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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는 혀가 아닌 뇌가 만든다
fMRI 연구로 확인된 감각 통합 메커니즘
- 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
- Sep 15 2025 02:13 PM
맛은 흔히 혀의 미각 수용체에 의해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혔을 때 음식이 평소보다 싱겁게 느껴지는 경험은 냄새가 맛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음식의 맛은 미각과 후각이 동시에 작용해 뇌에서 ‘풍미(flavour)’라는 감각으로 통합될 때 완성된다.
비영리 미디어 네트워크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따르면 음식을 먹을 때 혀의 미각 수용체가 자극을 받고, 동시에 음식에서 나는 냄새가 입을 통해 코 뒤쪽으로 올라가는 ‘후비 후각(retronasal smelling)’이 일어난다. 이 두 감각은 뇌에서 결합돼 풍미로 인식된다. 이러한 감각 통합은 매우 강력해서, 후각이 차단되면 음식 맛이 변하고, 반대로 냄새만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 작동 원리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국제 연구진은 왜 냄새가 맛처럼 인식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는 최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음식을 맛보지 않아도 향기만으로 뇌에서 맛과 유사한 반응이 유도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실험은 25명의 참가자를 모집해 진행됐다. 실험 참가자들은 골든시럽, 라즈베리, 리치처럼 단맛이 나는 음료와 베이컨, 닭고기 육수, 양파처럼 짠맛이 나는 음료를 각각 맛보고 냄새를 맡았다. 이어 참가자들은 각 풍미에 추상적 시각 자극을 연결해 기억하는 학습 과제를 수행했다. 이는 맛과 냄새의 연관성을 강화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참가자들의 뇌를 스캔하며, 각각 맛이나 냄새 중 하나의 자극만 주었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했다. 머신러닝 분석을 통해 뇌의 각 영역이 단맛과 짠맛, 혹은 그에 대응하는 냄새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분류했다.
예상대로 미각을 담당하는 뇌의 주요 영역인 뇌섬엽(insula)은 단맛과 짠맛에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으며, 이 부위가 단맛과 짠맛의 냄새에도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더 나아가, 냄새에 대한 반응 패턴이 실제 맛에 대한 반응 패턴과 상당 부분 겹쳤다. 즉, 단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뇌는 실제 단맛을 경험한 것처럼 반응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뇌섬엽 중에서도 체내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이과립(dysgranular)'과 '무과립(agranular)' 영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두 영역은 배고픔이나 갈증처럼 신체 내부의 감각을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이는 뇌가 음식 냄새만으로도 그 음식이 신체의 영양 요구를 충족할지를 판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뇌섬엽이 단순히 맛을 처리하는 부위가 아니라 맛과 냄새를 통합해 풍미를 만들어내는 정교한 감각 통합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맛과 냄새가 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확인한 첫 번째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후각 자극만으로도 뇌가 실제 맛처럼 반응하며, 맛과 냄새는 뇌에서 통합되어 풍미를 형성한다. 언스플래쉬
이번 연구는 감각 경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더 건강한 식품 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다. 향기를 활용하면 설탕, 소금, 지방 등의 함량을 줄이면서도 풍미를 유지하는 음식 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다. 또한 후각 기능이 저하된 후각 상실증 환자들의 식습관이나 선호도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 후속 연구로 ‘비강 후각(orthonasal smelling)’의 효과도 조사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음식을 먹기 전 코로 냄새를 맡을 때의 후각 자극을 뜻하며, 식욕과 기대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약 이 자극도 뇌에서 미각과 유사한 반응을 유도한다면, 후각이 배고픔 조절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설치류 연구에서는 음식 냄새가 특정 신경세포를 활성화시켜 섭식을 유도하고, 음식 섭취가 시작되면 해당 반응이 억제된다는 결과도 있었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섭식 행동을 조절하는 다양한 기술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구 결과는 반복적으로 냄새만 맡고 실제로 맛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과 향 사이의 연결이 약화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지속적으로 향기만 접하면 뇌는 점차 그것을 맛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미각과 후각이 뇌에서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식습관과 식품 선택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는 향기만으로도 식욕을 조절하거나 특정 식품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방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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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