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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사와 인공 뼈
김외숙의 문학카페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Sep 08 2025 09:10 AM
그 무덥던 여름을 좀 지겹게 통과한 탓인지, 초가을 청명한 날씨가 유난히 반갑다.
아침저녁으로 뜰 아래서 풀벌레 소리가 부르니, 나는 저녁마다 뜰에 나가, 내 허리 두 배는 됨직한 두 그루 소나무와 단풍나무, 라일락, 씨 날아와 저들끼리 군락 이룬 무궁화를 쓰다듬으며, 더위 잘 이겨 고맙다고 말한다.
그런데, 소나무 두 그루 중 하나에게는 늘 미안한 맘이 있다.

언스플래쉬
내가 처음 이 집에 왔던 스무 한해 전, 그때 그 소나무 허리엔 꽤 굵은 철사가 감겨 있었는데, 철사가 소나무 살 속에 묻혀 있었다.
철사는, 처음 그 나무를 심은 사람이 행여 비바람에 어린 소나무가 쓰러질까, 주위에다 버팀목과 연결하기 위해 둘러준 것이었다. 소나무가 자라면서 그 철사를 제거해야 했는데, 그것을 잊은 탓에, 왕성하게 자라던 소나무 속살에 철사가 덮이던 중이었다.
애가 탄 내가 그 철사를 잘라 내려고 애써도 도저히 감당이 안 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는데, 자르는 기계에 행여 소나무가 다칠까 그냥 둔 것이, 이제는 숫제 소나무 허리의 한 부분이 되어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소나무는 그 강한 철사를 품고도 몸피를 늘려 이젠 내 허리의 두 배나 되고, 내가 고개를 치켜들어야 나무 꼭대기를 볼 수 있도록 잘 자랐다.
나무 아래 앉아서 올려다볼 때마다 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이유는, 그 큰 둥치의 소나무가 마디 마디에 송진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송진은 나무의 수액이 얼지 않도록, 그리고 상처를 보호하고 세균 침입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깊이 각인된 그 철사의 기억이 있기에 내게 송진은 눈물 같은 것이다.
몸속에다 철사 감고 있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내 짝 제임스 힐스 목사의 다리가 생각난다.
정년 퇴임을 앞둔 어느 해에, 교회 계단에서 철제 캐비닛을 안고 넘어져, 왼쪽 발목과 무릎 사이의 뼈를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사고로 왼쪽 다리엔 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인공 뼈를 부착했어야 했는데, 함께 여행 갈 때는 공항 금속 탐지기가 늘 그의 다리에 든 이물질을 찾아냈었다.
퇴임 후 그는, 오른쪽 다리보다 가늘던 그 다리로 멀고 험한 땅, 시베리아로, 몽골 감옥으로, 중국 지하교회(일명 가정교회)로, 그리고 수많은 나라로 가 선교 일을 했다.
편한 선교 길이 어디에 있겠으며, 비바람 없이 자라는 나무 어디 있을까 마는, 다리에다 인공 뼈 묻은 멀고 험한 노년의 선교 길, 속에다 철사 두른 채 자라는 나무는, 그래서 더 고되고 아팠을 것이다.
소나무가 눈물 같은 송진을 밖으로 흘릴 때, 노 목회자는 그 눈물 속에다 품고 삭였지 싶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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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