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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게임 (상)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Jul 28 2025 09:46 AM
“커피!”
자동차는 줄을 잇고 있다.
바람결은 한결 순했고 햇살은 따사롭다.
“장례 행렬 같네.”
할인매장에 장 보러 갈 준비를 하던 친구의 아내가 일손을 놓은 채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더니 혼잣말처럼 했다.
“봄이잖아.”
손님에게 커피를 채워 내밀면서도 아내의 말은 흘려듣지 않은 친구가 짧게 받았다. 손님이 많아 좋다는 뜻인지 아니면 손님도 귀찮다는 뜻인지 내게 그들의 대화는 선문답이다.
“그냥, 옆에 있기만 하면 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친구는 앞서는 아내를 따르면서 내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은 핼퍼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자리만 지키고 있으라는 친구 말의 의미를 나는 알 것 같았다. 낯선 땅에 와 믿을 사람이라고는 자신과 가족뿐인 그들의 삶이 만든 습관, 불신 때문일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대하는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핼퍼가 컵에다 커피와 크림을 채우면 나는 옆에서 컵 뚜껑을 닫아 작은 창밖으로 내밀었다. 친구는 나가면서 그냥 있기만 하라고 했지만 바쁜 핼퍼를 몰라라 할 수 없었다.
바쁜 시간이 웬만큼 지나자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로 갔다.
눈 털어버린 창밖 단풍나무 가지에 부른 배를 한 움들이 오종종 매달려 있다. 조만간에 나무는 소리 없이 출산하고, 새잎들은 바람결 타며 재롱부리리라.
다시 커피를 내린 핼퍼가 한 뼘 넘을 깊은 컵에다 커피를 붓고 듬뿍 크림을 넣어 작은 창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질리도록 큰 컵의 크기만으로도 나는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커피 많이 마셨어요, 잠 안 오게?’
사라지는 차 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평소 내게 하던 아내의 말을 떠올렸다.
아내는,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는 회사에서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이라 여겼다. 카페인 성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단잠을 잘 자던 사람이 어느 날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면, 그것은 분명 그럴 수밖에 없던 요인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불면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평소 잠을 잘 자는 편이던 나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그때, 그러니까 회사로부터 명예퇴직의 통고를 받은 후부터 불면에 빠졌다. 겨우 쉰 문턱을 넘은 나이, 이제 마악 대학에 입학한 큰아이와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이 들 때인 지금, 아니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모든 배움이 무르익고 갈고 닦아져 왕성한 의욕과 함께 거침없이 발휘될 이 나이에 명예퇴직의 권고를 받았을 때, 나는 잠을 설쳐야 했다. 끓어오르는 울분과 부끄러움, 그리고 의욕을 생으로 꺾여버린 것 같은 좌절 때문이었다.
‘커피 좀 줄여요, 몸에 좋지도 않은 것 뭐 하러 그렇게 마셔?’
밤새 뒤척였던 그때에도 아내는 단지 커피 당부만 했을 뿐이었다. 아무 문제 없이, 승진에 누락 된 적도 없이 만족한 위치까지 올라 젊었던 한때의 힘들었던 고비, 어깨 위에 지워진 짐도 어지간히 벗고 가장 안락할 때, 내가 잠을 설쳐야 하는 심각한 일을 겪고 있다고는 단순한 아내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아내의 단순함은 어쩌면 내 직장과 능력에 대한 과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커피를 이곳 사람들은 물 마시듯 마신다. 아내의 말처럼 그들도 잠을 쫓아가며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밤낮없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의 무게 때문일까? 문득 하루에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시고도 단잠을 누리겠던 한때가 그립다. 그리고 내게 허락되었던 일들과 내 자리가 그립다.
‘이 땅에 나는 오게 될까?’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며칠째 친구 집에 있는 나 자신이 남의 사무실의 남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하다. 오랫동안 너무나 당연한 듯, 한 번도 그것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내 몸을 부려놓고 안방인 듯 마음 편하게 일했고, 때로 원하지도 않은 커피를 마셔야 하기도 했던 한때, 그때가 그립다.
‘이거 하나 갖는데 열다섯 해 걸렸어. 이민 와 쟤처럼 한국인 가게에서 핼퍼하면서 모은 돈, 한국 사람한테 몽땅 사기당하고 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는데... 그래서 나, 커피는 냄새도 싫어해.’
마치 서울의 아담한 편의점처럼 담배나 웬만한 일용품은 모두 취급하는 이 가게 하나를 위해 친구는 대기업 중견 간부직을 벗었고 청춘을 바친 셈이었다. 미련 없이 벗어 던지고 친구가 이곳에서 일할 동안 벗어 던질 형편도 용기도 없어 그대로 주저앉아 버틴, 그러나 결국은 쫓겨나야 했던 나는 친구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 나는 손안의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른 채 생각에 빠졌다.
볕으로 따사로운 창밖은, 봄이다. 내가 온 날엔 눈이 내렸었는데, ‘봄인가 하면 겨울이 한 반씩 심통도 부리는 때’라고 친구가 말했었다. 그 눈이 천천히 녹자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눈 속에서 잔디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초록이었다. 눈 속의 초록색 잔디, 마치 흰 천에 덮여있던 죽은 사람이 느닷없이 반짝 눈을 뜬 일만큼이나 나는 소름 끼쳤다. 잔디마저 낯선 이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벗어 던져야 해. 한국에서든 이곳에서든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반은 성공을 한 셈이지.’
처음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친구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그렇게 말했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기존의 것을 지닌 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친구의 그 말은 아직 지난 것에 연연해하고 있던, 그리고 그 감정에 사로잡혀있던 나로서는 막연한 이론처럼만 들렸었다. 자신이 무엇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는 삶, 인식된 기존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삶, 그것은 남을 의식하는 체면을 벗는 일일 터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따라다닌, 그래서 몸의 일부분인 듯 의식조차 할 수 없도록 익숙해진 체면이란 한 겹의 피부를 어떻게 말처럼 쉽게 벗어 던져버릴 수 있을까?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야, 눈높이만 낮춘다면.’
감원 바람이 불자 진작 명예퇴직을 신청해 작은 기업체에 들어가 일찌감치 적응하고 있던 다른 한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친구가 말하는 눈높이, 그것 또한 체면이란 한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할 터였다. 같은 퇴직임에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과, 당하는 것의 심리적 거리의 차이는 엄청났다. 언젠가는 조기퇴직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든, 캐나다 이민을 계획하며 같이 가자고 날 충동질하던 친구처럼 식솔들 끌고 이곳으로 올 준비를 하든, 둘 중 하나를 택했어야 했다. 버티다 쉰을 넘겨버린 내 인생의 오후, 뭔가 새로운 게임에 뛰어들기에는 기존의 고정관념의 뿌리가 너무나 깊고 견고하게 내 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그 뿌리부터 제거할 것을 전제했다.
“한잔하세.”
친구가 주섬주섬 양주와 맥주를 끄집어낸 건 저녁 식탁을 물린 후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봄기운의 충동질에 내외가 함께 나가나 했더니 친구는 한잔할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친구가 낮에 가게를 지키는 동안 친구 아내는 할인매장엘 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샀다. 핼퍼를 두고 있어도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친구 내외는 내가 보기에 밥 한 끼 제대로 함께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바쁜 것 같았다.
“홀 세일은 제 숨통인걸요. 그때 캐나다 오면서 비행기 타보고 공항 근처에도 못 갔어요.”
옆에 앉아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던 친구 아내가 처연한 얼굴빛을 했다. 친구 아내에게 있어 가게를 채울 대형매장으로의 외출은 일상에서의 탈출, 즉 숨통을 의미하는 듯했다. 여자들은 왜 숨을 쉬면서도 숨통을 찾는 것일까?
‘나도 숨 좀 쉬고 살자. 나쁜 짓 아니니까 그냥 모른 척해줘요.’
한때, 눈만 뜨면 집 밖으로 나가려던 아내를 내가 제지했을 때 아내는 그렇게 말했었다, 숨 좀 쉬고 살아야겠다고. 작은 아파트에서 시집 식구들 때문에 머리 큰 아이들을 끼고 자야 했던 한때, 아내는 그렇게 숨을 쉬고 살면서도 숨통이 필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때 아내는 문화센터에서 마련한 강좌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내의 숨과 친구 아내 숨통의 의미는 얼마나 다를까?
“그래도 저는 폭포에는 가 본걸요, 서울서 친구 왔을 때. 저 이는 ...”
친구 아내가 그 말을 해놓고는 몇 번 눈을 씀뻑이더니 잔을 들어 벌컥벌컥 대신 술을 들이켰다. 친구가 아내의 말에 ‘허...’하며 한 번 헛웃음을 웃었다. 그의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민살이 십 오 년 동안 집 앞에 둔 그 유명한 폭포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친구와, 장 보러 다니는 일을 숨통으로 여기는 친구 아내를 내가 번갈아 바라보았다. 폭탄주라며 만들어 한잔 털어 넣었더니 목구멍에다 불을 지른 듯했다. 친구는 술만 마시고 있었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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