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매직 (8)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13 2025 09:52 AM
‘왜, 할 말 있나?’
형이 손과 눈길은 티미에게 주고 있으면서도 기척으로 이상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 같았다. 형은 형수의 말은 여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상무가 뭔가를 말하려 입을 열려다 도로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리고 명심해, 생각보다 뉴욕이란 바닥, 좁다는 거.’
형은 여전히 눈길은 주지 않은 채, 그러나 차갑게 내뱉었다. 아주 잠깐 뭔가를 말하려 하던 이상무가 이제는 방법이 없겠다는 듯 내리뜬 눈을 다시 한번 질끈 감으며 다문 입술에다 힘을 주었다.
형수는 형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형은 끝까지 형수와 이상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티미를 묶어두고는 벤츠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것으로 이상무는 공장을 떠났고, 형은 이상무를 대신할 다른 직원을 두지 않았다. 아니, 사람을 두든 말든 공장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형은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갑자기 형과 이상무가 하던 일을 대책도 없이 떠맡게 된 형수는 그날부터 동동거리며 바쁘던 일이 갑절 더 바빴다. 공장 일이 어떻게 바쁘든 형의 일과는 일단 출근하여 티미와 놀다 골프클럽을 손질하거나 윤기 흐르는 벤츠의 허리를 부드러운 수건으로 몇 번 쓸어주고는 휑하니 어디론가 떠날 뿐이었다. 형수의 다급한 전화에 내가 더 자주 불려 다닌 이유도 아무런 준비 없이 덜렁 맡겨진 일 때문에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형수 때문이었다.
이상무를 해고한 뒤부터 형에 대한 형수의 냉담은 더 짙어졌다. 그날 형의 해고 통보에 입술만 깨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이상무와는 달리 ‘여보!’라며 형의 말에 제동을 걺으로서 해고의 부당성을 형수는 주장하려 했을 것이다. 이상무 입장에서는, 자신은 단지 형수의 권유로 움직인 셈이었으니 억울했을지도 몰랐다. 그 기회를 이용해 뭔가 이득을 얻고자 한 것은 사실이나, 이상무 자신도 말했듯 그것도 구태여 애쓰지 않아도 형수 스스로 비자금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했으니 이상무 잘못은 아니었다. 이상무의 해고는 그래서 본인에게는 억울한 일이었고, 형수에게는 전적으로 속 좁은 형 탓이었다. 원인은 이상무를 불러들인 자신에게 있지만, 술을 마실 수밖에 없도록 늘 집을 비워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한 형에게 형수는 어쩌면 그 원망의 화살을 쏟아놓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형에게는 근원적인 이유를 자신에게 찾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상무와 함께 형수조차도 공장에서 내쫓고 싶었던 것이 형의 심정이었을지도 몰랐다.
2.
서울에서 다녀간 인사 팀장이 최종의 확답을 얻기 위해 내게 전화를 한 건 어젯밤이었다. 나는 답을 했다, 서울로 갈 것이라고.
‘너, 나랑 여기서 살자. 하늘 아래에 누가 더 있냐?’
언젠가 형이 술이 거나한 채 이렇게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공부가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지 말고 이곳에서 함께 살자는 형의 권유. 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몸은 이곳저곳 날아다니느라 열이라도 모자랄 때, 형의 마음은 몸 같지 않게 외로웠던 것 같았다. 그래서 공부를 마치면 형의 말처럼 정말 이곳에서 뿌리내릴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도 그때였다.
그 말이 아니어도 형의 영향을 떠난 내 삶은 있을 수 없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형 말처럼 하늘 아래에 형제는 우리 둘뿐이므로. 그러나 나는 더 이상 형의 그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그것은 형과 형수 때문이다. 이제는 목숨 같은 참기름 냄새로 서로를 할퀴든 말든 그래서 형수 말처럼 정말 이혼으로 반반 찢어 나누든 말든 참견하고 싶지 않다. 식품 포대에 구멍을 뚫는 생쥐 뒤나 쫓는 진돗개처럼 아니, 침 흘리며 겅중대는 티미처럼 일에의 욕구나 관심도 잃은 채 형수에게 지청구나 듣는 형이 보기 싫어서도 나는 이 땅을 떠나고 싶다. 이 땅을 떠나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형 내외의 불화는 내게 떠남을 망설이게 했는가 하면, 급기야는 하루라도 빨리 뜨고 싶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내 인생에 찾아온 선택의 기회를 두고, 그리고 힘겹게 공부한 유학생이면 누구나 솔깃할 수 있는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를 앞에 두고 주저한 이유는 더 좋은 조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내가 기대한 형의 그 한마디, ‘걱정하지 말고 가라.’ 라던가, 다시 한번 신중히 ‘너, 여기서 나랑 살자.’란 말을 듣기 위해서였다. 어느 대답이든 그것은 형 가정과 내 마음의 평안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형과 형수는 끝까지 내게 인색하고 이제는 내가 지레 지쳐 벗어나고 싶다.
지독한 이기주의,
나는 그들에게서 전에는 없던 이기주의를 느끼면서 이 땅이 뉴욕이란 대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한다. 부와 개인주의의 상징인 도시, 뉴욕에 살면서도 오래전 고국을 떠날 때의 사고를 그대로 지닌 것 같더니 형이나 형수 두 사람 모두 알게 모르게 이 도시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서로가 자신만 피해자라는 망상에 골몰하느라 상대편도 그럴 수 있었겠다는 배려나 이해는커녕 급기야 지켜야 할 가정이란 최후의 보루까지 흥정하고, 목숨 같던 일을 쏟은 배설물이듯 뒤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이는 이기주의의 칼날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하여 나는 “예스”란 답을 했다. 이제 그쪽에서 공식적인 입사 서류가 오고, 오랫동안 이곳에서의 삶이 흩어 놓은 주변의 잡다한 것들이 마무리되면 나는 미련 없이 비행기에 오를 것이다. 이것 또한 이기주의적인 발상일지라도 교통정리를 하듯 헝클어진 머릿속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한 번 마음을 먹고 나니 이렇게 담담해지는 것을 그간 왜 그렇게 나까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형과 형수만큼이나 방황하고 있었는지, 어그러진 형과 형수의 관계란 덫에 걸려 끌려다녔는지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다.
정말 그랬다. 곧 깨어지고 말 살얼음판 위에서 곡예 하듯 서로에게 위험한 감정의 칼날을 겨누며 버티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나 또한 방황하고 있었던 셈이다. 때로는 그들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감정의 칼날에 나도 모르게 베이기도 하면서.
좀 가벼운 기분으로 형 집을 찾았는데 집안 분위기는 역시 무겁고 냉랭하기만 했다.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떠나야 하는데 형은 끝까지 내 마음을 무겁게 할 것인가?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서울로 가게 되었다는 말만 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내가 편안히 떠나기 위해서라도 내 앞의 형 내외는 편안해야 했고 그 편안함의 징표로 형과 형수로부터 ‘걱정하지 말고 가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메리카에서의 마지막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지만 아무리 상황판단을 해 보아도 그것은 물 건너간 일 같다.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그러면서도 마음 한쪽엔 다시 한번 대화를 통한 화해를 기대해보는데, 형수는 보이지 않고 형은 거실에서 골프클럽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상무와 형수가 술에, 색소폰 음률에 취해 있었을 때 형이 마구잡이로 하나 뽑아 내리친 그 클럽일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