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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3)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Oct 31 2025 10:08 AM
구태여 형수의 말이 아니더라도 주말에나 찾아와 기껏 몇 시간씩 서성이다가 가는 내 몸에서도 참기름 냄새는 배어 이튿날 학교에 가면 놀림 받을 때가 있었다. 무슨 냄새냐며, 가끔 친구들이 놀릴 때면, 내가 만든 향수 좀 뿌렸다며 농담으로 넘기곤 하는데, 자신들의 몸에서는 더 역겨운 냄새를 풍기기도 하는 그들의 예민한 후각에 나는 언제나 혀를 내두르곤 했다.
나도 그랬는데,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형수에게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왜, 가시가 되고 상처가 되도록 했을까?
내가 알기로 참기름 냄새는 적어도 그들에게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냄새가 그들을 먹여 살렸고 지금도 살게 하는 밥줄이기 때문이다. 참기름 냄새 때문에 그들은 이 낯설고 각박한 땅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것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으며 그것으로 지금의 부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참기름은 아직도 귀한 것이어서 음식 중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아끼며 다루는 것의 하나가 아닌가?
내 어렸을 적 기억에 어머니는 참기름을 절대로 병째 기울여 음식에 넣지 않으셨다. 늘 먼저 알맞은 분량을 아주 조심스럽게 숟가락에 들어 음식에 넣으셨다. 그리고 병 아가리에 묻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훑어 내게 맛을 보게 하거나 어머니가 입맛을 다실 정도로 귀하게 다루셨다.
그런데 형과 형수는 그 속에서 살아 똑같이 참기름 냄새가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두 사람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귀한 냄새, 그것으로 행여 서로가 난감한 입장이라 할지라도 서로가 먼저 감싸주어야 할 냄새였다. 그러나 형수 말의 뉘앙스는 ‘참기름 냄새’란 형이 했을 말로 형수가 무안했으며, 지우기 힘든 상처를 받았으며, 결국 그것이 가시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기름 냄새’란 말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도 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언젠가 내가 스타벅스에서 이상무를 만났을 때였는데, 그때 그도 그 말을 했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참기름 냄새에 전 중년에게 마음 둘 것 같소?’라고. 그것은 형수에게 접근하고 있던 이상무의 빈정거림이었다. 형과 형수에게는 지고한 가치이던 향기를 그도 분명 무시의 의미로 썼었다.
아무리 귀한 것일지라도 쓰임새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나는 불쑥 이상무의 면상을 향해 내뻗으려던 주먹을 애써 다독여야 했던 그때 이미 알았다. 그 후에도 나는 그러함에도 이상무의 면상을 마음껏 후려치지 못했음을 늘 후회했다. 그가 한 가족에게는 목숨 같은 것으로 한 여자를 모독했기 때문이었다.
이상무에게 들은 나도 그러했거늘, 형수가 직접 형에게서 그런 의미의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이란 구태여 눈앞에서 함께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남도 아닌 형이 왜 자신들의 목숨과 같은 것으로 형수를 모욕해야 했던 것일까? 어쩌면 형수와 이상무와의 관계를 현장에서 맞닥뜨린 형이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해 쏟아놓은 독설일지도 모르겠다.
형수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의식중에 내가 던진 말이 형수에게 날아가 가시로 꽂히기라도 한 듯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두 사람을 감싼 허술하던 울타리가 ‘참기름 냄새’란 그 말에 그만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낭패감이 갑갑하던 내 가슴을 긁으며 지나갔다. 두 사람은 이미 독설로 상대편을 모욕함으로써 상처를 주는 관계로 변해버린 것 같다. 그것으로 내 장래에의 대화는커녕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 악화를 나는 확인하고 있었다.
오래전, 불법체류를 작정한 형은 참기름 사업의 타당성을 저울질한 적이 있었다. 형이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아이디어를 얻어 형수와 내 앞에서 말했을 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이 한국이 아닌, 미국하고도 뉴욕이었고 참기름이란 미국 사람에게는 낯선 식품이었다.
결국 형이 교민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를 구상한다는 뜻이었는데 그것이 내 눈에는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형 내외는 참기름은 사 먹어본 일 외에는 참기름 집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아니, 괜찮은 아이디어예요. 슈퍼마켓 갈 때마다 느끼는 게 뭔지 아세요? 중국산, 일본산은 있는데 우리 것은 없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 참기름만큼은 진짜를 찾잖아요? 더구나 미국 사람들도 요즘 건강식품에 얼마나 관심 많은데요?’
내가 부정적이었을 때 형의 아이디어를 바라보는 형수의 시각은 그렇게 달랐다. 형수는 형의 아이디어에 주부로서 우리 참기름이 필요한 현실적인 타당한 이유와 미국 사람들까지 장래의 수요자로 바라보며 적극 거들었었다.
내가 보기에 뉴욕에서의 참기름 공장의 시작은 육체적인 고생은 물론 살얼음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부정적인 면을 염려해도 형은 형수의 긍정적인 지지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은 형에게 그대로 힘이 되는 것, 같았다. 하기는 본국의 안정된 자리도 마다하고 불법체류라는 고생길을 택한 부부이니 비즈니스를 고안하는 일에도 부창부수임은 당연한 논리였다.
그래서 결국 참기름 공장을 차려 처음 기름을 짰을 때, 형과 형수는 자신들이 볶은 참깨에서 줄줄 기름이 흐르는 것을 보고 감격해 손잡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참기름은 사서 먹어본 일밖에 없는 그들의 손에 의해 처음엔 기름도 없이 깻묵만 나오다가, 또 너무 태워 쓴 기름을 짜기도 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다 나온 참기름이기 때문이었다.
내 눈에 형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마침내 자신이 부린 마술로 새를 지어 날려 보낸, 마술사 같았다. 그러나 그때, 감격도 신기함도 다 잊고 그 고소한 참기름 한 번 아끼지 않고 듬뿍 쳐서 고추장에 밥 비벼 먹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 햄버거에 질려버린 나는 그 생각으로 입가에 도는 군침을 눈물 대신 흘리고 있었다.
‘야, 고소하다. 진짜 참기름이다. 고추장 넣고 참기름 팍팍 쳐서 밥 비벼 먹고 싶다 야.’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할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형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입맛을 다시며 허허 웃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형수가 지은 캘리포니아 산 윤기 흐르던 더운 쌀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아끼지 않고 쳐서 먹으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뭔가를 연신 흘렸었다.
그 뒤 일본이나 중국산 참기름을 먹던 교포들이 형의 제품을 택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야, 그 달러 냄새 한 번 구수하다, 참기름 냄새보다 더 구수한데?’
트럭으로 미국 대도시에다 배달시킨 후 들어오는 달러를 세다 말고 나와 형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형은 곧잘 흥분하곤 했다. 거대한 나라, 뭍 인간들의 손에서 돌고 돌다 돌아온 돈의 냄새가 참기름 냄새보다 구수하다고 느꼈으니 그 돈이 자신의 냄새를 좋아하는 형의 수중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형과 형수는 지천으로 굴러오는 달러를 갈퀴로 낙엽을 긁듯 긁어모아 허름한 옷가지에다 싸서는 집안, 구석구석에다 묻어두었다. 나의 유학 생활도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모두가 참기름 덕분이었다. 그 참기름 냄새를 트집 잡았다니 내가 할 말이 없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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