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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을 찾아서 (하)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n 27 2025 09:26 AM
‘이러다 내가 병을 얻지.’
싱크대 앞에 선 채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닐 것이라 해도 이상한 일은 이상한 일이어서 나는 또다시 편두통을 동반할지도 모를 집착을 한다.
이제는 친구 집으로 향한 그 마음이 먼저인지 아니면 나와의 말문을 닫은 것이 먼저인지도 헷갈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크림색 타일 조각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영원히 채울 수 없을 것 같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크레바스는 막막할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끼기 시작한 말은 알고 보니 아낀 것이 아니라 뚫어둔 다른 통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친구 집의 막힌 하수구만을 뚫어준 것이 아니라 하수구를 고치며 대화의 통로까지 뚫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친구로 하여금 역할을 부여받은 우월감을 느끼게 했음이 분명하다. ‘나도 알고 있는 일을 너는?’이라는 의미의 물음이 그것이다.
대화를 빼앗기고 안방을, 잠자리를 그대로 넘긴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말을 해라, 내가 당신 친구를 도왔다, 고. 남자가 없는 집이라 내가 그랬노라고.’
가장이 없는 아내의 친구 집 일을 도와주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일에 의혹을 품는 이유는 숨기기 때문이다. 아니 숨기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말이란 해서 적당한 때가 있는데 그는 입을 다문다, 이미 나는 들어서 알고 있는 이 일에. 말을 않으니 내 속의 생각은 그래서 난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싫다, 당신, 내 친구네 갔었다며 라고. 그 사실을 친구로부터 듣게 했기 때문이다.
이해될 수 있는 일임에도 말문을 차단함으로 받는 오해는 분명 말문을 차단한 자의 잘못이다. 매몰차게 바꾸어버린 침실에서의 행동이나 식탁 앞에서 나눈 자잘한 습관들까지 베이컨과 관련짓도록 하는 것도 결국 그의 잘못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변명하듯 나는 그에게 모든 탓을 돌린다. 이런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베이컨을 굽는 일에만 골몰하는 그를 바라보노라니 프라이팬 속의 기름처럼 내 머릿속이 지글거리며 끓었다.
“그러니까 요행을 기다린다는 거네, 달라붙을 거라는?”
마치 그것이 동생이 처방한 방법이기라도 한 듯 내가 동생을 향해 또 언성을 높였다. 어지럼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맴을 돌리듯 흔드는 것이 치료 방법이라면 차라리 죽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툭하면 수술하는 세상에 다 아는 병의 치료 방법은 너무나 원시적이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것은 이미 떠나버린 것 같은 그의 마음 한 가닥에 매달려 안달하는, 그것 외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내게 내린 처방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병으로 죽는 사람은 없대, 언니.”
그러나 동생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베이컨이 다 구워질 때까지, 그래서 식탁에 앉기까지 그는 끝내 내 친구의 집 하수구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변죽을 울렸음에도.
‘죽여 버릴 거야!’
어느 한순간, 프라이팬 속의 기름처럼 지글거리며 끓고 있던 내 머리보다 손이 먼저 프라이팬을 잡았다. 베이컨을 구워낸, 베이컨에서 빠진 기름이 고인 여태 뜨거운 프라이팬이다. 내 팔이 저지르고 말 짓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등 뒤에서 일어날 일에 방심한 그는 바삭바삭 소리 내어 베이컨을 씹으며 토스트에다 블루베리 잼을 바르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초코렛, 설탕과 크림이 듬뿍 든 커피..
단 것은 뒤늦게 그가 좋아하게 된 맛이다. 어느 날 내 친구가 내놓았을지도 모르는 단 것을 찾는 것은, 말수를 줄인 것과 비슷한 시기부터 보인 그의 새로운 취향인 셈이다.
바뀐 그의 기호식품들까지 바짝 내 열을 부추긴다. 그러나 그 열도 잠깐, 어쩐지 맥이 빠진다. 그가 뒤늦게 가진 취향과 어린아이와의 함수관계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 것, 어린아이, 단 것에 끌린 남자...
결국 어린아이를 상대로 핏대를 올린 꼴이었다. 나는 한껏 준 프라이팬 손잡이 위에 놓인 손목의 힘을 뺀다. 약간 기우뚱해졌던지 베이컨의 기름이 바닥에 찔끔 떨어진다. 바닥을 휴지로 닦은 후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내가 앉을 즈음 그는 두 번째 조각의 베이컨을 씹기 시작했다. 방금 그가 구운, 기름이 빠져 쿠키처럼 바삭할 베이컨이다.
나도 밥 대신 토스트 한 쪽을 집는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을 그 맛을 훔쳐보고 싶다는 의미였다. 엄마의 어지럼증 치료에도 이석이 제자리를 찾게 하도록 더 흔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가 빵이나 베이컨에 반감 품을 이유는 없었다.
밥 대신 토스트를 집자 그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끼던 시선을 그가 그렇게 주고 있음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블루베리 잼 병을 앞으로 끌어당긴다, 그가 샀거나 친구 집에서 난 것인지도 모르는 것을.
나도 말없이 토스트에다 잼을 바른다, 아주 짙게.
부엌 창문을 열어두었음에도 속은 여태 메슥거린다. 내 의식 속에 베이컨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혹이 스며있듯 탁한 기름 냄새 또한 콧속 깊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프라이팬을 휘두르려던 손으로 접시 위의 비틀어진 베이컨 한 조각과 함께 블루베리 잼을 뒤집어쓴 빵을 잘라 입에 넣는다. 그의 시선이 여태 내 얼굴 위에 머물고 있을까? 미간이 따갑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입을 다문 채 오물오물 블루베리 잼을 바른 토스트와 베이컨을 씹으며 눈까지 감는다. 짭조름한 베이컨이 짙게 블루베리 잼을 뒤집어쓴 토스트와 입 속에서 어우러진다. 내 느글거리는 비위가 짠맛을 만나면서 한결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은 의외였다. 단맛이 짠맛을 감싸주고 짠맛은 단맛을 끌어안아 서로의 모난 것을 누그러뜨리는 것 같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맛이 입속에서 의외로 다정한 것이 흡사 성정이 다른 연인끼리 서로를 품어 쓰다듬는 것만 같다, 한때의 그와 나처럼. 그것은 밥과 국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것과는 아주 다른, 그래서 다시 입맛을 다셔보게 되는 묘한 어울림이었다.
엄마 귓속 타일이 떨어지는 이유가 너무 오래 썼기 때문이라던 동생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에게 나는 이미 너무 오래 써 접착 기능을 잃은 엄마 귓속의 이석과 같은 것일까? 너무 오래 먹어 이제는 물린 밥과 국 같은 것이었을까? 그래서 이 묘한 조화를 그는 원했던 것일까?
토스트와 베이컨으로 문득 목이 마른 나는 더운 커피잔을 끌어당긴다. 방금 내린 헤이즐넛 향 커피다.
베이컨의 탁한 기름 냄새에 전 내 콧속으로 부엌 창을 따라 들어온 한 줌의 청량한 바람 같은 헤이즐넛 커피 향이 스민다. 이미 두통 증세가 있던 머릿속까지 스며든 커피 향을 감지한 후각이 내 혓바닥에서 베이컨의 짠맛과 블루베리의 단맛을 탐닉하던 미각을 다스린다. 미각과는 늘 격을 달리하는 후각이 잡아당기듯 팽팽하던 내 신경 줄을 느슨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나는 한 잔의 헤이즐넛 커피 향으로 서서히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느글거리던 속은 이미 베이컨의 짠맛으로 달랜 후였다.
‘그 병으로 죽는 사람 없대.’
의사에게 들었을 동생의 그 말이 문득 헤이즐넛 커피 향과 함께 내 가슴에 번지며 이상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부엌의 타일이든 사람이든 오래 썼다고, 그래서 붙어있던 것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에 안달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우두둑 떼어내고 싶다는 이상한 에너지이다. 땜질하듯 몇 쪽을 갖다 붙여봐야 어차피 본래의 모양은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므로, 그리고 내게도 그것들은 낡을 대로 낡았으므로, 새것의 신선함은 내게도 매력적이므로.
베이컨으로 묶인 남녀가 언젠가 서로가 만든 굳기름의 벽을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몫일 뿐이었다.
나는 이즈음에서 잠시 헷갈린다, 기껏 커피 향이 다스릴 수 있는 일에 프라이팬을 쥔 손목에다 살기를 실어야 했던 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엄마의 귓속 타일, 이석은 여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까? 그래서 아직도 몸은 그렇게 빙글빙글 수시로 도는 것일까? 그 일로 죽는 사람은 없다고 했으니 엄마도 나도 돌면서 도는 일에 적응해야 하리라.
식탁의 중간 즈음 허공에서 그와 내 시선이 부딪었다. 내 무의식이 여태 시선 한 자락에 연연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내 눈이 먼저 날렵하게 시선을 거두면서 커피잔을 들게 했다, 여태 에너지 같은 향기를 내는 헤이즐넛 커피였다.
아주 오랜만에 맞은, 그의 시선 하나에 매달려 용쓰는 일에 연연하지 않는 어지럼증 없는 아침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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