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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문학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홍성철
- 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
- Jun 03 2025 09:42 AM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가장 중대한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2024년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이 AI 연구자들에게 수여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과학계의 경계를 넘어, 인류 문명의 전환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 즉위한 교황 레오 14세가 대중을 향해 처음으로 전한 메시지가 AI에 대한 우려와 성찰이었다는 점은, 기술의 문제를 윤리와 신학의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교황은 AI를 단지 기술적 진보의 산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 정의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며, 이러한 격변에 대해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해 시대적 나침반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는 마치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과의 바둑 대국에서 패배했을 때 우리가 처음 느꼈던 당혹감, 그리고 그 이후 지속되어 온 기술적 침투의 흐름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일이다.
최근 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과의 창작 모임에서 이와 같은 흐름은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논쟁을 불러왔다. AI를 활용하여 쓴 수필을 발표하자, 그 글이 꽤나 정제되어 있고 읽을 만하다는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것이 ‘인간이 직접 쓴 글이 아니다’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분위기는 갈라졌다. 흥미롭고 신선하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창작의 진정성과 윤리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문학에서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가? 이 질문은 결국 “무엇이 인간의 창작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다시 불러낸다. AI가 빚어낸 문장이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는, 그 문장 안의 고통과 기쁨, 사유와 체험이라는 ‘인간의 흔적’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믿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이다. 무정한 알고리즘인가, 아니면 그것을 다룬 인간의 지성과 감성인가?
AI 수필을 소개한 나는 이 작업이 단지 하나의 실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지만, 청중들 중 일부는 여전히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글은 사유의 깊이를 따라 조심스럽게 다듬은 문장이 아니라,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짧은 시간에 출력된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참여한 작가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안겨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이 조악하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감각적이며 구조적으로도 탄탄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낀 감동은 과연 거짓이었던가?
문학은 인간의 언어와 삶 사이를 잇는 다리이다. 그 다리를 더 견고히 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일 자체는 죄가 아니다. 문제는 그 도구를 어떻게, 왜, 얼마나 사용하는가이다. 만일 그것이 단지 글쓰기의 속도를 높이거나 화려한 문장을 손쉽게 만들어내기 위한 편의적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문학은 점점 깊이를 상실한 얄팍한 형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AI를 자기 성찰을 확장시키는 창의적 동반자로 삼는다면, 그것은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언스플래쉬
교황이 지적한 ‘인간 존엄성의 위협’은 문학의 세계에서도 유효한 경고다. 우리가 창작의 주체성을 조금씩 인공지능에게 양도하게 될 때, 인간 고유의 감정과 실존의 고통조차 모방 가능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찬사가 아니라, 기술을 향한 성찰적 분별력이다.
오늘날 AI는 단순한 반복 학습을 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이를 우리는 ‘인공일반지능(AGI)’이라 부른다. AI 산업의 선도자 중 한 명인 젠슨 황은 오는 2030년이면 AGI가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듯, AI 또한 삶의 전 영역에 침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AI에 대한 전문 지식의 유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손쉽게 배워 사용했듯, AI 또한 결국 ‘익숙한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환경에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동차를 매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AI도 원하지 않은 부작용을 동반한 채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남는 질문은 단 하나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가
나는 여전히 글을 쓸 때 노트북보다 펜을 먼저 든다. 사유의 속도가 느려질수록, 문장은 나에게 더 깊은 것을 들려준다. AI와 함께하는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썼는가’보다, ‘무엇을 위해 썼는가’이다.
AI의 시대에도 문학은 여전히, 인간의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홍성철 | 전 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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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인턴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