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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상)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n 30 2025 09:06 AM
“구질구질하게 웬 비야.”
내가 중얼거리며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아내가 팔짱을 낀 채 서서 노려보고 있었다. 아내의 냉소적인 눈길이 내 젖은 머리부터 전신을 훑었다.
“별일 없었어?”
내 물음에 아내는 입을 다문 채였고 여전히 팔짱은 낀 채였다.
“애들은?”
대답은 기대하지 않은 채 아이들 방문을 여는데 책을 펼쳐두고 있던 아이들은 앉은 채 고개만 돌려 ‘아, 아빠!’ 하며 날 맞았다. 아이들의 무람없는 행동에 아주 잠시, 내가 지금 퇴근한 거야? 하는 착각을 했다.
“별일 없지, 너희들?”
뚝뚝 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젖은 모습으로 방문 손잡이를 잡고 하는 내 말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예’라고 말하고는 다시 시선을 책 속으로 끌고 갔다. 어느 날 나가서 몇 달 만에 나타난 나만 아니면 이 집안에 문제 될 것은 없음에도 나는 모든 문제의 이유가 처자식에게 있다는 듯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별일’만을 묻고 있었다. 그것은 오래 집을 비운, 그래서 염치가 없는 가장이 하는, 의례적인 말이란 것은 아내와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들 방문 앞에서 돌아 나오는데 그 시선이 여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집요한 시선에 걸려 눈앞의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거실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몹시 난감했다.
날 밀어내는 기운이 생각보다 노골적이었다.
실은 집에 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
호기부리며 나간 내가 집에 돌아오는 일에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계절이 바뀌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퇴직당한 내게 계절의 변화는 감당하기 힘든 시간의 흐름이었다. 채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휘두르고 흔들어 기어코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을 안긴 것이 시간이었다. 그 모진 시간은 내 속에서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던 자존심을 가차 없이 밟아버렸다. 자존심이 뭉개질수록 집에 오는 길은 멀어졌고 땅속에서의 삶은 바닥 친 내게는 안식처였다. 그렇게 선택한 땅속에서 익숙해 갈 즈음에 내가 집에 돌아오기를 마음먹은 것은 그 애 때문이었다.
‘도망하셨어요, 비겁하게?’
마치 분노의 원인이 땅속으로 숨어버린 나 때문이기라도 한 듯 질시와 원망의 눈빛으로 대들던 그 애의 말이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도 하면서 은둔에 어지간히 익숙하던 내게 날아온 그 말이 모질게 내 뒤통수를 갈긴 것처럼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안 되면 숨어버리고, 어른들은 다 그래요?’
‘어른들은 다 그래요?'란 말, 그 애 또한 숨어버린 어른 때문에 상처가 컸음을 의미하던 그 말이 이번엔 느긋하던 내 심정에다 단 인두를 대는 것 같았었다. 숨어버린 것이 비겁한 행동이라는 생각은 한 적 없던 나였다.
그 말을 던져 놓고 더 말을 잃은 그 애만큼이나 나도 묵묵히 흙을 파고 쌓인 흙짐을 나르며 귀에 남은 말을 되씹었다. 상처받았기에 도망하든 외면하든 내가 하는 행동은 언제나 정당하다고 여긴 것은 그 애의 말대로라면 비겁한 행동이었다. 나의 비겁한 도망으로 내 가족도 그 애처럼 분노하고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친 것도 그때였다.
그런데 그렇게 찾은 집엔 마치 ‘너 없이도 잘 산다.’라는 듯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가지런하고 빈틈없는 집안 분위기는 어쩌면 나에 대한 분노를 넘은, 포기의 다른 표현이리라.
밀어내는 것 같은 거부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일없이 서 있자니 아버지의 부재에 분노하던 그 애의 이글거리던 눈빛이 생각났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내게서 눈길을 거둔 아내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갈아입을 내의며 옷가지를 챙겨 목욕실에다 갖다 두는 것 같았다. 고요하고 정갈한 공간에서 혼자 추레하게 서 있자니 어디든 숨어버리고 싶어 서둘러 젖은 점퍼를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젖은 옷을 내 몸에서 벗겨내는데 오히려 한기가 느껴졌다. 마음이 추운 탓일 거였다.
유난히 일찍 추위가 찾아 와 살얼음이 얼기도 했다는데, 수십 미터 땅속에 있었던 나는 그 변화를 그리 실감하지 못했다. 계절의 흐름이며 기온의 변화는 땅 위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초가을에 떠난 그 차림으로 돌아온 날 두고 아내는 온갖 상상을 할 것이다. 내 몰골로 어디 지하도서 노숙이라도 하다 온 것으로 상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숨바꼭질하듯 땅속으로 숨어버린 나를 두고 아내 나름으로 할 수 있는 상상을 짐작하며 그때야 피식 웃었다. 사실 지하철 막노동꾼이든 노숙자든 아내의 눈에는 한통속일 것이었다. 여태 옛 모습만 꿈꾸고 있었을 아내의 눈엔 모두가 한심한 족속일 뿐이었다. 아내에게는 땅속에서 지냈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이미 작정한 터였다.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는 꿈을 품고 찾아다니던 일이 어느 날부터 피곤했었다. 식구들의 눈길에서 벗어나 혼자 방향 잃고 다니느라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는 것 같았고, 그럴수록 나는 안착하고 싶었다.
기대가 크던 식구들의 시선이 없고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던 곳, 그러면서 찾은 곳이 지하철 공사장이었다. 위의 것에 연연해한 욕구를 꺾어 숫제 날 돌아볼 겨를 없도록 땅 깊은 곳에서 흙 파고 나르는 일에다 묶어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땅 위 사람들은 짐작조차도 할 수 없는 곳, 그러니까 그곳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잠시라도 안주할, 숨어있기 좋은 곳이었다.
흙짐보다 무거운 가장의 무게, 자존심의 무게가 내 가슴에다 무수한 물집을 만들었어도 시선에서의 자유, 무엇보다도 위의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편하게 했다. 결국 끊어지고만, 가느다란 줄에 매달렸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던, 평안이었다.
위에서 한계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땅속에서는 대부분 말수를 줄였다. 구태여 누군가가 다가와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눈빛으로 할 뿐, 먼저 말을 걸어 과거를 묻는 일은 공공연한 금기였다. 말이 없어도, 아니, 말이 없을수록 편한 곳, 평소 필요치도 않은 말을 참 많이도 하며 살았던 것을 깨닫게 한 곳이기도 했다.
욕실 창밖엔 아직도 추적추적 깊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찬비가 내 가슴에 떨어지고 있는 듯 한기가 들었다. 나는 바깥에서 비를 맞았을 때보다 집안에 들어와 더 추위를 느낀다. 정수리에다 더운물을 끼얹으면서도 내가 추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밀어내는 것 같던 아내의 눈길 때문일 것이었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놓으면서도 한마디 말없이 시종 내게서 떼지 않던 그 차가운 눈길, ‘기껏 그 꼴이야?’라는 것 같던 무언의 힐난, 나는 그 모습에서 아내가 어쩌면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오랜 실직으로 내가 실직 그 자체에 무감각해졌다고 여길 수도 있는 아내 나름의 두려움. 그것은 뿌리 없이 떠도는 생활에 익숙해져 마음의 긴장도 의욕도 없이 무관심과 나태 속에다 방치한 채 되는 대로 살아간다고 여긴, 나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었다. 그것은 실은 내가 가장 경계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내가 땅속에서의 일을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그럴 수 있는 나에 대한 단속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여기 있는 것, 엄마는 몰라요. 얘기 안 하려고요.’
내가 떠나기 전날 둘이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에 그 애가 한 말이었다. 나 역시 땅속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얘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터였다. 그 일 아니어도 아내는 나 때문에 이미 너무 많이 마음 졸여야 했었다. 내가 터무니없던 욕구로 바닥이 가늠되지 않던 절망을 경험했다면, 가족이란 이유로 아내는 욕심부린 잘못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정을 경험했을 것이다. 참으로 미안한 노릇이었다.
나는 목욕을 좀 오래 하고 싶었다. 몸에 낀 찌든 흙먼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욕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말 없는 아내의 눈길 앞에서, 아이들의 무반응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내가 알 수 없어서였다.
‘너희들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등의 흙짐이 내 가슴을 덮은 듯 무겁고 막막한 심정으로 쏟아지는 더운물에다 정수리를 맡기고만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앙칼진 음성이 바깥에서 들려왔다. 고요히 눈빛만 오가던 집안에 갑자기 바락 지른 아내의 화가 난 음성이 들리니 갑갑하던 심정은 달아나고 찰나에 청신경이 곤두섰다.
‘그걸 인사라고 한 거야?’
느닷없이 연이어 흘러 들어오는 아내의 성난 목소리에 내가 물소리를 멈췄다. 날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뭘 엄마?’
두 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앉은 채 ‘아, 아빠’라니, 그걸 인사라고 하냐고!’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고 아이들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인가?’
아내의 고함에 내가 오히려 혼란스러워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차마 초라한 내 몰골을 향해 소리치지는 못하고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일까? ‘왜 이제 왔느냐, 꼴이 그게 뭐냐?’란 말 한마디 없었으면서 제 자리에 앉아 ‘아, 아빠!’란 말 밖에 할 줄 모른다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아내의 큰 소리가 그 경황에도 몹시 황당했다.
‘공부만 하면 다 야? 아빠는 이 얇은 옷으로...’
아내의 손에 허물처럼 벗어 둔 젖은 옷이 들려 있는 것일까? 갑자기 내 얼굴이 더워졌다.
아이들 소리는 들리지 않고 집안은 날카로운 아내의 목소리 파편만 날아다녔다. 아내의 기세에 차마 대꾸는 못 하지만 아이들은 어쩌면 ‘언제는 공부만 하라더니?’라며 속으로 반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청신경이 자극받을수록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음은 움츠러들고 젖은 몸은 둘 바를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향해 마구 목청을 높일 수 있는 아내의 당당함이 몹시 부러웠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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