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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객관적이지 않다
사회와 연구자가 결정하는 인간의 해석
- 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
- Sep 04 2025 03:51 PM
과학이 객관적이라는 믿음은 오랜 시간 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과학 역시 인간이 하는 활동이며, 따라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적 시각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비영리 미디어 네트워크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따르면, 20세기 초 과학자 루드빅 플레크(Ludwik Fleck)가 과학 지식을 문화적 산물로 보는 관점을 제시한 이후, 과학은 시대의 문화 규범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인간의 생식 과정에서 오랫동안 정자는 능동적이고 난자는 수동적이라는 설명이 과학계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이후 연구를 통해 정자가 난자를 뚫고 들어갈 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과정은 양쪽 세포가 함께 협력하는 상호작용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발견은 성별 역할에 대한 평등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미국의 성과학자 앤 파우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 교수는 저서 『신체의 성(Sexing the Body)』에서 성,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이 문화적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주장하며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신화를 체계적으로 반박했다.
과학적 연구는 처음 설정하는 질문부터 실험 설계, 결과 해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연구자 개인의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가치가 개입된다. 어떤 연구가 중요한지, 어떤 질문이 타당한지에 대한 판단 역시 당시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과학이 진정한 의미에서 편향 없는 순수한 지식일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되는 대목이다.
서구 대학 시스템에서 과학이 객관성과 동일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수백 년 전의 일이다. 15세기와 16세기 유럽에서는 종교 지도자의 권위를 인간 이성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일어났고, 그 흐름은 자연을 해석하는 과학자의 권위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학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지식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심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었지만, 정치적 판단의 근거에 대한 신뢰 문제가 대두되면서 학문 영역은 주관적·객관적으로 나뉘게 됐다. 그 결과 감성/이성, 여성/남성, 자연/문명 등의 이분법적 구분도 함께 자리잡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영역이 더 우월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은 자의적이고 자기 강화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자들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질 수 있고, 대중문화와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며, 특정 스포츠 팀을 응원하거나 특정 이슈에 대해 감정을 가지기도 한다. 이런 요소들이 과학적 실험 과정에서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과학 실험에는 언제나 특정한 가정이 깔려 있다.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성별 차이에 관한 연구들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가 어떻게 정의되는지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 자체가 근대에 등장한 개념이며, 뚜렷한 생물학적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불명확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연구에서 이 두 범주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결국 어떤 차이가 발견되는데, 이는 실험 설계 자체가 이미 차이를 만들어내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결과는 보고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마찬가지로 인종, 성적 지향, 그 밖의 사회적 범주들에 대해서도 정의가 불명확한 채 연구가 진행되고, 그 결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과학은 객관적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는 인간 중심의 해석이다. 언스플래쉬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백신, 낙태, 기후변화, 성별 범주 등 주요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각 진영은 상대 진영의 과학자들이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과학의 ‘정치화’를 비판하지만, 완전히 비편향적인 과학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dvisory Committee on Immunization Practices) 위원 전원을 해임하며 이들이 편향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해당 조치가 백신에 회의적인 인물들로 자문위원회를 재구성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반발했다.
편향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면, 어떤 방식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진다. 모든 지식은 문화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하면, 상반된 사실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진실이 동등하게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는 공동체가 진실과 현실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비판적 학자들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지식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해 민주적인 합의 과정을 제안한다. 1970년대 네덜란드에서 등장한 ‘사이언스 샵(Science Shop)’ 모델은 지역 공동체가 대학에 연구 의제를 제안하고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시도의 한 사례다. 과학자들이 소외된 집단과 협업하거나 정책 결정 과정에 더 민주적인 절차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일부 진행되고 있다.
객관성이라는 신화를 버리고 나면, 과학은 더 이상 전지전능한 진실의 전달자가 아니다. 대신 인간이 무엇을 연구하고, 어떻게 연구하며, 어떤 결론을 내릴지를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이는 보편적 합의가 아닐 수도 있고, 연구가 영향을 미치는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접근은 단순하지 않지만, 과학을 안팎에서 들여다본 오랜 연구 끝에 얻은 통찰로, 정치적 입장 간 보다 솔직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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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