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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내비게이션 (상)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07 2025 09:16 AM
초저녁잠이 많은 어머니는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나직이 코까지 골며 주무시는 어머니의 머리맡에는 부른 배를 한 검정색 인조 가죽가방이 재촉하듯 놓여있다. 태평양을 건너고 북미대륙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오실 때 어머니가 앞세운 가방이다.
‘나 내일 뭘 입을까?’
잠들기 전 어머니는 몇 벌 되지도 않는 옷가지를 이것저것 들추며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셨다. 어머니 평생에 가장 긴, 태평양과 북미대륙을 가로지른 그 여행 이후 처음 떠날 길이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일도 어머니가 잠시 맨정신으로 돌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의, 새것으로 샀어. 충분할 거예요.”
아내의 목소리는 비눗방울이다. 가방을 꾸리는 동안 아내는 표정 관리를 할 줄을 몰랐다, 마치 자신이 여행을 앞둔 것 같은 들뜬 표정을. 아내가 비눗방울 같은 목소리로 그 말을 할 때, 나는 두 번째 담배에다 불을 붙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주어질 새로 산 충분한 내의의 의미에 대하여.
내 마음은 가라앉는 담배 연기다. 아내의 의견에 묵인한 것으로 나 또한 동조한 것인데, 그래서 결국 어머니의 머리맡에 배부른 가방이 떠날 것을 재촉하듯 놓여있는데, 마음은 왜 가볍지 않은지 나는 모르겠다. 집안에서 마음 무거워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여행을 앞두고 두 여인, 어머니와 아내는 서로 다른 이유로 들떠 있다.
나도 좀 홀가분하고 싶다. 방법의 제시는 아내가 했지만 내가 묵인한 일이었으니 마음 무거워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후루루 뱉어내어도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은 담배 연기처럼 개운하지 않은 것일까? 나는 비눗방울 같은 아내의 목소리가 부럽다.
아내가 달라진 것은 그날 이후부터였다. 어머니를 너싱홈에 모시기로 한 그날부터. 아니 그전에도 아내 목소리가 가벼워지고 있음을 나는 감지했었다. 어머니의 증세는 심하여지는데 아내 목소리는 오히려 가벼워 잠시 내가 혼란스러워하긴 했지만, 나는 깊은 생각은 늘 회피하는 편이다. 깊은 생각을 회피하는 것은 선천적인 내 성격의 한 면이기보다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낯선 길은 익혀둘 필요 없이도 찾아갈 수 있고, 전화번호 암기의 노력 없이도 쉽게 통화를 할 수 있고, 복잡한 계산 없이도 셈은 가능하니 깊은 생각 없이도 하는 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하던 터였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아무튼 나는 깊은 사고를 동반하는 심각한 것은 정말 싫다. 그냥 가볍고 싶을, 뿐이다. 가볍고 싶은 내게 어머니의 일은 너무 우울하게 한다.
‘아무래도 이상해, 어머니가.’
내가 우울해지기 시작한 것은 생각해보니 아내의 이 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어머니의 증세를 내 눈으로 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그날부터 내 마음이 구름 낀 듯 흐리고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가라앉는 담배 연기처럼 불안으로 무거워졌다. 이미 경미한 증세는 그전에도 있었지만, 그날 어머니가 보인 어떤 행동은 내가 보기에도 정상을 많이 이탈한 것이었다. 그 일로 내가 어이없어했을 때, 아내는 결정적인 검사 결과를 앞에 둔 의사처럼 어머니의 행동을 치매 현상으로 진단했고 나 또한 소리 내어 동의는 하지 않았지만,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정말 치매라면?’
‘내 어머니가 치매’라는 그 말의 의미 하나로 나는 명치끝에 뭔가가 탁 막히는 것 같은 갑갑하고도 막막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셈에 밝고 명민하시던 어머니가 어떻게 치매에 걸릴 수가 있는가? 아니 설령 어머니가 셈에 흐리고 기억력이 맑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그 병은 내 어머니가 걸려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내비게이션, 그렇게 정확하고 길 안내에 충실하던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어떻게 고장을 일으킬 수가 있는가? 그 일 이후 아내는 어머니가 보이는 행동을 모두 치매 증세와 연관시켰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 방면에 대해 내가 아내만큼의 상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다른 하나는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맨정신으로만 살 수 있나? 당신은 그럴 때 없어?’
아내가 어머니의 증세를 치매와 연관시키고 싶어 할 때, 나는 그렇게 아내를 타박하곤 했는데 그것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진 어떤 상황을 혼자 아니라고 우기며 억지 부리는 형국과 다르지 않았다.
실은 치매를, 퇴화한 뇌 기능으로 인한 한 증세로 본다면, 아내도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에 건망증으로 치부할 뿐, 어머니 나이였다면 아내도 영락없는 치매로 볼 정도로 심각할 때가 많다. 아내는 휴대 전화를 어디에다 둔 지 몰라 수시로 집 전화로 휴대 전화를 찾는데 그래서 정말 잃어버리고 새것으로 바꾼 적도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가스 불을 켜 둔 채 외출해 어머니가 놀라 끄기를 한두 번 한 일이 아니었고, 불과 어제만 해도 아내는 매일 쓰는 한 움큼의 키를 자동차 트렁크에다 꽂아둔 채 종일 찾았었다. 나는 또 어떤가? 남의 전화번호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한 번 간 곳도 다음에 갈 때는 길을 찾지 못한다. 모두가 휴대 전화와 내비게이션에 의존한 탓이다. 더구나 계산기에 의존한 탓에 계산도 느려서 조금 복잡한 셈에 들어가면 머릿속이 복잡해져 계산 자체를 회피하게 되는데 나는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 때문에 사람의 뇌 작용은 오히려 무뎌진다고.
아내 말처럼 어머니가 정말 치매라면 어머니도 첨단기기에 의존한 탓일까?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휴대 전화를 써 보신 적이 없고 운전을 한 적이 없으니 첨단기기 때문은 아니다. 젊은 시절, 보따리 장사로 치부책 없이도 어느 집에 외상을 주었다는 것을 휴대 전화에 입력된 전화번호처럼 정확하게 기억하던, 셈에 밝던 분이다. 그런데 고장 난 기계처럼 어머니가 기억과 분별의 기능을 잃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버스 멀미가 심했던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 늘 걸어 다니셨다. 잡다한 생활용품들을 머리에 이고 보따리 장사를 하신 어머니는 타박타박 걷던 몇 십리 길 위에서 남의 집에 깔아둔 외상을 늘 구구단을 외우듯 되새김질하셨다. 어머니가 머릿속으로 외상을 암기하신 이유는 글을 몰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먼 길에서 한 손은 보퉁이에다, 다른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외상을 외우며 걷다가도 발을 걸어 넘어뜨리게 하는 돌부리 앞에서는 영락없이 주의를 주셨다,
‘앞을 보고 걸어라, 넘어질라.’ 하며.
그즈음 이미 걷는 일에 짜증이 난 나는 발로 돌멩이를 차거나 하면서 어머니의 팔에 거의 매달려 가기가 일쑤였는데, 짜증이 묻은 내 눈에 보따리와 매달린 내 무게로 주저앉을 것 같던 어머니의 코고무신 속 발등은 늘 뽀얀 먼지로 소복했다. 어디에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하는 돌부리가 있는지조차도 아실 정도로 다니는 일에 익숙했던 그 길, 하던 일들, 몸에 익은 모든 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오직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도 말도 다른 곳에서 유배나 다름없는 삶을 기약 없이 살고 계시니, 몸에 익었던 모든 것이 퇴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목욕하고 머리까지 단정하게 손질하신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상기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괴로워 다른 때보다 말수를 줄인 채 아침을 맞고 있었다. 인조가죽 가방을 옆에다 둔 어머니의 시선은 아침 내내 나만 따라다녔다, 마치 날 떼어두고 어머니 혼자 어딘가 가실까 두려워했던 어렸을 적의 나처럼.
어머니를 따라다녀야 했던 그즈음의 내 소원은 먼지를 일으키며 달아나는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멀미를 핑계하며 결코 버스를 타지 않으셨는데 어쩌면 버스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가 투정할 때마다 ‘고아원 보낸다.’라는 말로 내 입을 막곤 하셨는데 다른 아이들이 경찰이나 호랑이를 두려워할 때, 나는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그래서 고아원을 무서워했다. 내게 고아원은 어머니를 힘들게 할 때 어머니가 날 보낼, 그러니까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무서운 단어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두고 떠날까 무척 두려워하셨다. 그것은 이민을 준비하면서 그 낌새를 알아차리신 어머니의 반응이었는데, 나는 그때 솔직히 한 쪽 어깨에 얹힌 자식들의 장래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한 손에 잡힌 어머니란 존재는 잊고 있었다.
“자꾸 그러시면 모시러 안 올 거예요, 어머니!”
곧 모시러 오겠다는 내 말을 믿지 못해 어머니는, 터질 것 같던 울음을 입에 문 채 차마 크게 울지는 못하고 두려워했던 옛날의 나처럼 눈물만 글썽이셨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가 나 대신 일침을 가하곤 했다. 아내의 그 말은 내가 어머니께 들어야 했던 ‘고아원에 보낸다.’란 것과 같은 의미였고, 그것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잔인한 의미의 말이었는지 아내는 알지 못했다. 그즈음의 나는 이미 어머니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있었고, 그러나 그 내비게이션에는 어머니의 길이 아니라 아내와 자식이 원하는 길의 정보만 입력되어 있을 뿐이었다.
몇 년 후, 어머니와 합류하자 영악한 아내는, 집안에서 어머니와 부딪으며 신경을 쓰는 대신 봉사활동을 이유로 외출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안내한 낯선 곳 이 땅이 어머니에겐 내비게이션 자체가 필요 없는,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말도 길도 사람도 다르고, 누가 모시고 가지 않으면 집 바깥으로 나갈 일도, 할 일도 없는 곳. 할 일이 없으니 생각도 행동도 퇴보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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