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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배고프다? 짜장면 2.5배 오를 때 글값 곤두박질
책 ‘작가노동 선언’ 기획 안명희 작가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11 2025 06:52 PM
원고료·인세 관련 불공정 계약 만연 출판사, 작가 착취 통해 이윤 얻어 작가=노동자 ‘작가노조’ 출범 앞둬 “작가한테 사회안전망 적용되면 모든 불안정한 노동자 나아질 것”
2025년 글값은 얼마일까. 20년간 글을 써온 은유 작가는 최근 한 출판사로부터 ‘200자 원고지 15매 분량’에 ‘20만 원’을 제안받고 청탁을 거절했다. 20년 전 고료와 같아서였다. 매당 1만3,000원. 3,000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이 2.5배(7,500원)나 오르는 동안 글값은 되레 곤두박질친 셈이다.
안명희 작가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노조준비위원회 작가 21명이 글을 쓴 '작가노동선언'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작가노조준비위엔 시, 소설, 웹소설, 칼럼·에세이, 번역, 평론·비평, 그림·일러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집필노동자 60여 명이 모여 발족을 준비 중이다. 최근 첫 노조위원장으로 오빛나리 작가가 선출됐다. 남동균 인턴기자
이 같은 ‘글 쓰는 노동’ 현실을 고발하는 ‘작가노동선언’이 출간됐다. 책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착취당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고, 노동과 예술을 별개로 보는 이율배반적 시선에 일침을 가한다. 작가노조를 처음 제안한 안명희 작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기획하고 작가노조준비위원회 소속 작가 21명이 글을 썼다. 안 작가를 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만나 출범을 앞둔 작가노조의 계획과 과제에 대해 물었다.
작가들은 원고료와 인세 관행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안 작가는 “노조가 출범하면 지금까지 작가들이 안 했던 돈 얘기를 하게 될 것”이라며 “업계엔 원고료와 인세와 관련한 불공정 계약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작가들이 기존의 작가협회나 단체가 아닌 작가노조를 만들어 법에 근거한 교섭과 투쟁이 필요함을 느낀 이유다.
황모과 작가는 책에서 전업 작가 6년 동안 약 40개의 저작계약서에 사인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표준계약서와 동일한 조건의 계약서를 초안으로 제시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①인세 10% 이상 ②전자책 인세 최소 35~50% 이상(제작^관리 비용이 종이책보다 낮기 때문에 더 높다) ③2차 저작 및 번역권에 대해 출판사에 위임하지 않음과 같은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안명희 작가는 작가가 생활고를 호소하면 "주변에서 '예술은 원래 배고픈 거야'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와 같은 말들을 한다"며 "내가 일을 선택했다고 해서 부당한 노동 조건을 감수해야 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남동균 인턴기자
최근에는 더 교묘해졌다. 출판계약서에 ‘중쇄시, 중쇄분 인세를 다음 인쇄시 지급하도록 한다’는 항목이 최근 생겼다. 예를 들면 2쇄를 1,000부 찍었는데 이 중, 900부만 팔렸다고 치자. 그럼 3쇄를 찍을 때까지는 900부에 대한 인세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쇄를 찍을 때 인세를 선지급하는 게 상식인데, 출판사가 재고 관리 리스크를 저자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안 작가는 “인세도 20년 전 근거 없이 10%로 책정돼 그대로인데, 이마저도 신인들은 8%로 깎이기도 한다”며 “출판사가 작가들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얻고 있다”고 일갈했다.
작가노조준비위원회 소속 작가들이 지난해 6월 서울 강남 코엑스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작가에게 날개를 달아주자'는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작가노조준비위 제공
작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노동자)가 아니다. 법에 명시된 근로시간, 임금, 근로계약, 휴일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안 작가는 작가노조를 출범해 글을 쓰는 노동도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가노조준비위는 최근 오빛나리 작가를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연내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노조가 출범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안 작가는 “노조법에 근거가 있느냐, 작가가 (법적) 노동자가 맞느냐, 원고료를 임금으로 볼 수 있느냐, 대한출판협회가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느냐, 이런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라며 “노동의 형태는 계속 바뀌는데 기존 법 체계로 따지면 작가들은 다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노동법은 50년 전 만들어진 건데, (이를 적용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작가들은 현재 모든 노동관계법에서 배제됐다”며 “작가들에게 법이 적용되면 우리 사회의 웬만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나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가노동선언·작가노조준비위원회 지음·오월의봄 발행·220쪽·1만6,800원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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