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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속에서
김외숙의 문학카페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10 2025 09:03 AM
눈만 뜨면 나보다 먼저 깨어, 날 기다리는 것이 있으니, 지인들이 보내는 영상과 글귀이다. 하나같이, 지켜야 하는 건강에 대해, 마음 다스리기에 대해, 어떻게 하면 품위 지키며 오래 살 수 있는가 하는 잠언 같은 글이다. 따라 하기만 하면, 아름답고 품위 있는 삶을 보장받을 성싶은 믿음 주는 글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매일 좋은 글의 홍수 속에 사는구나, 남들은 이 좋은 글들을 어떻게 다 알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엔 한 지인이, 어느 노교수님이 하셨다는 지혜의 말을
인용한 내용의 동영상을 보내왔다. 그것은, 나이 들수록 자연스럽게 가꾼 단정한 차림을 하고, 노욕을 비워 지혜로 내면을 채운 품격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욕을 비워 지혜로 내면을 채운 품격 있는 사람’
어쩌면 일생의 배움과 정신의 갈고 닦음이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함이었을 것 같은데, 평생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했음에도 아직도 내면을 채우기엔 부족해서, 누군가가 보내주는 좋은 글귀를 길라잡이 삼아야 하니, 눈 감는 순간까지 놓아서 안 되는 것이 배움이 아닌가 싶다.
이른 아침에 받은 영상을 본 후 운동 삼아 집을 나섰다.
지혜로 내면을 채운 품격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며, 내가 아는 주위의 또는 멀리서 사는 지인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려 보며 어느 집 앞을 걷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 집 앞 나무에 매달린 눈앞의 무엇 때문에 잠시 멈춰 섰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두루마리처럼 감긴 비닐봉지로, 애완견을 위한 위생 주머니였다.
나무 아래엔 ‘누구든 필요하면 비닐봉지를 쓰고, 배설물은 초록 박스에 넣으세요.’란 안내문이 붙은 초록 플라스틱 통이 있었고, 길가엔 깨끗해 보이는 물이 담긴 물그릇까지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애완견을 데리고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든 나뭇가지에 매달린 비닐봉지로 개의 위생 처리를 할 수 있고,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초록 플라스틱 통에 둘 것이며, 개가 목마르겠다, 싶으면 물을 먹이라는, 이 집주인의 마음이 담긴 배려였다.
걷노라면, 집 앞에다 물 담은 그릇을 둔 경우는 더러 본다. 특히 동네에 행사가 있는 날, 주인 따라 외출할 개들이 행여 목마를까, 군데군데 물을 비치해 둘 때도 있는데, 남의 개 배변까지 배려해, 비닐봉지며 버릴 통과 물까지 비치해 두는 집은 처음이었다.

언스플래쉬
나는 그 집에 사는 주인을 본 적이 없다. 본 적은 없지만 그분들은 개를 사랑하고, 이 동네도 무척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분일 거야, 하는 나름의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길에서 볼일을 볼 수도 있는 동물의 생리를 이해하고, 미처 준비하지 못할 수 있는 개 주인의 사정까지 고려하고, 개 주인도 손대기 싫을 일을 대신, 그리고 기꺼이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들이 사는 동네를 깨끗이 하는데 조용히 자신의 방법으로 하는, 분들일 것이란 믿음이었다.
남들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유익할 무엇을 조용히 하는 것, 그것이 홍수같이 밀려오는 좋은 글귀에 의지해서라도 우리가 얻으려는 품격이란 것이 아닐까?
말없이 보여주는 배려에서 품격을 상상하는 이유는, 넘치는 좋은 말의 홍수에 물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품격은, 한 모금도 입에 댈 수 없는, 마구 밀어닥치는 홍수 같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솟아 마른 목 축이게 하는, 찬 샘물 같은 고요에서 비롯될 것이다.
홍수 속에서 샘물 한 모금의 격조를 배운 아침이었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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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