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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천사가
수필이 있는 뜨락(6)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08 2025 05:39 PM
출발이 시원치 않았다. 주차 전용 빌딩에서 내려오면서부터, 계속 뭔가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마침 지나가던 직원 한 명이 내게 소리쳤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바뀌며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동차 바퀴에 구멍이 난 것이었다. 자동차를 움직이기 시작한 후, 5층 빌딩에서 한 개 층을 다 돌아서 내려 오도록 차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펑크 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 그냥 모른 척하고 운전을 계속했다는 말이 더 바르다고 해야겠다. 설마 진짜로 펑크가 난 건 아니겠지 라고 혼자 우기며 억지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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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펑크는 그저 남의 일인 양 무심코 넘겨 왔다. 급작스럽게 이런 상황에 처하다 보니, 우선 당황스러웠다. 등줄기엔 땀이 흐르고 목이 타들어 갔다. 여분의 바퀴 (스페아 타이어)로 교체하려고 공구를 찾으니, 차를 들어 올리는 기구, 잭크 (Jack)가 보이질 않았다.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다. 일단 자동차를 주차 전용 빌딩 주위에 있는 간이 주차장에 세웠다. 그곳은 잠시 휴대 전화기를 사용하거나 아는 사람들을 기다리고자 할 때 쓰는 공간이다. 주차 전용 빌딩은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예닐곱 개가 넘는 회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몇몇 사람이 간이 주차장에 있었다. 내 차 바로 옆에 주차한 어떤 사람에게 염치 불구하고 도움을 청했다. 낯선 이로부터 갑자기 잭크를 잠시 빌려 쓸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은 이의 표정은 몹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크기가 다르니 자기 잭크가 내 차에 맞지 않을 거라면서 빌려주기를 망설였다. 행여 제 잭크가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는 어투가 느껴졌다. 어쨌든 시도라도 한번 해보자는 내 청에 못 이겨, 의심 많은 그 사람이 드디어 잭크를 서슴거리며 내주었다. 막상 받아 들고 보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이었다.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서 이젠 내가 바퀴를 바꿔 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웬걸, 시작부터가 문제였다. 나사가 얼마나 세게 조여졌던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보통은 전기 기계로 나사를 조이거나 풀기 때문이었다. 나사 푸는 공구 위에 발을 딛고 올라서서 어렵사리 힘을 여러 번 준 후에 겨우 풀기 시작했다.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끄물끄물하고 더웠다.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10월의 햇볕은 한여름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옷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히 젖어 들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차 바퀴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 그러니까 날벼락이 아니라 못 벼락이었다. 처음엔 냉랭하던 잭크 주인도 내 진지한 수리 모습에 마음이 동한 건지, 안쓰러움을 느낀 건지 차차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혹시 요사이 공사장 근처를 갔다 온 적이 없느냐며 겸연쩍게 웃는다. 자기 식구들과 만나기로 한 시간에 맞춰 지금 출발해야 하지만, 괜찮단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고치란다. 뒤이어 내가 한 말은,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지옥이었지만, 지금은 천국이다. 당신은 내게 천사다! 오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례비를 건네주려 했으나, 한사코 사양했다.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했다. 나는 어디에서 근무하는 누구이니, 다음에 꼭 연락해 달라며 내가 천사에게 당부했다. 오늘 만난 천사의 이름은 랠프 (Ralph)다. 바로 그 천사 덕분에, 비교적 빨리 임시 조치를 할 수 있었다. 상황 발생 후 바퀴 교체까지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내 단골 정비소로 곧장 가서 정식으로 수리하고 스페아 타이어를 다시 트렁크 제자리에 장착시켰다. 정규 타이어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역시 전기 기계로 나사를 세게 조이는 것을 보았다. 나사 풀 때를 생각하면 너무 단단히 죄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잘 풀리지 않아야 안전하다는 생각에 그냥 단단히 죄도록 내버려 둔다. 바로 조금 전에 그렇게 애쓰면서 고생한 기억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집에 와서 자동차 설명서(Owner’s Manual)를 자세히 살펴보니, 잭크는 엉뚱하게도 운전석 밑에 두도록 규정돼 있었다. 천천히 그곳을 확인해 보니 거짓말처럼 잭크가 거기에 숨어 있었다. 나는 의당 트렁크에 잭크가 있을 줄 알았다. 그동안 내가 보아 왔던 차는 모두 트렁크에 잭크를 비치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동차 판매 업소에 무조건 전화해서 단단히 항의할 생각도 가졌었다. 왜 새 차에 제대로 공구를 갖춰 놓지 않았느냐고. 내가 평소에 자동차 설명서를 어지간히도 안 본다는 얘기다. 진공 청소기를 하나 사고 나서도 기계 작동법을 자세히 읽어보는데, 어떻게 자동차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무심할 수 있었을까. 못된 주인을 만난 내 차는 그동안 무던히도 내 무관심을 참아냈다. 지금 와서 보니, 박혀 있던 못도 미리 알아차릴 수 있던 것이었다. 그냥 작은 돌 하나가 바퀴 무늬 사이에 끼어 있을 뿐이라고 착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며칠 전부터 작은 불씨가 이미 번지고 있었던 게다. 그때 제대로 살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은 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래로라도 막을 수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덤으로 천사를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누구에게나 비 오는 날, 갠 날이 있듯이 펑크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그런 불상사가 안 일어나면 이상한 게 인생일 것이다. 천둥 치며 폭우가 쏟아지다가도 금방 햇살이 비치는 요즈음 날씨에서, 변화무쌍한 삶의 시간표를 읽는다. 자동차 바퀴에 펑크(구멍) 한번 난 것을 가지고 생의 여정 자체에 펑크(오류)가 생긴 것으로 여길 수는 없다. 말끔하게 자동차 수리를 마치고 나니 내 마음도 먹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같았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누군가 주저 없이 천사가 돼 줘야 한다면, 이제는 내 차례다. 내게도 천사가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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