 수(繡)에도 사용한다. ‘복수강녕(福壽康寧)’이라고 하지 않는다.
수복강녕과 복수강녕을 입에 올려 뇌어보시라. 느낌이 다를 것이다.
수복초(壽福草) vs 복수초(福壽草),
수복강녕(壽福康寧) vs 복수강녕(福壽康寧)
맞지 않는 이름은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글자 한두 자(字)를 자리바꿈 하여 우리의 정서에 더 잘 맞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전통을 잇는 일이기도 하고, 국민정서를 순화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역사의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일이 되기도 한다.♠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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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