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매직 (9)
소설가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Nov 14 2025 12:54 PM
형이 골프클럽이나 티미, 그리고 자신의 벤츠를 만지고 손질을 하는 것이 이미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지만, 형수와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후부터는 모든 신경을 오직 그것들에게만 두는 것 같아 그 모습도 거슬린다.
닦을수록 더 반짝이며 차가운 기운을 드러내는 골프클럽 때문인지 내 마음속에서도 금속보다 날카로운 반감이 생기는 것 같다. 비록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왜 그랬어야 했는지에 대한 관심의 시선을 한 번만이라도 형수에게 보낸다면 이 집안이, 두 사람의 관계가 이토록 냉랭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문득, 형이 수족처럼 여기는 벤츠가, 차갑게 빛을 내는 골프클럽이 형과 형수의 사이를 가르는 이물질처럼 느껴진다.
잘못의 근본적인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않는 형, 자신의 잘못을 형에게 전가하며 버티는 형수로부터 나는 이제 떠날 것이다. 한 가닥 미련으로 당치도 않을 일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제는 제 결에 지쳐 형과 형수보다 먼저 나가떨어져 버린 형국이 된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할 말은 하고 떠나고 싶다, 형과 형수가 이룬 아메리칸드림이 그야말로 한바탕의 개꿈으로 끝나버리기 전에 정신 차리라고. 그것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래도 형을 부모처럼 사랑하는 동생으로서 떠나기 전에 할 수 있는 말은 해야 했다.
“형수는 요, 형님?”
“몰라, 뭐 하는지.”
형은 여전히 골프클럽을 쓰다듬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형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형수가 있을 안방으로 가 노크했다. 노크 소리에 형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던지 방문 너머에서 형수의 ‘들어오세요.’란 말이 들렸다.
형수는 잠옷 차림인 채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예기치 못했던 형수의 모습에 놀라 문을 닫으려 하자 ‘괜찮아요, 나, 일어났어요, 삼촌.’ 하며 무안해하는 날 향해 미소인지 뭔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아, 형수님 어디 편찮으세요?”
내가 엉겁결에 형수와 형 누구에겐지 나도 모를 물음을 던졌다. 편찮으세요? 라고 묻고 있었지만 실은 잠옷 차림의 형수가 아픈 모습이 아니라 잠자리에 들 찰나의 한 사람의 여인으로 느껴진 것이었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않은, 그리고 지극히 순간적인 감정이어서 내가 생각해도 황당했다. 이제는 젊음도 미모도 없지만 옆에서 팔베개하고 함께 잠들고 싶게 하는 여인, 아니, 어쩌면 어머니처럼 편안할지도 모를 그 품에 내가 도로 안겨보고 싶은 느낌, 그것은 내가 이미 혼기를 놓쳐버린 노총각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너무 일찍 어머니를 잃은 탓에 어머니의 정이 그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솟구친 순간적인 충동질을 억누르듯 방문을 닫고 나왔다.
“모르지, 어디가 아픈지.”
내가 형에게 물었다고 여겼던지 형이 클럽에다 눈길을 준 채 다시 심드렁하니 말했다. 형의 그 표정 때문에 그간 있었던 일이나 얘기하려던 내 마음이 형수에 대한 충동이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지려고 했다.
사람이 변해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정이 많아 부모님처럼 의지하고 또 내가 의지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던 형이었다. 그 형이 저렇게 매사에, 모든 사람에게 작정한 듯 정을 떼고 있음이 신기할 지경이다.
“골프 가시게요?”
그러나 차마 나도 형처럼 무심하게 대할 수 없어 대답이 빤할 물음을 물었다.
“집에 있으면 뭐 하냐, 너도 갈래?”
형이 골프클럽을 손질하다 말고 ‘너도’란 부분에서 힐끗 날 한 번 쳐다보았다. 힐끗 준 눈길이었지만 그 눈길의 의미가 의외로 강렬하게 내 가슴을 쳤다. ‘너도 갈래?’란 그 말이 어쩐지, 형이 혼자 방황하며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너도 갈래?’란 그 말, 그리고 ‘집에 있으면 뭐 하냐?’란 그 말, 그것은 집에서도 나가서도 형이 외롭다는 의미일 것이란 생각을 하게 했다.
집안에다 마음을 붙이지 못해 날만 새면 공장으로 나가 티미와 놀다 싫증 나면 골프장으로, 카지노로 떠나지만, 이 바쁘고 바쁜 이민 생활, 생존 경쟁으로 끼니 한 끼 잡담 한 번 느긋이, 그리고 교대로 일 하느라 아내와 자식의 얼굴조차 한갓지게 바라볼 여유를 누릴 수 없는 뉴욕의 생활 속에서 누가 맨날 형처럼 골프다, 도박이다, 하며 친구가 되어 동행할 수 있을 것인가? 형이야 그간에 큰돈을 벌어 여유가 생겼고 결코 원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형수와의 불화로 형 스스로 일하고 싶어질 때까지 손 떼겠다고 통고한 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외면하고 있는 경우이지만, 이 비정상적인 경우를 뉴욕에 사는 바쁜 사람 그 누구도 겪지 않는다고 보면, 형은 결국 바깥에서도 혼자란 결론이 나온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형은 아무도 동행하지 않는 노는 일을 혼자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것일까? 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할 말 있어요, 형한테.”
그러나 나는 모처럼의 형의 제의를 ‘할 말’이 있다는 이유로 목전에서 거절해야 했다. 비록, 결정한 후 통보하는 형식이 되고 말았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내 인생에서 중요할 일, 앞으로 내가 몸담게 될 직장과 장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할 말?”
무심하기만 하던 형이 클럽을 탁자 옆에다 세우며 물었다. 클럽은 매일 잔디 위서 그 위력을 발휘했을 텐데도 새것 같았다.
“어제 대답했어요, 조건도 괜찮고 전공이 제대로 쓰이려면 아무래도 그 회사가 가장 나을 것 같아서...”
“취직했다는 말이냐, 네가?”
형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심드렁하던 눈에다 별안간 힘을 주며 내게 물었다.
“정말 떠날 거예요, 삼촌?”
형수도 안방에서 나오며 들었던지 내게 물었다.
지난번 내가 취직할 것이란 말을 했을 때 그때도 떠날 것이냐는 말부터 묻더니 형수는 또다시 어느 회사냐, 축하한다는 등의 말보다 ‘떠날 거냐?’란 말부터 했다. 그렇게 여긴 탓일까, 형수의 표정이 순간 낭패당한 사람처럼 이지러졌고, 형도 감이 잡히는지 입을 다물었다.
서로 냉담하기 시작한 후 한 번도 같은 반응이나 감정을 동시에 보인 적이 없더니 내가 떠날 것이란 말에는 꼭 같이 걱정이라도 앞서는지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마냥 기다리랄 수도 없고 해서...”
“그렇게 빨리요?”
형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확인했다. 형의 일에 무관심하기 짝이 없던 형수, 한동안 내게도 질시의 눈길을 거들 줄을 모르던 그 형수가 정말 올 것이 왔다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눈물이 괸 형수의 눈을 바라보는 내가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그런 중요한 일을 너 혼자? 나는 너한테 이제 의논 대상도 못 되냐?”
형수의 말과 표정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형이 대뜸 언짢은 기색으로 따지듯 물었다. 그것도 전혀 예기치 않은 반응이었다. 미리 준비한 말이 쌓였음에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반응 때문에 내가 입을 다물었다.
실은 형과 형수 앞에서 나의 장래에 대해 의논하려고 주말마다 찾았지만, 형은 언제나 집을 비웠거나 말없이 떠났고, 늦게 술을 배운 형수는 항상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맞았을 뿐이었다. 더구나 수시로 이상무와 함께 있던 형수에게 내 장래에 대한 심각한 의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단지 주어진 사정이 그랬을 뿐이었는데, 집 밖을 돌고 있는 형은 나까지 자신을 무시한다며 날 탓하는 것이었다.
마치 뒤통수라도 얻어맞고 있는 것 같은, 그러나 형은 형대로 동생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있는 것 같은 이 묘한 상황을 내가 어떻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할지 갈피 잡을 수가 없었다.
“가라, 가! 다 가라! 자식새끼들도 가고 동생도 가고 다 가!”
“형!”
열등감이었다, 아닌 일에 형이 저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형은 말은 않았어도, 공부 때문에 멀리 떠나있는 조카들도 부모를 떠났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떠나고, 아내가 배신하고, 동생까지 자신을 버리려 통보한다고 여기는 형이었다.
나는 어처구니없어 물끄러미 형을 바라보기만 했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고 그 고생하며 자식들 키워 학교에 보냈더니 말짱 헛일이야.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말까 한 그 자식들이 말이야, 내가 반가워 한 번 안아 보려고 하면 뭐라는 줄 알아? ‘대디, 나, 게이 아니에요.’ 한다니까. 아니, 반가워 한번 안겠다는데 게이라니? 공부하느라 힘들 것 같아 등 뒤에서 어깨라도 주물러 주려고 하면 대디, 지금 뭐 하는 거냐며 기함하지 않나, 짜식들 남보다 못해.”
술기운이 알큰하게 돌 때면, 형은 내게 그렇게 푸념하곤 했다.
미국에 와 조카들을 얻었고 이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지만, 사고방식은 오히려 오래전의 것으로 굳어있어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형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조카들은 형의 말처럼 생김새는 아니어도 머릿속 사고는 영락없는 아메리칸이었다.
열심히 일한 덕에 돈은 벌었지만, 가끔 본국에서 찾아오는 한국인보다 사고는 더 경직되어 오히려 고지식하고, 그렇다고 미국인으로도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형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정체성으로 인한 열등감으로 차 있었던 것 같다.
그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자식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돈을 버는 일만이 형이 미처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을 해소해 줄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은 조카들이 좋은 환경의 학교를 찾아 떠날 때마다 서운해했고, 방학 때 한 번씩 찾아오면 빨랫감이나 맡기는 손님이나 다름없다며 또 서운해했다. 이러한 감정은 형만이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젠지 아세요, 삼촌?’
형수도 가끔 품을 떠난 조카들을 그리며 내게 푸념할 때가 있었다.
‘작은애가 젖먹이였을 때였어요. 그때 우리 무지 바빴잖아요? 형하고 번갈아 먹고 번갈아 잠자고 애 끼고 젖 물린 채 깜빡 잠들었을 때, 아, 그때 그 잠은 얼마나 달던지. 젖 먹일 시간도 없어서 다들 우유 먹이라고 했지만 내가 고집 세웠잖아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중에도 젖을 물려 키운 자식이 자주 볼 수도 없는 먼 곳으로 떠나버리자 형수도 형만큼이나 허탈해했다.
‘자식도 떠나더니,’라며 형이 허전했을 속엣말을 했듯, 형수의 탈선 이유도 어쩌면 오래 가슴속에 잠재해 있었을 자식들을 떠나보낸 허전함이 그 시초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짐짓 강한 척 단번에 일손 놓고 보란 듯이 벤츠를 끌고 다녀도 형이 몹시 소심해지고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만일 내가 한국에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그 정도의 대우를 받는 조건으로 가는 걸 알았다면 ‘잘했다, 내 동생, 최고다.’라며 분명 눈물이라도 글썽이며 축하주라도 들었을 것이다. 내가 학위를 받던 날도 형은 뉴욕의 큰 음식점에 형의 거래처 사람들까지 불러 음식을 대접하며 자랑스러워했었다.
‘내 하나뿐인 동생입니다. 공부하느라 나보다 머리가 먼저 세어졌어요. 나 말입니다, 이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던지 저러다 저놈 죽으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어요.’
형은 사람들 앞에서 기쁨에 겨워 그렇게 울먹였었다.
‘너 공부 그만두고 나랑 사업이나 하자.’라고 가끔 하던 그 말이 불같이 일어나는 사업 때문인 줄 알고, 때로는 외로움 때문인 줄 알았는데, 실은 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그날이었다.
그랬다. 돌이켜보니 형은 내게 부모였고, 나는 형에게 자식 이상의 의미였다. 그 형이 나의 취업 소식에는 축하는커녕 소외감으로 사사건건 말을 꼬고 있음이 나는 원망에 앞서 마음이 아팠다, 형의 심사가 몹시 뒤틀려 있다는 의미였으므로. 가까이 사람을 두고서도 뒤늦게 이국땅에서 불법체류자라도 된 느낌과 다르지 않을 그 외로움. 많이 가졌음에도 결국 남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열등감.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제 와 엉뚱한 소리를 하는 형이 원망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형이 보이는 어이없는 모습이 정말 아이의 어깃장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