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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6)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07 2025 10:18 AM
‘그건 세금 보고를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는 의민데, 실은 내가 술 상무 시절의 그 눈치로 때려잡은 것이 아니라, 당신 형수란 사람이 스스로 털어놓은 거요.’
정신이 아뜩했다. 허심탄회한 대화로 손을 쓸 수 있는 지경은 이미 진작 물 건너간 것 같았다. 정말 형은 집안에다 고양이인 줄 알고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다.
마치 먼저 술에 취해버린 듯 쇼크로 내 정신이 아뜩할 때, 이상무의 눈빛은 교묘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아마도 한때의 그 술 상무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딴 욕심 없어요, 상생하자는 거지. 사장님도 살고 나도 사는. 나는 식구들을 데려올 돈이 필요해요. 물론 내 안정적인 거주 보장을 위한 사장님의 도움도 필요하고.’
형수가 이미 이상무에게 돈까지 건넨 것일까? 어쩌다 이런 작자에게 형수가 발목을 잡힌 것일까? 어쩌자고 형은 이런 작자를 자기 자신처럼 믿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상무라는 작자보다 두 사람의 어리석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쇼. 나도 알고 보면 그리 나쁜 놈은 아니요.
허나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다는 거 알 거요.’
‘우리 식구 아무도 당신을 코너로 몰지 않았어요, 오히려...’
‘알지요, 알아. 두 분이 얼마나 날 신임하는지는. 그래서 내 양심이 편치 않을 때가 있지만 어쩌겠소, 내 형편이 다급하니. 아, 그리고 당신 형수 말이요. 그 일은 정말 내 탓 아니요. 아무리 그렇기로 내가 참기름 냄새에 전 갱년기 여성한테 마음을 둘 것 같소?’
그가 날 곁눈으로 보며 씨익 웃었다. 잠시 방심하고 있던 주먹이 다시 불쑥 내뻗지 못해 무릎 위에서 부르르 떨었다. 그가 형 식구에게는 성유 같은 ‘참기름’으로 형수를 모욕했기 때문이었다. 전신을 오물에 빠뜨린 채 목만 내밀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해결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나까지 머리 지끈거리게 하는 그 일에 발목이 잡히고 만 셈이었다. 나는 그날의 대화를 그래서 후회했다.
그 일 이후 이상무는 오히려 무람없이 형이 없는 집을 드나들었고, 그것으로 나는 이상무가 개입된 형 내외의 관계뿐 아니라 이미 그에게 노출되어버린 형의 비즈니스에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모두가 어리석은 형과 형수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가슴 조이며 염려한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은 평일이어서 형의 집으로 갈 계획이 없었는데, 마침 출장을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형이 내 연구실엘 들렀다. 나는 집에 가 저녁이나 먹자는 형과 함께 연구실을 나섰다.
형은 자동차로 약 한 시간 걸리는 학교의 내 연구실에서 집까지 가며 출장 간 일이 잘 성사가 되었던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끄집어내더니 손에 집히는 대로 뽑은 지폐를 내게 건넸다. 내 눈에 형의 기분은 몹시 상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너도 이제 참한 신붓감 찾아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형은 자신의 집안일보다 혼기를 놓친 날 염려하고 있었다. 나는 형의 말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
‘형도 이제 출장 좀 줄이고 형수님과 쉬어가면서 해요.’
내가 넌지시 말머리를 돌렸다. 그것은 일도 중요하지만 외로워하는 형수에게도 마음을 주라는 의미였다. 형이 운전하느라 앞만 주시하던 눈길을 잠시 돌려 날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마치 철없다고 여긴 자식으로부터 어느 날 문득 기특한 소리를 들었을 때, 아버지의 그것 같았다. 아무튼 나의 그 말은 벌써 몇 번째나 목격하고 있는, 그래서 날 가슴앓이를 하게 하는 형수와 이상무를 의식한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웬만큼 기반을 잡아놓고 손 뗄 거야. 요즘 내 소원이 뭔지 아냐? 집에서 잠 좀 푹 자는 거다.’
잠 좀 푹 자는 것이란 형의 말은 진심일 것이었다.
내 마음이 아렸다. 말이 손을 떼는 것이지 어떤 방법으로든 그 일이 조만간에 이루어지는 일이란 내가 알기로는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형이 여전히 바쁠 것이란 의미였고, 형수 일탈의 행동은 지속될 것이란 의미이기도 했다. 일이 잘 성사되어 기분이 좋은 형과는 달리 내 마음은 그래서 아리고 또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네 형수, 대단한 사람이야. 언제 험한 일 해 본 사람이 아니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형은 내 기분과는 아랑곳없이 생전 않던 형수 자랑까지 은근히 하고 있었다. 속에다 넣어둘지언정 말로 제 식구 자랑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고 못 난 일이라 여기던 형이었다.
그러나 형은, 험한 일 해 본 적이 없는 형수가 억척같이 일하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모르고 있었다. 몹시 외로워한다는 사실을, 갱년기를 심각하게 앓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지금. 형수에게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남편처럼 가까이서 따스하게 보듬어주고 이해해 줘야 할 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것이 형의 비즈니스 확장보다 더 급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나는, 내가 아는 형수 최근의 근황을 말할 수 없었고, 말을 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집에 가까이 갈수록 불안했다. 설마 이상무와 또 술을 마시고 있지는 않으리라. 오랜 출장에서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겠다며 동생과 집을 찾는 형 앞에 형수는 결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리라. 어쩌면 오랜만에 집을 찾는 형을 위해 형수는 저녁상이라도 차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차마 형에게 드러내지는 못하고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을 그렇게 달래고 있었다.
드디어 집 앞에 당도한 형이 차고 문을 향해 리모컨을 겨누었다.
리모컨을 겨누는 형의 표정이 마치 새를 만들기 위해 손을 덮고 있는 검은 보자기를 향해 짓는 마술사의 야릇한 그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형은 정말 마술사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잘 나가던 해외 지사에서 업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가족이 편히 살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되어 있을 것임에도 부름을 거부하고 불법체류라는 불안한 생활을 택한 형, 그때부터 내 눈에 형은 관중들 앞에 보자기를 앞뒤 뒤집어 아무것 없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는 야릇한 표정과 손끝으로 새를 짓는 마술사 같았었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새가 생길 수 없는 빈 보자기에서 마술사는 어떻게 새를 지어 날릴 것인가? 더구나 마술사는 빈 보자기라도 갖고 있었지만 스스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형은 살벌한 뉴욕에서 거주조차도 불안정하던, 불법체류자에다 맨손이었다.
어린것을 데리고 말없이 형을 따르던 형수 또한 나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부부간의 사랑이란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그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이였다.
‘나 하나는 상관없었는데 네 형수와 애들 고생하는 걸 보고는 후회를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형은 그야말로 외줄 타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뉴욕에서의 그때를 그렇게 술회하곤 했다.
그 형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던 참기름 공장을 차려 처음 기름을 짜냈을 때 그때도 나는, 기계를 타고 흘러내리던 참기름을 바라보며 형이 마술사라는 생각을 했었다. 빈 보자기 속에서 새를 날리던 마술사처럼 빈 병에다 참기름을 채우던 형이었다.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 반응이 없을수록 내 마음의 불안은 고조되었다. 내심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형은 날 향해 씨익 웃더니 휘파람을 불며 드디어 거실로 통하는 문에다 열쇠를 꽂았다. 내가 잠시 불안도 잊은 채 호기심에 찬 눈으로 곧 열릴 문을 바라보았다. 형이 열 문안에서 새라도 푸드덕 날개 치며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커튼이 내려진 어둑한 거실엔 저음의 색소폰 음률이 흐느끼고 있었다. 누군가의 애간장이라도 녹일 것 같은 음률이었다. 탁자는 와인 병들과 잔으로 어지러웠고 형수는 이상무가 두른 팔에 기대어 있었다.
형과 내가 놀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마치 검은 보자기 속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에 아이들이 놀라 멈칫 뒤로 물러서듯.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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