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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2)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Oct 30 2025 09:59 AM
이제 공장 안에는 세 마리의 진돗개만 있을 뿐이다.
최신식 보안장치를 했음에도 형과 형수가 개, 그것도 진돗개를 세 마리나 공장에다 둔 것은 쥐 때문이다.
수입한 깨와 온갖 식품을 취급하는 형의 공장 안에는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여있어 그런지 쥐가 끓었다. 쥐들은 깨 포대에다 구멍을 뚫는가 하면 밀가루와 캘리포니아 산 쌀 포대를 뚫기도 했다. 아무리 약을 놓고 덫을 놓아도 감당을 할 수 없자 형은 진돗개를 얻어다 두었다. 낮에는 묶여있는 세 마리의 사나운 개를 모두가 퇴근하는 밤이면 공장 안에다 풀어놓는데 개들이 쥐를 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진돗개는 몇 년 전 형이 거래처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두 마리의 진돗개는 남매로 족보까지 있는 명견이지만 주택에서 키우기에는 순한 개가 아니어서 이웃을 의식한 그 사람이 형의 공장에 두라고 준 것이다. 티미는 그러니까 남매 사이에서 태어난 개로,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하여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정박 견이다. 티미는 한쪽 앞다리가 짧아 늘 쓰러질 듯 겅중겅중 걸으며 침을 흘린다. 그래도 티미가 순종 진돗개의 혈통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제 어미 아비를 닮은 흰털과 풀 먹인 듯 날렵한 귀의 모양 때문이다. 형은 태어날 때부터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던 티미를 유난히 애처로워했다. 가엾다며 늘 쓰다듬어주고 공장 주변을 산책할 때도 티미를 데리고 다닌다.
이러한 형을 형수는 못마땅해한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을 두고도 반항하듯 모자라는 개와 장난치는 형의 방관자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형과 형수의 사이가 나빠지면서부터인데, 형수가 뭐라고 하던 형이 티미와 노는 것은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쥐가 나타나면 귀를 바짝 곤두세우고 눈에서 광채부터 발하는 진돗개들을 볼 때마다 나는 비애를 느낀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어쩐지 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것은 형이 일에 의욕을 잃고 정박 견 티미와 놀며 방관자처럼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형에게서 느낀 것과 다르지 않다.
‘털 날아 못 살겠다, 티미야, 저리 가라!’
저만치 형의 벤츠만 보여도 침을 흘리며 겅중대는 티미를 향해 형수도 툭 하면 앙살을 부렸고 그것은 결국 형을 향한 것이다.
형이 없는 집에서 형수가 식사 후 내놓은 술은 아이스 와인이었다. 마치 설탕 시럽처럼 달짝지근한, 그러면서도 은근히 취기를 느끼게 하는 술이다.
“아이스 와인 (Ice Wine)은 요, 당분이 축적되도록 둔 포도를 1월 눈 속에서 따 담근 술이래요.”
형수는 작은 글라스에다 따른 노르스름한 와인으로 입술을 축이더니 정말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말했다. 낮에 티미에게 앙살을 부리던 그 목소리는 흔적도 없었다.
“늦게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일수록 당도가 높아 혀끝에 감기는 맛이 감미롭더라고요. 아, 사는 일도 이렇게 감미롭다면...”
술에 약한 형수가 상체를 소파에다 젖히며 푸념했다. ‘감미롭다면’이라는 표현 때문일까, 형수가 문득 헤프게 느껴진다. 한때의 감미로웠을 그 일 때문에 한 남자가 삶의 의욕을 끊고 폐인처럼 살고 있는 사실을 형수는 모르는 것일까.
“와인 공부는 언제 하셨어요, 늘 바쁘신데?”
돈 버는 일에만 관심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와인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형수가 신기해 곤두서는 가시를 지그시 억누르며 얘기의 방향을 바꾸었다.
“아 그거요, 배웠죠, 베티한테. 베티 고향이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 근처잖아요? 그 근처의 기후가 포도 생산에 알맞대요, 온타리오 호수 때문이라나?”
형수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 나는 순간 반감도 잊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실제로 형수는 내게 도란도란 얘기하기를 즐겨 했고 반감 살 사연만 없다면 이 밤, 나도 그렇게 내 속을 드러내고 싶었다. 더구나 내가 형 집을 찾은 것은 내 장래가 걸린 문제를 두고 의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미 술기운이 느껴지는, 그래서 헤프게까지 보이는 형수 앞에서 속의 얘기는 드러낼 수가 없다.
“삼촌도 결혼해야 할 텐데...”
형수가 느닷없이 말머리를 내게로 돌렸다. 나의 결혼에 대해 형수가 언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형도 없는 집에서 단둘이 와인을 나누고 있는 분위기 탓인지,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라 목덜미를 쓴다.
“해야죠.”
미처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내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심이다. 나라고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 어찌 책과 씨름이나 하며 혼자 살고 싶겠는가?
유학 와 공부하다 보니 실은 결혼할 겨를이 내겐 없었다. 아니 겨를이 없기보다 학생인 탓에 미처 자립의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이유와 함께 주말에 형 집을 찾아오면 형 내외가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주었기에 결혼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지 않았다.
“제 발등 찍는 일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안달하나 몰라.”
형수가 미간을 찡그리며 심드렁하니 말했다. 내가 잔을 탁자 위에다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형수는 결혼을 제 발등 찍는 일로 생각하고, 그것은 결국 형과의 삶을 후회한다는 의미였다.
전신으로 번지려던 술기운이 별안간 한꺼번에 몰려와 숨통을 옥죄기라도 한 듯 갑갑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의 확인일 뿐임에도 마치 처음 알게 된 일인 듯 가슴마저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불법체류를 작정하고 고생길로 들어선 그때는 둘이 한 몸인 듯 손발이 잘도 맞더니 목표한 것을 이룬 지금은 한 몸이어야 하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못 견뎌 하는 사람이 형과 형수다.
“저, 스카우트 제의 받았어요 형수. 인사팀이 다녀갔어요.”
형수의 말을 듣는 일도, 쳐진 눈꼬리를 한 채 하염없이 와인 잔에다 눈길을 꽂고 있는 처연한 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난감해, 내가 말머리를 돌렸다. 어차피 해야 할 말이었다.
“떠나려고요?”
내 말에 형수가 대뜸 와인 잔을 던지듯 탁자 위에 놓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쳐져 있던 형수의 눈꼬리는 소파에 기댄 채이던 허리와 함께 이미 곧추세워져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긴 세월 동안 끈 공부가 학위를 받으므로 공식적으로는 끝났으므로, 내가 직장을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형도 형수도 예상한 일이다. 이제는 웬만하면 결정하여 힘겹게 공부한 내 전공을 회사를 위해 나 자신의 장래를 위해 마음껏 발휘해 보고 싶은 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가정도 갖고 싶고 돈도 벌어 형으로부터 자립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형과 형수가 자신들이 만든 갈등에 스스로 짓눌려 내 일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해도 이것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므로 그렇게 놀랄 이유까지는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연히 그렇게 여기려니 하며 말을 한 나는 놀란 형수만큼이나 어리둥절해 멀뚱히 형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조건도 괜찮고 또...”
“삼촌 떠나고 나면..... 아, 아니에요.”
그래서 나도 이젠 가정이란 것을 만들어 안주하고 싶다며 형수에게서 기대하고 있던 대답을 유도하려는데, 오히려 형수는 내 말을 자르더니 금방 표정을 바꾸며 얼버무려버렸다.
하긴 주말에 찾아오면 언제나 바쁜 형보다 사업이며 조카들에 관한 얘기들을 형수는 친구에게인 듯 날 앞에다 두고 하기를 즐겨 했었다. 늘 공장에서 일하느라 이웃도 친구도 만들지 못한 형수는 형과의 관계가 나빠져 버린 지금 나마저 가 버리면 속을 드러내어 얘기할 사람이 없어 아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다면 그때 이상무와의 관계도 단순히 대화의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이젠 좀 쉬세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도 보고 형이랑 여행도 하시고요.”
내가 이전에는 한 적이 없는 말을 선심 쓰듯 형수에게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 진심이다. 이젠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조카들은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형과 형수가 이 땅 뉴욕에서 정한 목표는 이루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고생했으니 이제는 그들이 모은 것으로 삶을 누리는 일이 고생한 자신들을 대접하는 방법이다.
“뮤지컬이요? 여행이요? 나, 지금까지 공장에서 벗어나 본 적 없어요. 그런데..... 참기름 냄새나는 것도 내 탓인가요?”
‘....?’
형수가 와인 탓인지 나른한 목소리로, 그러나 가시 박힌 말을 했다. 형이 했을 것이 분명한 ‘참기름 냄새’란 형수의 말이 방심한 가슴에 잘못 삼킨 생선 가시처럼 뜨끔하니 와 박히는 바람에 내가 말머리를 놓치고 말았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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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