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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닥칠 젊은 당신의 내일이다!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Aug 25 2025 09:16 AM
인터넷에 담겨온 한 기사를 읽다가 애린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 글의 내용은 부모와 함께 여행을 다녀 온 자식의 불만 토로였다. 정확한 나이는 밝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고령’이라는 표현에 따라 부모를 최소한 60대 이상으로 친다면 삼십대 후반이거나 사십대 초반의 자식내외로 짐작이 된다. 모처럼 큰맘 먹고 효도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모시고 한 여행에서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관광명소로 알려진 어느 장소에 도착했다. 자식들은 신경 써서 그 코스를 잡았을 터인데, 느적느적한 행동으로 뒤따르던 부모가 ‘뭐 별것도 아니고만’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어?’ 하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것.
자식의 처지로는 시간 내고 경비부담해가며 모처럼 큰맘 먹고 감행했는데 달가워하지 않는 부모님 반응에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내뱉은 말이 “다시는 부모님이랑 여행을 하나 봐라.”였다.
그 부모에게는 그런 맘이 없었을까?
뒤집으면 “다시는 자식들 따라 여행을 하나봐라”가 된다.
부모나 자식 양편에서 다 나올법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비중을 따지자면 자식의 입에서보다 부모의 입에서 더 나옴직한 말이다.
누구랄 것 없이 60세 이상의 노령에 접어들면 육체적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 자식의 여행일정에 맞춰 따라다니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힘에 겹다. 힘들고 아픈 것을 다 말하지 못한다. 그게 부모마음이다. 적당히 참고 적당히 웃어가며 맞춰나가지만 한계가 있다.
몸이 편해야 만사 오케이다. 몸이 따라줘야 즐거울 텐데 그렇지 못하면 부모에게는 여행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늙음을 더욱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마음이 무겁고 우울해진다. 자식이 애써 마련한 기회가 아닌가, 차마 거세게 거절 못하고 따라나선 부모의 마음도 헤아려야한다.

언스플래쉬
효도여행이나 효도 선물.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아무리 갸륵해도 정말 진정한 의미의 효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부모의 몸 상태를 배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 해도 달갑지 않은 법이다,
자식이 듣기엔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배려 없이 강행한 여행은 부모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부모를 위한 여행이 아니라 자식의 자기만족을 위해 치러낸 행사였을 수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이념이나 교육받은 틀에 갇혀 인간적인 진정성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좋은 교육이긴 하지만 겉발림이 되고 만다.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그것이 혈육(血肉)이고 육친(肉親)이다.
붐비는 차 안에서 자리양보하고, 길에서 만나면 인사 잘하고... 그것으로 잘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나마 어른을 섬겨야한다는 오랜 교육 덕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예절의 한가지일 뿐, 효(孝)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늙은 어머니의 치아가 몇 개 남았는지, 늙은 부모의 손발톱을 깎아 드려봤는지, 쑤시는 팔다리를 주물러 드려봤는지..., 소소하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다. 그 작아 보이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여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그 말이 왜 부모의 입에서 나옴직한 말이라고 하는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강요된 효(孝)사상을 빼고, 부모와 자식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객관적 상식선을 기준으로 한 나의 생각이다.
나이 많은 사람 vs 젊은 사람 /
부모 vs 자식, /
건강한 사람 vs 약한 사람, /
비장애인 vs 장애인, /... 등등등.
이 간단한 공식에 대입해보더라도 어느 편이 더 배려해야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고 인정(人情)이다. 사회적 강자(强者)가 사회적 약자(弱者)를 우선하는 하는 그것이 곧 사회적 정의이다. 하물며 젊은 자식세대와 늙은 부모세대의 갈등에 있어서랴.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제안에 거절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자식들과 안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식들에게 얹혀 사는 부모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부모들도 솔직할 필요가 있다. 몸이 불편하면 불편함을, 싫으면 싫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다소 민망하더라도 함께 대처방안을 모색해나갈 때 혈육의 정(情)을 진정으로 다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읽은 기사에 나온 이야기는 잠시 솟구치는 자식의 투정일 뿐, 진심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부모와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부모 편에 기울어진 의견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효를 전제로 한 말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하는 말임을 알았으면 한다.
이 말을 더 얹는다.
늙은 부모의 모습은 곧 닥쳐올 젊은 당신의 내일이다!
어제 그리고 내일은 누구에게나 진행된다.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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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