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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하)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04 2025 09:06 AM
“등 밀어드려요?”
바깥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물소리만 내고 있는데 노크와 함께 소리가 났다. 아내가 내게 건 첫 말이었다.
“등? 좋지.”
방심하고 있던 나는 뜻밖의 말에 두 팔로 벌거벗은 몸부터 가렸다. 아내의 심중을 알아내지 못한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엉거주춤하니 등을 내밀었다.
돌아앉은 내 등을 아내가 때수건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이 가지 않은 내 등에서 찌든 때가 우루루 일어났을 것이다. 이래도 버젓하지 못하고 저래도 부끄러웠다.
“목욕도 안 하고 뭐 한 거야!”
바지런히 움직이던 손이 갑자기 ‘찰싹!’ 소리 내며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등짝에 떨어졌다. 매운 손바닥이 떨어진 등은 따끔했는데 가슴은 뭉클했다.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소리였다.
“미안해.”
내가 말했다. 때가 많아서 미안한지 집 나간 것이 미안한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아마 다, 모두 다 미안해서일 것이다.
“나, 불청객이지, 겨울비처럼?”
아내의 몇 마디 말에 금방 긴장 잊은 내가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을 어쭙잖은 어휘들을 동원했다.
“불청객, 겨울비?”
매운 손바닥으로 한 번 성질을 내고도 여전히 바지런히 움직이던 아내의 손이 그 말과 함께 또 멈췄다. 아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당신, 시 써요? 또 나가기만 해봐, 자격 박탈이야!”
매운 손바닥보다 더 매운 어휘가 아내의 입에서 터졌다. 손바닥으로, 입으로 전방위적으로 난타하면서도 아내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등은 피부가 벗겨져 나가듯이 따갑고 맞은 자리는 여태 얼얼한데 나는 왜, 맞을수록 흐뭇한 것일까?
“알았어, 알았다고.”
긴장 풀린 흐뭇한 심정대로 라면 당장 몸 돌려 욕실 바닥에다 아내부터 쓰러뜨려 안고 싶은데, 난데없이 눈치 없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좋을 때만 가족인가요?’라던 그 애의 목소리였다. 나는 또 그 애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애는 어른도 모르는 말들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그 애의 말은 일일이 옳아서 들을 때마다 나는 달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은 그 애의 어른 같은 말씨 속에서도 나는 가끔 슬픔을 느꼈었다, 너무 일찍 철들게 한 그 아이가 겪고 있을 고단한 현실을 생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흙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게의 가장이란 짐을 팽개치고 지금까지 어린아이 같은 어깃장을 부리고 있었다. 가지런한 대열에서 혼자 이탈해 ‘날 반기지 않으니 또 나갈 거야.’라며 어깃장 부리는 나 같은 사람을 두고 그 애는 서슴없이 비난했었다, ‘비겁하게, 혼자만 살면 다예요?’라고. 그 애의 아버지도 나도 비겁한 도피자였다.
아내를 안고 싶은 뜬금없던 욕정을 불쑥 스친 그 애가 한 말로 자른 후 꽤 냉정하게 날 분석하고 있던 그때였다.
“짐이란 짐은 다 맡겨 놓고, 나더러 어쩌라고!”
타박하면서도 야물게 등을 밀던 아내가 갑자기 때수건을 욕실 바닥에다 패대기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마치 어리광 많던 어렸던 딸이 퍼질러 앉아 다리 비비며 앙탈 부리던 때 같았다. 그냥 등이나 밀어주며 슬그머니 넘기려니 억울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의미 같았다.
예기치 않은 아내의 울음에 나는 또다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안 갈게, 땅속에는 안 간다니까.”
마음 같아서는 ‘걱정 마, 내가 있잖아!’라며 돌아앉아 와락 안아주고 싶은데 차마 마주 바라보지 못한 채 나는 중얼거렸다. 아내의 울음이 내 말과 함께 뚝 멈췄다. 아마도 무심결에 한 ‘땅속’이란 내 말 때문일 것 같았다. 어안이 막혀 울지도 못할 아내의 표정은 돌아보지 않고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척하며 ‘안 간다.’란 말만 되풀이하며, 그 애에게 한 내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도피가 아니라 정말 일하러 올지도 모른다고 한, 그 말이었다.
‘술 한 잔해요, 아저씨.’
집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도 안 들은 척 종일 입을 꾹 다문 채 흙만 퍼 나르던 그 애가 먼지를 씻으며 내게 말했을 때 ‘좋지’라며 나는 웃으며 받았었다. 때 묻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포장마차에 나란히 앉은, 땅속에서 나온 그 애의 옆얼굴은 흰 가제 수건 같았다. 해를 못 본 탓일 터였다.
‘버릇없이 군 것 죄송해요.’
마실 줄 모른다던 그 애는 양손으로 잔을 든 채 몸을 옆으로 조금 틀어 마시고는 씨익 웃었다.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던 분노도 비웃음도 그 얼굴에는 없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 탓만도 아니더라고요.’
그 애가 내 잔에다 술을 따르며 말했다. 가끔 나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 애는 아무래도 술이 좀 는 것 같았다. 그 애의 두 눈두덩은 이미 술에 익어 있었다.
‘돈은 핑계였어요. 저 역시 숨은 거죠.’
친구들 만나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숨어서 어른들 틈에서 일하다 보니 어쩌면 아버지도 당신의 처지가 부끄러우셨을 거란 짐작도 하게 되고 어딘가 숨어 계셔도 편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들고, 하여튼 머릿속이 좀 복잡해졌다며, 어린애가 허공을 향해 허, 하고 헛웃음으로 어른 흉내를 냈다. 그 애는 기분 좋을 때 말이 많아지는 내 아들처럼 술기운 있을 때마다 말을 많이 했다.
‘몸조심해야 해. 노가다는 몸이 재산이야.’
내일이면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땅속에다 자식을 두고 나만 나가는 것처럼 마음 아려서 나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 애가 붉어진 눈두덩을 하고 날 바라보았다.
‘도피가 아니라 정말 일하러 또 올지도 몰라.’
장담할 수도 없는 그 말을 내가 툭 뱉은 이유는 날 바라보던 그 애의 눈가에 비친 물기 때문이었다. 유난스러운 정을 나눌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겨를도 없었음에도 마치 내 맘 한 자락을 그 애에게 두거나 그 애 마음 한 자락을 내가 품고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볍지 않았다. 그 애로 인해 나는 가장 중요한 무엇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가족이란 의미에 대해서였다.
‘내가 아버지였대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생각하는데 왜 땅속까지 왔어야 했는지 참...’
그 애가 또다시 허, 하고 웃었다. 몇 번의 물집이 굳은살로 박힌 그 애의 손을 잡아본 후 안은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헤어졌다.
아내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그곳에 갈지도 모른다, 고 한 말은 지키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다. 자격 박탈이란 엄포가 솔직히 겁나기도 했다.
어느 사이 겨울비가 그쳤는지 조금 열어 둔 욕실의 창으로 하늘이 맑은 얼굴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일어서서 활짝 창을 열었다. 욕실을 채운 수증기가 다투듯 달아났다.
오랜만에 긴 목욕을 마친 나는, 그때 서야 욕실을 나섰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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