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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거리를 뒤흔든 Z세대의 분노
소셜미디어 봉쇄가 불붙인 세대의 반란
- 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
- Oct 02 2025 02:03 PM
네팔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시위는 정부가 소셜미디어를 전면 금지한 데 대한 젊은 세대, 특히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의 반발에서 촉발됐다. 정부의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며 전국적인 항의로 번졌다.
비영리 미디어 네트워크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따르면, Z세대 시위는 네팔 정치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시위대는 부패 척결, 네포티즘(Nepotism, 친족중용주의) 종식, 정치 체제 개혁을 세 가지 핵심 요구로 내세웠다. 이들의 압박으로 K.P. 샤르마 올리(K.P. Sharma Oli) 전 총리와 다수의 정부 각료가 사임했으며, 수실라 카르키(Sushila Karki)가 임시 총리로 임명됐다. 이후 시위는 다소 잦아들었다.
이번 시위가 다른 네팔 내 운동과 구별되는 점은 젊은 층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과 소셜미디어가 시위 의사소통의 핵심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식량, 주거, 일자리, 의료 등 기본적 생활 필수품을 충족하기 어려운 현실과 심화하는 불평등, 차별, 빈곤에 분노했다. 반면, 네팔 정치 엘리트들의 자녀들은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며 이들의 부와 수입 원천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네팔은 인구 2,950만 명, 2024년 인간개발지수(HDI) 세계 143위에 머물러 있다. 15~24세 청년 실업률은 20.82%로 증가 추세이며, 매일 1,5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난다. 2021년 인구조사에서는 7.1%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28세다. 2023년 네팔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한 금액은 약 11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네팔 GDP의 약 25%를 차지한다. 해외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2018~2019년 사이 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Z세대는 부모 세대가 이런 고위험 저임금 노동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현실과, #NepoBaby, #NepoKids로 불리는 정치 엘리트 자녀들의 삶을 대조하며 불만을 키웠다.
일부 Z세대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은 인스타그램, 틱톡,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정치 엘리트 자녀들의 호화로운 생활상을 추적하고 공유하며 여론을 환기시켰다. 유럽 여행, 명품 쇼핑, 수십억 원대 가족 소유 부동산 등 사치스러운 모습이 담긴 게시물은 #NepoBaby, #NepoKids, #PoliticiansNepoBabyNepal, #Corruption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빠르게 확산됐다. 짧은 영상으로 부패와 불평등, 빈곤, 네포티즘을 고발하는 콘텐츠도 인기를 끌며 시위 참여로 이어졌다.

네팔의 Z세대가 소셜미디어 금지에 반발해 부패·불평등에 맞선 시위 주도하며 정치 변화를 이끌었다. AP통신
시위는 주로 평화로운 온라인 활동이었으나, 9월 8일 소셜미디어 금지 조치 발표 이후 거리 시위로 번졌다. Z세대는 소셜미디어 세대로서 표현의 자유 침해에 강하게 반발했고, 총리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는 격렬해졌다. 같은 날 경찰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19명을 사망하게 하고 수백 명을 부상시키면서 충돌이 심각해졌다. 현재까지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72명에 이른다.
9월 9일 총리는 사임했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시위대는 국회와 법원 청사, 민간 기업, 은행, 정치인 및 사업가 자택 등 주요 시설을 불태웠다. 네팔 군 총수 아쇼크 라즈 시그델(Ashok Raj Sigdel), 네팔 대통령 람 찬드라 파우델(Ram Chadra Poudel), Z세대 지도자 수단 구룽(Sudan Gurung) 간 대화 끝에 6개월 임시 정부가 구성됐으며, 카르키가 네팔 최초 여성 총리로 임명됐다. 임시 내각은 2026년 3월 예정된 선거 준비, 부패 척결, 시위 사망자 조사, 공공·민간 시설 파괴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소셜미디어는 네팔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미얀마 등 국가에서 청년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BlackLivesMatter, #MeToo, #MahsaAmini 같은 글로벌 사회운동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네팔 시위 과정에서는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도 확산됐다. 9월 13일 한 페이스북 사용자가 네팔의 한 매장에서 35구의 인골이 발견됐다는 영상을 올려 공포를 조장했으나 이는 거짓으로 판명됐다.
Z세대의 시위는 정치·사회 변화를 어느 정도 이끌어내며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가짜 콘텐츠 제작이 쉬워진 상황에서 이들 세대 내부에서도 허위 정보와 조작된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능숙한 만큼, 그에 따르는 위험에도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이 앞으로의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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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