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스포츠
히잡 시위 동조하는 두 딸, 수사판사 아빠와 대립하는데…
3일 개봉 이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14 2025 10:47 AM
이란 신권정치 폐해를 가부장제에 빗대 사라진 권총 둘러싼 가족의 파국 그려 감독은 망명··· 칸 심사위원특별상 받아
사회를 뒤흔드는 시위가 벌어진다. 경찰에 체포된 20대 여성이 의문사해서다. 두 딸은 진실이 궁금하다. TV뉴스는 믿을 수 없다. 아버지는 수사판사로 막 승진했다. 시위로 붙잡힌 사람들을 조사하고 기소한다. 두 딸과 아버지는 대립한다. 어머니는 그런 가족을 어떻게든 화해시키려 한다.
화목했던 가족은 히잡 시위가 발생하자 순식간에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어느 사회,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시공간적 배경이 21세기 이란이라면 좀 특별하다. 딸들의 ‘불순한’ 언행이 아버지의 직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아버지는 국가에 충성해야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가족의 관계는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는다. 아버지의 권총이 집 안에서 사라진다. 두 딸이 유력한 ‘용의자’이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아버지의 의심은 광기로 치닫고 가족 관계는 파국으로 향한다.
수사판사로 막 승진한 이만(오른쪽)은 신변보호용으로 권총을 받는다. 집 안에서 권총이 사라지자 그는 두 딸을 의심한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3일 한국에서 개봉한 이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도발적이고 신랄하다. 이란 사회의 현실을 정조준한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이란 신권정치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이란 정부의 인권유린과 억압, 어용언론의 거짓된 보도, 이란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반감, 체제를 수호하는 공무원들의 입장 등이 심상치 않은 가족 이야기 속에 펼쳐진다. 이란 신권정치의 폐해를 시대착오적 가부장제에 빗대는 서술이 흥미롭다. 국가 안보와 체제 안정을 빌미로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정권에 직격탄을 날리는 듯한 결말이 파격적이다.
2022년 이란에서 발생한 히잡 시위를 소재로 했다. 당시 시민들이 찍은 영상이 종종 등장한다. 영화 마무리에 쓰인 영상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V자를 그린다. 결국 시민이 폭정을 이긴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그렇게 드러낸다.
막 성인이 된 큰 딸은 억압적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모하메드 라줄로프 감독이 연출했다. ‘사탄은 없다’(2020)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유명 영화인이다. 그는 자파르 파나히(‘심플 액시던트’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과 더불어 대표적인 이란 반체제 감독이다. 반체제 선전물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3차례 투옥됐다. 라줄로프 감독은 이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 영화를 촬영했다. 배우와 스태프 섭외부터 비밀리에 이뤄졌다. 이들은 처벌을 각오하고 촬영에 임했다. 라줄로프 감독이 2022년 수감됐을 때 만난 교도소 간부의 사연이 밑그림이 됐다.
라줄로프 감독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연출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이란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다. 출국 금지와 더불어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거부하라는 강요를 이란 당국으로부터 받기도 했다. 그는 몇몇 배우, 스태프와 함께 이란을 탈출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라줄로프 감독 손에는 이란에 남은 두 배우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영화 상영 후 기립박수가 15분 동안 이어졌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ww.koreatimes.net/문화·스포츠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