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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중)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03 2025 09:12 AM
나는 다시 물을 틀어 화끈거리는 얼굴에다 찬물을 끼얹었다. 찬물을 끼얹으며 아이들을 나무라는 아내의 심정을 짐작해 보았다.
오랜만에 아빠가 왔는데, 격식 갖춰 인사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행동거지에서 아내는 어쩌면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아내 자신이 아이들에게 홀대받기라도 한 것 같은 섭섭함, 그것은 나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 때문이 아니라 나란 남편을 둔 자신에 대한 아이들의 홀대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던가? 결국 나로 인해 아내 자신의 마음이 상했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행여나 하고 기다렸을 나에 대한 아내의 기대가 아이들의 무례가 빌미 되어 실망의 고함으로 터져 나왔을 뿐이라고 나는 해석한 것이다.
아내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아이들을 향해 화풀이하고 있지만 나는 실은 안도의 숨을 쉬고 있었다. 좀 무례하면 어떤가, 아내의 말처럼 행동은 좀 무례했어도 아이들은 나 같지 않고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지 않은가? 마치 잘 정돈된 가구처럼 있어야 할 곳을 지키며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식구들, 가장의 부재와 아무 상관 없이 흠잡을 것 없는 그들의 모습, 나는 그것만으로도 아내와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문득, ‘아버지는 자존심 때문에 도피하셨어요. 가족과 바꿔야 할 만큼 자존심이 중한 건가요?’라던 그 애의 말이 떠올랐다. 부도 맞은 사업과 아버지의 무책임한 도피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고 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여동생과 어머니를 남겨둔 후 몸이 고될수록 돈이 많을 것 같아 지하철 공사장 일을 택했다던 아이였다.
‘처음 공사장에 왔을 때 놀랐어요.’
땅속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곳에서 그렇게 많은 아버지가 고된 일하는 줄 평생 몰랐을 거라며,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더라고 했던가?
‘아무리 힘들어도 도피는 안 되잖아요, 비겁한 거잖아요.’
결코 입 열지 않겠다는 듯 묵묵히 일만 하던 그 애는 한 번 말문을 터니 속에다 쌓아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사업에 실패하고 식구들을 남겨둔 채 도피한 아버지 대신, 하던 공부를 접고 막노동 현장에 뛰어든 그 애를 보며 나는 내 자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워하다 원망하고 그러다 이해하기를 되풀이하다 마침내 무관심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아이들, 그렇게 내 아이들도 말수를 줄였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시위 같은 것이기도 하고, 눈앞에 없던 가장이란 존재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만의 평화, 안락함인지도 몰랐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내가 무슨 염치로 아이들의 무례를, 아내의 차가운 눈빛을, 그들만의 평화를 탓할 수 있을까?
그 대열에서 멀리 이탈한 나는 몹시 쓸쓸하고 위축된 심정으로 또 그 애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부재에 그 애는 왜 화가 났을까? 그것은 결국 깊은 관심이 아니던가?’
아마도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나의 부재에 대한 그러한 적나라한 표현 곧, 화, 원망, 분노, 그런 것, 그러니까 관심의 제스처를 기대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마음이 어쩔 줄 모르도록 난처한 이 경황에조차 그 애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욕실은 이제 수증기로 가득 찼음에도, 그래서 갑갑했음에도 바깥으로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나는 욕실 창을 조금 열었다.
창밖엔 여전히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겨울비는 가뜩이나 일찍 온 추위를 재촉할 뿐 이 계절엔 불청객이다. 물을 끼얹다 말고 수증기 서려 뿌연 거울 속을 들여다보노라니 낯선 사내가 서 있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진, 스스로 불청객이라 여기는 사내였다. 가지런하고 윤기 흐르는 분위기, 가장이 없었음에도 흐트러짐 없이 제 자리를 지키는 식솔들 앞에서 오히려 위축감 느끼는 못난 사내였다. 저들의 말 없는 눈빛의 이유는 잊은 채, 그 눈빛에 밀려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만 같다고 여기는, 지지리도 못난 사내였다.
철근 구조물이 얹힌 땅속에 처음 들어갔을 때, 지독한 시멘트 냄새와 허리가 절로 구부려지던 땅속의 열악한 환경에 나는 그대로 질식할 것만 같았었다. 식구들 모르게 흙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엎드려 삽질하는 손목의 힘을 깡그리 사라지게 했다. 아무리 그렇기로 이건 아니라는 좌절이 분노가 되어 솟구쳤다. 여기까지 와 버리고만 나에 대한 분노였다. 흙 속에다 삽을 꽂고 어금니를 사리무는데 건너편에서 땅만 보며 삽질하던 얼굴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안전모를 쓰고 입을 옹 다문 채 삽질만 하던 청년, 옆얼굴이 앳되어 보이던 그 애 또한 땅에다 분풀이하듯 내리꽂고 있었다.
자꾸만 화가 났다. 왜 모두가 분노하며 일해야 하는지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손목의 힘을 모조리 앗아가던 질식할 것 같던 마음이 서서히 오기로 고조되는 것 같았다. 오기와 분노를 손목에다 실어 삽을 꽂았다.
그렇게 땅속에서의 일은 질식할 것 같던 마음과 명분도 분명하지 않던 분노로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관 어둠에 서서히 적응되듯 그곳이 땅속이란 사실도 인식하지 않을 정도로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어둠에서의 적응은 곧, 편안함이었다.
허리도 바로 펴지 못한 채 삽질하고 파낸 흙 나르느라 등줄기가 끊어질 것 같고 손바닥엔 물집이 부풀어 오르다가 못으로 박혀도 마음은 편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피로가 쏟아졌어도 아무 생각 없이 자버리면 그만이었다. 녹초가 된 몸을 누이고 세상 모르게 잠들곤 했던 임시 숙소, 아무것도 의식할 필요 없던 그곳이 문득 그리웠다. 그 애는 지금도 삽질하고 흙짐을 나르고 있으리라.
청년이라기엔 어려 보이고 아이라기엔 덩치가 큰, 청소년을 막 벗어났을 성싶던 그 애가 내 눈엔 고등학생인 내 아들 또래로 보였다. 유난히 말없이 삽질에 흙짐만 나르던 그 애가 내 눈길을 끈 이유는 어른도 하기 힘든 일을 어른들 사이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보다 꾹 다문 입과 한눈팔지 않고 일만 하던, 뭔가에 몹시 화가 나 있는 것 같던 그 눈빛 때문이었다.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위험물처럼 입 다문 채 바닥만 노려보며 자학하듯 삽질하던 그 애를 볼 때마다 나는 위태로움을 느꼈고 그래서 말을 걸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깊은 땅속 밑바닥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던, 가슴 속 울분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나는 말을 걸 수 없었다. 스스로 드러내기 전에 기웃거려 말 거는 일을 금하는 것은 땅속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지키는 계율 같은 것이었다.
‘몸 아껴야지, 노가다한테는 몸이 재산이야.’
마치 금기를 깨듯 오래 참다 내가 말을 걸었을 때도 말없이 힐끗 한번 쳐다본 것이 전부였다. 마치 무슨 오지랖 넓은 간섭이냐, 당신이나 잘하란 의미로만 느껴지던 그 눈빛, 언뜻 불손하게도 느껴지던 그 눈빛과 태도였음에도 나는 그 애에게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먼저 느끼고 있었다.
그날 나는 일을 마치고 땅 위의 포장마차로 그 애를 데리고 갔다.
‘술 못해요.’
한 잔 따른 술잔을 만지작대기만 할 뿐 입에 대지는 않던 그 애는 뜻밖에서 수줍게 웃었다. 아무리 어른들 속에서 거친 일을 해도 본래의 모습은 가릴 수 없었다.
‘노가다가 술 한 잔 못 해서야 되나? 자, 한 잔 마셔봐.’
이미 몇 잔이 들어간 내 얼굴은 구태여 거울에 비추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까마득한 어린 청년이란 사실도 잊은 채 내가 술기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무 시선 없으니 숨 쉴 것 같다. 땅속에서야 숨 쉴 것 같다니 아이러니야. 하긴 인생이란 것이 어차피 아이러니지 뭐.’
오랜만에 들어간 술 탓인지 신경 줄이 느슨해지자 혀가 풀리면서 스멀스멀 속에 든 것이 밀려 나왔다. 오래 갇혔던 언어 조각들이었다.
‘도망하셨어요, 아저씨도?’
술잔을 앞에다 두고 망설이기만 하던 그 애가 내 부추김에 결국 한잔을 마시더니 금방 발그레한 눈두덩을 치뜨며 내게 대들었다.
그 애의 두 눈이 곧 용암 분출할 화구 같았다.
‘그래, 도망이라면 도망인 셈이지. 아무도 모르도록 숨어버렸으니까.’
영문 모른 나는 다만 허탈하게 웃으며 도망이라고, 숨어버렸다고 내 속을 슬쩍 드러냈다.
‘에잇!’
치뜬 눈을 날 향해 겨누던 그 애가 별안간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더니 단숨에 털어 넣고는 ‘탕’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잔을 놓았다. 그 애의 두 분화구에서 분노와 실망의 용암은 이미 터져 분출되고 있었다.
‘혼자만 도망하면 돼요?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떡하라고요!’
그 애가 바락바락 따지듯 내게 대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버지에게 하는 아들의 것 같았다. 나는 순식간에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것 같은 서늘해지는 머릿속을 하고 그 애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아버지를 기다렸다는 말 같았다. 그 애의 눈동자가 내 아들의 눈동자가 되어 가슴에 와 박혔다.
‘기다리겠구나!’
전혀 예기치 않은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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