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장담할 수 없는 오후 (중)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17 2025 09:12 AM
남편의 어리광에 가까운 만류를 뒤로한 채 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남편도 이 기분 때문에 매일 외출하는 걸까, 흡사 내가 하나의 큰 풍선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다니면서 비로소 외출하는 남편을, 실오라기 한 올도 걸칠 기운이 없어 보이던 남편이 물오르는 봄나무처럼 싱그러워진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 외출의 목적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것이나 쇼핑, 또는 다른 오락거리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냥 집을 나서서 내 마음이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바깥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몰랐던 세계를 이토록 많이 두고 있었다니 세상에 대한 나의 무지가 한심할 지경이었다. 내가 아는 유일하고 가장 가치 있는 별이라 여기며 닦고 가꾼 내 집은 실은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천체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것은 내 별이 작아서 가치가 덜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다양한 별들의 존재에 대한 늦은 발견으로 인한 신기함과, 몰랐던 다른 별들을 알아가는 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마치 처음 보는 거리, 처음 타는 버스이듯이 나는 차창으로 스치는 서울의 거리를 보다가 내리고 싶으면 아무 곳에 내려서 차도 마시고 때로는 영화도 보며 내가 몰랐던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밀며 혼자만의 하루를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날 위해 마실 차를 고르고 음식을 시키는 일이 내게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당당함을 줄 줄은 몰랐다. 음식을 시키고 내가 좋아하는 차 시킬 줄 알았으니 앞으로는 무엇이든 날 위해 나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였다. 이전에 나는 날 위해 차 시키고 음식 시키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늘 앞장서던 남편의 몫이었다.
혼자 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하노라니 평생 부엌에 서 있어야 했던 내 다리에게 미안하고, 늘 젖은 채였던 손에게 미안하고, 음식 간을 봐야 했던 내 혀에게 미안했다. 생각해 보니 그저 내 손으로 해 먹여야 한다며 고집부린 융통성 없던 내 성격 탓인 것도 같았다.
내 생각의 중심엔 늘 그가 있었고 자식이 있었고, 나는 그들의 취향을 따라야 했고 그렇게 따르는 것이 내 취향이었다. 내 취향, 생각해 보니 그것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니었다. 혼자 다니면서, 나도 나 나름의 취향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먹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바로 나 자신의 한 부분이었다.
식구들을 위해 쓴 그 많은 시간을 만일 어느 날부터 날 위해 쓸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날 난감하게 할 것은 어쩌면 시간일 것이다, 날 위해 시간을 써 본 적이 없으므로.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은 급류처럼 날 덮칠 것이고 나는 황혼에 주어질 금쪽같을 시간 앞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사로운 사정을 무시하고 마구 몰아붙이는 것이 급류의 속성이 아닌가. 그러나 낯선 시간의 급류를 피할 수 없다면 누려야 한다, 래프팅을 즐기듯.
인생 말년의 급류에서의 래프팅, 그것은 분명 위험이 도사린 모험일 것이다, 남편 그늘이란 안전장치가 없는 급류 타기가 될 것이므로. 타인의 시선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위험한 급류타기에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아니, 그것을 누려야 한다, 내 남은 삶을 담보할 모험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시간의 급류와 래프팅,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미로운 상상이며 꿈꾸기이다. 꿈조차 꾼 적 없던 나의 변화를 일탈이라며 그가 나무란다면, 나도 할 말은 있다. 한 사람을 위한 수족 노릇은 그 사람이 여전히 나와 한 몸이란 믿음이 갈 때까지야, 란 바로 그 말이다.
먼저 도착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아들 집이 있는 동네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은 이미 출근했을 시간인데 불현듯 어미 품에 있을 어린것이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약속도 없이 찾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았지만 가서 벨 한번 눌러 보고 반응 없으면 와야지 하면서 아들 집이 있는 아파트 앞에서 내렸다. 내 외출 시작 이래로 아들 집에 들른 일은 이번이 처음이고 더구나 남편 없이 혼자 찾는 일은 없던 일이었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어머니?”
아이 끼고 다시 잠이 들었었던지, 며느리가 어수선한 머리 모양새를 한 채 현관문을 열었다. 이렇게 시어미가 불시에 올까 봐 현관문 비밀번호를 수시로 바꾼다는 말도 있던데, 그래서 자다가 일어나 문을 열어주는 며느리가 고마웠다. 아기는 잠이 들었는지 며느리가 말소리를 죽였다. 나는 잠자는 아기 얼굴만 들여다보고는 소리 내지 않고 식탁 의자에 가 앉았다. 찻물을 얹는 며느리의 눈가에 의혹과 잠이 뒤섞여 묻어 있었다.
“어머니 혼자서 맨 날 다니신다고요?”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찻물 끓기를 기다리던 며느리가 ‘맨 날’에 강세를 가하며 식탁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이혼하시려고요?”
그리고 식탁을 가로질러 내 턱밑으로 엎어질 듯 다가앉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혼?”
나의 외출을 이혼의 수 순으로 보는 며느리의 과한 반응에 오히려 내가 놀라 대들듯 말했다. 그때까지 거슴츠레 남아있던 잠은 며느리의 눈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의혹의 눈으로 탐색하던 며느리였다.
“이러신 적 없었잖아요!”
“없었지, 이런 적.”
며느리의 반응에 속으로는 좀 당황해하면서도 늘 하는 일이듯이 표정을 꾸몄다.
마치 집 지킴이처럼 집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 나의 파격적인 행보에 놀란 나머지 묘한 의혹마저 품은 며느리의 눈동자는 내가 이러는 숨겨진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 탐색으로 바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복잡 미묘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며느리의 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혼자’여서 외로웠을 것이라는, 나에 대한 며느리 나름의 공감의 의미일 것이라 해석하기로 했다.
혼자 그렇게 다니면서 한 번도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음에도 ‘혼자’라는 말을 달리 해석하고 나니 문득 쓸쓸했다. ‘당신이 날 외롭게 해.’라 던 남편의 말도 어쩌면 그냥 내 발목을 잡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외로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뭔가 배우는 일에 그토록 몰두하는 이유가 외로워서라면, 정말 그렇다면, 나란 존재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단 결론이 나오는 해석이었다.
‘설마.’
생각이 가지 치니 나 자신이 너무 무참해져서 그즈음에서 멈췄다.
며느리는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며느리의 말 없음을 날 이해하기 위한 침묵의 의미로 나는 또 해석하고 있었다. 쓸쓸한 심정을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이라도 지나간 듯 내 마음이 흐뭇했다.
“그럼, 아버님은 누구랑 살아요?”
그때, 혼자 돌아다닐 수밖에 없던 시 어미의 심중을 헤아리려는 듯이 잠시 침묵하던 며느리가 불쑥 볼멘소리로 말했다.
“?”
며느리는 말없이 시부모의 이혼이 미칠 영향, 곧 혼자가 될 시아버지 문제는 여차하면 자신의 차지가 될 수도 있음을 재빠르게 계산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며느리의 잇따른 앞지른 해석에 ‘허!’하고 헛웃음이 터지려 했다. 인생을 곱절로 더 많이 산 나보다 이해타산에 빠른 며느리였다.
“글쎄다.”
그러나 나는 웃음을 억누르며 애매한 대답을 했다. 어중간한 대답이 며느리를 화나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 없으므로 대책 또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이혼이 줄 구체적인 파급 앞에서 오히려 며느리가 아연실색했다. 도대체 누굴 골탕 먹이려고 그렇게 대책이 없느냐는 질책 같았다.
“그래, 그건 나도 뭐라 말할 수 없구나.”
정말 이혼을 목전에 둔 듯 나도 점점 단호하면서 과격해지고 있었다. 한참 앞서가는 며느리를 좀 골려주고 싶은 심정도 없지 않았다.
며느리는 이미 성이 난 상태임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러자고 아들네로 온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 ‘혼자’가 ‘이혼’으로 확대해석 되면서 예상외로 며느리에게 엉뚱한 불똥이 되어 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혼자’가 결혼한 자식 내외에게 불똥이 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우선 말로써 쓰다듬어야 했다, ‘걱정하지 마라.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니?’라며.
“아버님도 그러자고 하셨어요?”
안심시켰음에도 며느리는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아니.”
“근데 어머니 혼자서?”
짜증으로 일그러졌던 며느리의 입가엔 ‘뭐야 어머니?’ 하는, 어이없다는 의미의 웃음이 이미 번져 있었다.
“그래, 나 혼자.”
며느리의 그 비웃음에 약간 위축되려던 기세를 목소리와 함께 세웠다.
“농담하세요, 어머니?”
며느리가 드디어 노골적으로 대들었다.
“이혼을 농담으로 한다던?”
이혼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어떻게 사실 건데요, 어머니 혼자서?”
농담은 결코 아니란 사실을 감지했던지 며느리가 표정을 고치더니 며느리다운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 그것은 결국 이혼 후 내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는, 살아갈 대책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구태여 며느리의 질문이 아니어도 그것은 내가 만일 혼자를 택한다면 그 순간부터 맞을 수밖에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지만, 나는 실은 그 일에도 대책을 갖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의 외출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것은 기껏해야 날 위해 살아보고 싶다는 것, 세상엔 내가 몰랐던 수많은 다른 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의 확인으로 인한 감탄 정도였다. 그 외의 것은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그러니까 그 삶을 뒷받침할 눈에 보이는 아무런 준비가 없는 적당히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며느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요구하는 답은 추상적인 ‘설마’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민폐가 되지 않을, 계산과 그림이 분명할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 문제만큼은 나도 구체적인 답을 주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몰라 그건.”
나는 구체적이지 못한 내 입장에 솔직하기로, 했다.
“이혼이 장난도 아니고.”
며느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눈꼬리를 치켜뜨며 어깨를 으쓱했다. 여러 사람의 인생이 걸린 중대사를 생각 없이 불쑥 일시적인 치기로 저지르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장난도 농담도 아냐!”
치켜뜬 눈꼬리와 말투에는 나도 기분이 상해 목소리를 세웠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기세에 눌려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며느리가 듣기 원하는 답을 주지 못했고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대응하려니 버거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며느리의 구체적인 요구에 부딪혀 나의 막연한 생각이 좌충우돌하다 급기야 우스운 꼴로 나자빠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냥 날 위해 나도 뭔가를 해 보고 싶다는 것이 혼자의 목적이었으므로.
“유행도 유행 나름이지....”
아무리 목소리를 세웠어도 내 답이 기대한 것에 닿지 못했던지 급기야 며느리가 스스로 결론을 지었다, 뒤늦게 유행을 좇는다고, 황혼이혼도 유행이라고 생각 없이 따라나선다고. 며느리 앞의 나는 철딱서니 없는, 한심한 시어미였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낯선 이를 보듯 멀거니 며느리를 바라보았다.
‘혼자’를 생각하면서도 황혼이혼과 유행, 그리고 그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와는 달리, 황혼이혼에 대해 며느리가 내린 정의는 너무나 선명하고도 단도직입적이어서 이번엔 내가 말문이 콱 막혔다. 마치 코너에 몰려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행에다 남은 삶 거는 사람도 있니?”
흠씬 두들겨 맞다가 돌연 고개를 치켜들고 발끈 대들었다. 며느리가 흠칫 물러서는 안색을 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실망 중임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