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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21 2025 05:23 PM
5월의 트레일을 걷노라면 나무와 풀들이 파릇파릇 치장하느라 바쁘다. 이 초록들은 언제 활짝 피었다가, 언제 져야 하는지를 어떻게 알까? 생물학자들은 ‘식물이 비슷한 시기에 싹을 틔우는지’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식물은 온도와 해가 떠 있는 시간 등의 여러 조건을 감지해 싹을 틔운다고 한다. 여기에 호르몬과 유전자, 다양한 물질의 작용이 관여한다. 이렇게 여러 조건이 합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지만 어렵게 피운 꽃도 대개 금방 지게 마련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열흘 이상 피어 있는 꽃은 드물다. 벚꽃이나 개나리는 2주를 버티지 못한다.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 목련도 일주일이면 꽃이 다 떨어진다. 길에 피는 들꽃들도 지난주에 보이던 꽃들이 벌써 져서 흔적조차 없어지기도 한다.
나는 ‘베스트뷰 트레일(Bestview Trail)’이라는 곳을 자주 걷는다. 이 길은 노스욕 근처에 위치한 포장 산책로인데, 가족들이 함께 걷기 좋은 곳이다. 스틸스(Steeles Ave East)와 로렐리프 로드(Laureleaf Road South)의 샤퍼스 드럭마트 (shoppers drugmart) 옆(홍콩반점이 있는 플라자)에 주차하고 남쪽 방향으로 가면 ‘베스트뷰 파크(Bestview Park)’ 사이로 트레일 길이 보인다. 이 트레일을 따라 계속 걸어 남쪽으로 가면 ‘이스트 돈 파크랜드 트레일(East don parkland trail)’까지 연결된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체력에 따라 걷고 돌아오면 되기에 겨울철이나 비가 오는 날에 걸으면 좋다.
이 트레일 초입에 오래된 단독 주택들이 여럿 나란히 있다. 동네가 연륜이 있으니, 자연히 사는 주민들도 나이가 지긋하시다. 이런 주택들의 정원은 대개 특별히 꾸미지 않은 듯 검소하게 잘 가꾸어 놓았다. 이 동네를 지나며 정성으로 가꾸어 놓은 수목과 꽃들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푸쉬키니아(Puschkinia)’는 키가 약 10-15cm까지 자라고 꽃잎은 마치 별 모양 같다. 흰색 바탕에 각 중앙에 옅은 남청색 줄무늬 선이 잘 어울려 색이 매우 신비롭다.
3주 전, 어느 집을 지나는데 정원수 밑에 ‘푸쉬키니아(Puschkinia)’가 무더기로 20여 개가 피어 있었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다른 꽃들은 나올 엄두를 내지 구 못했을 텐데, ‘너희는 용기를 내어 나왔구나’ 싶었다. 올망졸망한 모습이 귀여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푸쉬키니아(Puschkinia)’는 키가 약 10~15cm까지 자라는 작은 구근 식물이다. 꽃은 이른 봄에 나며 꽃 한 자루에 3~6개의 꽃이 피고, 꽃잎은 마치 별 모양 같다. 흰색 바탕에 각 중앙에 옅은 남청색 줄무늬 선이 잘 어울려 색이 매우 신비롭다. 배수가 잘되는 땅이나 나무 밑 서늘한 곳에서 잘 자란다.
추위에 워낙 강한 품종이라 고국에서는 ‘시베리아 무릇’이라고 불린다. 구근은 10월부터 2월 사이에 심고, 꽃은 3월부터 5월까지 핀다. 잔디가 나오기 전에 푸쉬키니아 꽃을 볼 수 있으며 꽃이 지고 나면 잔디가 감쪽같이 위를 덮는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이미지가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르헨티나 국기와 비슷했다.
나는 지난해 겨울부터 이 길을 매주 목요일마다 걷는다. 목요일은 아내가 교회에서 라인댄스를 배우는 날이어서 내가 운전기사를 한다. 겨울철이 되면서 길이 미끄럽고 조심스러워 바래다 주기 시작했지만, 나도 근처 트레일 걷는 일에 재미를 붙여 날이 풀린 요즘에도 계속하고 있다.
트레일을 걷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 같지만, 사실 오만가지 잡스러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궁리도 있게 마련이다. 딴생각에 빠져 걷다 보면 주위의 경관도 무심히 지나치게 되고, ‘언제 여기까지 왔지?’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무스카리(Muscari)는 봄에 항아리 모양의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핀다. 포도색 꽃봉오리에 흰 무늬가 들어가 있고, 5~10cm 높이로 자란다.
며칠 전, 등산 스틱을 꺼내 들고 공원으로 들어가는데, 3주 전에 보았던 푸쉬키니아가 보이지 않는다. 그 꽃이 있던 자리에는 보라색 포도송이 같은 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 그때 그 푸쉬키니아는 어딜 갔지?’ 하며 자세히 찾아보아도 흔적조차 없다. ‘이 꽃 이름이 뭐지?’, 구글로 찾아보니 무스카리(Muscari)라 한다.
무스카리는 다년생 구근 식물로 봄에 항아리 모양의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핀다. 속명인 무스카리(Muscari)는 그리스어로 ‘moschos(사향 냄새가 나는)’로 꽃에서 사향 냄새가 나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꽃말은 관대한 사랑, 실망, 말하지 않아도 통함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단다. 북미에서는 블루벨(Bluebell), 포도 히아신스(Grape hyacinth)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백합과에 속한다.
포도색 꽃봉오리에 흰 무늬가 들어가 있고, 5~10cm 높이로 자란다. 촉촉하고 배수가 잘되는 토양을 좋아하고 그늘진 곳에서도 잘 자란다. 향기가 있어 벌레들을 유혹하는데, 특히 꿀벌들이 좋아한다.
무스카리를 심어본 어떤 블로거는 “구근 식물은 다년생이어서 한번 심으면 그 자리에 피고 지고를 번갈아 하니, 생육 사이클을 배우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라며 추천을 한다. 그는 “무스카리는 비옥한 땅에 심어져 있으면 추가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며, “구근은 얇은 껍질에 쌓여 있지만, 그냥 심어도 상관없다. 겨울에 추워야 꽃눈을 만드는 추식(秋植/가을에 심는) 구근이어서, 보통 겨울 따뜻한 날에 발아하고 새싹 상태로 아주 더디게 자라니, 봄에 안 나온다고 공연히 흙을 파헤쳐 보실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꽃은 피는 순간부터 시들기 시작한다. 즉, 절정의 순간은 언제나 짧아 찰나이다. 나이가 드니, 길에 핀 야생화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 ‘열흘 이상 붉은 꽃은 없다’는 말의 의미를 노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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