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가자미식해가 익는 시간 (하)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15 2025 09:40 AM
끊었다가 수아를 기다리며 다시 손대기 시작한 담배 한 가피에다 불을 붙였다. 내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니 수아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조소가 묻은 눈빛 같았다. 한 모금 깊게 빨아 다시 내뱉으며 나는 눈길을 창밖에다 두었다. 송아지만 하던 개를 앞세운 부부는 이미 보이지 않고 롤러스케이트 커플도 이미 시야에서 아스라이 멀어져 간 후였다. 햇살 받은 창밖 호두나무 잎들이 참기름 바른 쑥절편처럼 윤기가 흘렀다.
이 좋은 날씨에 수아와 내가 입씨름하고 있음이 문득 짜증 났다. 결국 수아 문젠데, 수아 문제로 왜 나까지 이러고 있는 것인지, 수아는 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툭하면 끌고 와 이제는 잊고 싶은 지난 일까지 돌이키게 하여 내 심정까지 헝클어진 놓는 것인지 그것도 못마땅했다. 이미 간다며 가방 앞세워 집을 나섰으면 곧장 떠나든가, 나한테 무슨 좋은 소릴 듣겠다고... 정말 짜증이 났다.
수아가 떠난다면서도 미적대며 시간을 끈 배후에는 당연히 붙잡은 푸른 눈의 남자가 있었고, 마치 그에게 사주받은 사람처럼 수아가 하소연할 때마다 쓰다듬어 지금까지 주저앉도록 한 내게도 원인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여자가 있었어.”
길게 연기를 불어낸 후 접시에다 재를 털며 내가 말했다. 한 번도 나 자신의 지난 얘기는 한 적이 없으므로 내가 말하는 한 여자는 당연히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속의 어떤 캐릭터일 것이라 수아는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허구인지 사실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수아가 서사에 문외한은 아니므로.
“이 땅으로 공부하러 왔는데 공부보다 마약을 먼저 알아버렸어.”
그때는 왜 그렇게 허하고 외로웠을까? 그가 누구든,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을 끄는 그 무엇에 마치 소용돌이에 빨려들 듯 대책 없이 빠져버렸었으니까. 낯선 것을 이기려던 방편이었다면 변명일까?
마약이란 말에 수아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마약이란 것이 순탄한 스토리에 등장할 소재는 결코 아니므로. 평소 실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던지 수아는 조금은 볼이 부은 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를 알았어. 약 대신 내게 취해 봐, 라며 다가온 남자였어.”
‘내게 취해 봐.’라던 그에게 마치 약에 빠져들었던 때처럼 그렇게 걷잡을 수 없도록 흔들렸던 걸 보면 이 땅에서의 나는 숫제 뿌리가 없는 부초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정도 삼류 소설로 독자는커녕 내 마음도 끌기는 틀렸다는 듯이 수아가 표정 없이 날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끌고 갔다. 이미 창밖으로 간 수아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는 말을 이어야 했다, 어차피 시작된 이야기이므로.
“남자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어, 사랑이든 약이든”
그것이 마약을 끊게 하기 위한 남자의 고육책이란 사실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남자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지만, 그러나 나는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닌 방법뿐이라고 고집했다. 뿌리가 없던 나는 둘 다에게 이미 뿌리 내리고 있었고, 둘 다가 아닌 바에야 떠나는 것이 답이었다.
“그래서요?”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삼류 소설인 이야기에 수아가 돌연 눈을 반짝이며 의자를 끌어당겼다. 내가 씨익 웃었다. 드디어 수아가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는구나.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되었더라?
“남자가 주사기와 팔을 내밀었어, 이 길뿐이라며.”
약도 남자도 붙들고 놓지 않자 남자가 먼저 모진 결단을 했다, 차라리, 같이 하자고. ‘맨정신으로는 더 이상 널 그 속에다 방치할 수 없어.’라고 했던가. 몽롱하던 내 정신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확 깨던 느낌이 든 것은 그때였다.
나는 그즈음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아련한 그 무엇이 가슴을 무지근하게 눌렀다. 코가 뻐근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아 급히 고개를 돌려 눈길을 창밖에다 두었다. 그때 남자를 홀로 두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는 또 어떻게 됐을까?
둘 다 이거나 둘 다가 아닌 것만이 내 방법이었으므로 그 길로 나는 작별 인사도 없이 그를 떠났다. 그의 팔에다 바늘 꽂아가며 함께 하느니, 내가 떠나는 것이 답이었다. 내 몸이 허기진 약으로 몸부림할 때마다 팔을 내밀던 그를 떠올리며 나는 더 모질어야 했다. 그래서 가까스로 마약에서는 벗어났는데 그 남자를 잊을 수 없었다. 나를 마약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내밀던 남자였다.
“낯설던 땅에 다시 찾아왔어, 그 남자 때문에. 그런데...”
나보다 깊이 중독이 된 채 남자는 영어의 몸이 되어 있었다. ‘그리워 죽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라고, 폐인이 된 남자가 말했었다.
그 대목에서 나는 울기 시작했다. 깊게 팬 눈꼬리의 주름이 고랑인 듯 눈물이 스미도록 방치했다. 듣는지 마는지 심드렁한 표정이더니 수아가 그윽이 날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눈물로 지금까지의 얘기가 내 얘기인 줄 수아는 확신하리라.
수아는 확신했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헷갈리는 이야기이다, 하도 많이 생각하고 또 해서 이제는 이것이 내 얘기인지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컴퓨터 속의 허구인지조차 모르겠을 정도로. 그 낯설던 시간을 이기지 못해 마약에 손대고, 내가 망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도 망가뜨리고...
나는 그래도, ‘그래, 내 얘기야.’라는 말은 입 밖으로 드러낼 수가 없었다. 다만, 수아 너는 나처럼은 살지 마라, 고만 말하고 싶었다.
“수아야.”
내가 목소리를 가라앉혀 수아를 불렀다.
“그 사람과 너는 가자미와 좁쌀 같은 관계야.”
낯섦만 가득 사이에 둔 사람들, 그래서 마음 붙이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달라도 함께 어우러져 시간을 보내노라면 낯설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삭아 없어질 수도 있는 관계였다,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가자미와 좁쌀이 어우러져 식해가 되듯이. 결국 인내의 시간이 답이었다.
인내의 시간 앞에서 나는 실은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지난 삶 속에서 저지른 오류, 그래서 여태 그 속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오래 참고 기다리는 일에 미숙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알 수 있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언니, 오늘 참 엉뚱하다, 하는 눈으로 수아가 날 바라보았다.
“좀 더 시간을 가져보자, 낯섦이 삭을 시간 말이야.”
그리고 나는 접시에다 담배를 비벼 끄고 사각 유리그릇을 랩으로 싸매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가방을 끌고 내 집엘 왔는지 잊은 사람처럼 여태 붉은 눈자위를 하고 수아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말없이 여러 겹 싸매고 또 싸맸다. 콧속을 알싸하게 하는 콤콤하면서도 톡 쏘는 것 같은 냄새를 가두는 장치였다.
수아의 눈빛이 신기한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그것 같았다.
‘낯섦을 삭혀가며 그렇게 살아야 할 텐데...’
유리그릇을 종이가방에다 넣으며 생각했다.
“아끼지 말고 먹어. 두 번째는 더 쉬울 거야.”
내가 수아 손을 잡았다. 수아가 말없이 날 바라본다. 수아는 기어코 그리움의 그곳으로 떠나게 될까, 아니면 행여 푸른 눈이 냄새라도 맡을세라 냉장고 깊이 가자미식해를 넣어두고 입에 당길 때마다 끄집어내 먹게 될까? 이제는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저 눈빛으로는 도무지 속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수아가 아무리 오래전의 내 모습이어도 내 역할이란 거기까지이므로. 수아와 푸른 눈 사이에 낯섦이 삭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까지다.
내 손아귀 속 수아의 손이 거부하듯 잠깐 뻗댔다. 나는 말없이 마주 바라보며 잡은 손에다 힘을 주었다. 수아가 바로 떠나는 대신, 저 가방을 끌고 내 집부터 찾은 진정한 의미는 어쩌면, ‘언니, 날 좀 붙잡아 줘.’라는 의미일지도 모르므로.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