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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탐욕과 엄혹한 냉전이 만들어 낸 괴물
고엽제의 역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4 2025 10:30 PM
2차 대전 후 급증한 제초제 위험성 알고도 월남전 사용 되새겨 보는 전쟁의 잔혹성
고엽제는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비호지킨암, 호지킨암, 폐암, 후두암, 기관암, 전립선암, 백혈병, 침샘암, 담낭암, 방광암, 다발성 골수종 등과 같은 각종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초신경병증, 포르피린증, 버거병, 당뇨병, 파킨슨병 같은 질환도 유발할 수 있다. 언급한 질환 외에도 다양한 병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그렇다면 이 고엽제는 대체 왜 전쟁터, 특히 전방에서 사용됐을까. 20세기 초 ‘제2의 농업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건이 벌어진다. 질소 비료의 발명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인류는 더 막대한 잉여 생산물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비료 덕분에 농산물은 잘 자랐지만, 그만큼 잡초도 무성해졌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인간은 만족할 줄 몰랐고, 제초제 개발에 몰두했다. 그 결과1940년대 초 ‘2, 4-디클로로페녹시아세트산’(2,4-D)과 ‘2, 4, 5-트리클로로페녹시초산’(2,4,5-T)이 등장했다. 문제는 이 두 물질을 합성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다이옥신’이라는 독성이 생성된다는 점이었다. 이 다이옥신이 바로 수많은 질환을 불러오는 물질이다.
아무튼 두 물질 모두 식물 호르몬을 교란해 성장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본래 농업에 쓰이기 위해 발명된 물질이었기에 제초제로 쓰였다. 문제는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면서 군사적 활용 가능성도 고려하게 됐다는 점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진주만 습격 이후 전개된 대규모 공습과 해전은 꽤 유명하다. 전쟁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 미드웨이 해전은 더욱 그렇다. 동남아 지역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육상전도 대단히 치열했다. 열대기후의 울창한 밀림에서 전투를 치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군 지휘부로서는 ‘저 숲만 사라진다면···’이란 생각을 당연히, 많이 했을 것이다.
다만 미군이 일본과의 전투에서 실제로 관련 무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관찰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서 화학무기들이 쓰였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엄청 났기 때문에 그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가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대부흥기를 맞는다. ‘미국의 집’이라고 하면 보통 ‘나무로 된 2층 집에 앞에는 잔디밭이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런 전형적인 미국의 집이 매우 빠르고광범위하게 퍼져 나갔고, 동시에 잡초와의 전쟁도 격화됐다. 제초제도 엄청나게 팔린다. ‘2,4-D’의 생산량은 1945년에는 90만 파운드(약 40만㎏) 정도였지만, 1950년에는 1,400만 파운드, 1960년에는 5,300만 파운드까지 급증했다. 가정뿐만 아니라, 농장에서도 많은 양의 제초제를 사용했을 것이다. 이때 기업들은 이미 제조체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막대한 이득 앞에서 위험은 무시됐다.
미국 국방부도 태평양 전쟁의 전훈을 바탕으로 2,4-D와 2,4,5-T를 조합한 ‘레인보 제초제’를 군사 무기로 개발한다. 연구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도 알았지만 무시한다. 에이전트 오렌지가 바로 레인보 제조체의 한 종류다. 그 외에 그린, 핑크, 퍼플 등이 있는데 베트남으로 운송된 드럼통에 칠해진 띠 색깔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전부 다이옥신을 함유하고 있었다.
이 고엽제들은 미국에서 농업용으로사용하던 농도의 25배가 넘는 강도로 산과 들, 그리고 마을에 살포됐다. 주로 1962년부터 1971년까지 약 10년 동안 ‘랜치 핸드 작전’의 일환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뿌려졌다. 목적은 일단 숲을 제거해 적의 은신처를 알아내고, 마을 농작물을 파괴해 식량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 작전에 거의 2,000만 갤런(약 7,570만 리터)의 제초제가 사용됐다. 베트남 국토의 약 12%가 살포 대상이었다. 황당한 건 고엽제의 위험에 대해 미군은 물론, 한국군 등 동맹국으로 참전했던 나라에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고엽제 드럼통은 샤워통이나 식량 보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결과 현지 주민과 참전 군인 등 해당 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암, 간 손상, 피부 질환, 호흡기 문제, 신경 장애, 선천적 기형 등 다양한 질환으로 고통받게 됐다. 심지어 피해는 2세, 3세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보훈 병원에서 희생자들이 진료받고 있다 하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전쟁과 의학의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전쟁은 정말 끔찍한 일이구나’ 싶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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