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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10)

소설가 김외숙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Nov 17 2025 09:24 AM


  부모 같은 형과 형수에게 나의 장래를 의논하기 위해 그렇게 찾았을 때는 관심조차도 없더니, 가까스로 한 결정에 축하는커녕 엉뚱한 감정을 앞세워 애꿎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나는 괘씸했다. 
  ‘필요로 했을 때는 그렇게 자신들의 감정에 사로잡혀 외눈 한 번 주지 않더니 이제 와, 다 정해놓은 이제 와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그래서 불쑥 화가 솟구쳐 올랐다. 그러기에 진작 화해하고 동생의 장래에도 관심 좀 두지 싶은 원망이랄까?
  “그러기에 형이 집에 좀 계셨으면 좋았잖아요, 형하고 의논하려고 제가 얼마나...”
  “관둬 임마! 다 필요 없어!”
  형은 정말 화가 났던지 벌떡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끝까지 대화는 부재하고 말 것인가? 형이 집에 있어도, 없어도 대화는 불가능했다. 이젠 형제간의 우애에까지 금이 가고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했는지, 도무지 손 쓸 수 없도록 하는 이 현실에 어이없는 나는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 형수를 향해 ‘허! 하고 웃어버렸다. 형수 또한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웃고 있었다. 형수의 그 표정이 어쩐지 내게는 ‘그 봐라, 네 형이란 인간이 바로 이런 인간이야.’라는 듯 느껴져 더욱 불쾌했다. 
  형도 형수도 못마땅했다. 딛고 있는 얼음판이 산산조각이 될 것 같은 이 위기를 도저히 이대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오기가 솟구쳤다. 어차피 깨어지고 말 얼음판이었다. 그럴 바엔 내 손으로 깨뜨리고 싶었다. 식구들 모두 얼음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든 말든, 이젠 더 이상 방관자처럼 그들 주변을 배회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받쳐 오르던 화는 목구멍까지 치받고 있었다. 화가 솟구치니 숨쉬기조차 힘이 들었다. 두리번거리다 탁자 옆에 세워둔 골프클럽을 하나 잡았다. 형이 정성껏 광택을 낸 것이었다. 나는 씨근대며 차고로 나갔다. 
  “삼촌!”
  나의 표정과 행동에 심상찮음을 느꼈던지 형수가 나를 불렀다. 그러나 나는 무시했다. 형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나는 잘 닦여 한 점 먼지도 허용치 않는 형의 벤츠로 가까이 갔다. 
  날 새면 얼굴만 내민 후 티미와 놀다가 클럽을 싣고 골프장으로 카지노로 가는 형을 움직이게 하는 차. 형의 부재, 그래서 둘의 갈등의 골을 더 깊이 파는 역할을 한 것은 형이 가진 부였고, 그것의 상징은 벤츠였고 골프였다. 마치 사랑스러운 여인이듯 형이 늘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벤츠, 언제든 키만 꽂으면 형이 원하는 곳으로 움직일 태세를 갖춘 벤츠의 보닛 앞으로 갔다. 그리고 들고 있던 반짝이는 골프클럽으로 내 힘을 다해 보닛 중앙에다 내리쳤다. 
  “이것 때문이에요, 이것 때문이라고요!”
  내가 소리치며 다시 한번 클럽을 벤츠의 면상에다 내리쳤다. 이제는 내가 미칠 것만 같았다.
  “집안이 엉망 돼가는데 벤츠가 무슨 소용입니까!”
  내가 있는 힘을 다해 연거푸 내리치며 고함을 지르자 그때 서야 형과 형수가 뛰어나왔다. 
  “야!”
  “삼촌!”
  “고작 이런 거였어요, 형 아메리칸 드림이? 깨지고 망가지고 공중분해 되는 거? 돈만 벌면 뭣해요, 소중한 건 다 깨어질 판인데!”
  내가 다시 클럽을 휘두르며 씩씩댔다. 
  “잘 가라던가, 같이 살자 라던가, 그 말이 듣고 싶어, 그렇게 찾아와도 형은 벤츠나 타고 다니고, 형수는 술이나 마시고, 이르려고 미국 와서 그 고생했어요? 이 꼴 보자고 저 형한테 온 줄 아세요? 형수님도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이혼 요? 반반씩 요? 그래, 반반씩 찢어발겨서 어쩌자는 겁니까? 애들도 하나씩 나눠요?”
  내가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형도 형수도 날 부르기만 해 놓고 입을 연 채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런 형님 두고 내가 어떻게 떠나라고 맨 날, 에잇!”
 “왜 이래, 삼촌! 차가 무슨 죄라고!”
  이미 움푹 팬 벤츠의 면상에다 다시 한번 클럽을 휘두르려는데, 사색이 된 채 날 바라보던 형수가 불쑥 내 팔을 붙들고 늘어지더니 있는 힘을 다해 내 등짝을 후려치며 골프클럽을 빼앗는 것이었다. 
  “누가 이러고 싶어서 이래요? 삼촌까지 왜 이래요!”
   얻어맞은 아픔보다 형 대신 나선 형수의 행동에 오히려 더 어리둥절해 멀뚱히 형수를 바라보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 차가 어떤 찬데, 형한테 어떤 찬데...”
   형수가 원망이 철철 넘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중얼거리더니 그만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하여 내 청각에 입력된 형수의 말을 급히 반추하였다. 그것, 형수의 말이 두둔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것은 분명 두둔이었다. 관계가 악화하기 시작한 후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던 형에 대한 형수의 두둔, 날마다 첨예한 감정의 대립으로 살벌한 기운이 흐르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나 개들까지 긴장에서 놓여날 수 없도록 살벌하던 관계, 이제 그 긴장마저 팽창하다가 터져 버림으로써 급기야 공중 분해되고 말 것 같던 관계였다.
  “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음이 형도 어이없던지 돌아서서 머리를 긁적였다. 형수의 손에 여태 쥐어져 있던 클럽이 스르르 형수의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살았는데 이 땅에서...”
  형수는 퍼질러 앉더니 작정한 듯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다 보니 험난했던 지난 세월마저 서러움에 북받치게 하던지 창하듯 넋두리했다. 
 “거참, 꼭 말로 해야 아나?”
  그즈음에서 ‘허!’하며 돌아선 채 머리를 긁적이던 형이 형수를 바로 바라보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그러나 말문은 닫은 채, 형수와 형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형과 형수 두 사람이 건 마술에 걸리기라도 한 듯 헷갈렸다.
 ‘매직인가, 이것도?’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내 눈앞으로 형의 손을 덮고 있던 검은 보자기에서 나온 하얀 새가 ‘푸드덕’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기라도 한 듯 내 속에서 탄성이 비어져 나오려 했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방울을 눈꼬리에 매단 채 내가 허공을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러나 그것은 입 속에서만 맴돌 뿐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형수는 내 등을 내리치던 그 손으로 이제는 가슴을 치며 울고 있다. 그 속에 쌓인 것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험난하던 세월 동안 언제 한 번 속을 부려놓고 울고 싶어도 등 도닥이며 들어줄 사람이 없어 형수는 가까이 있던 이상무를 불렀던 것일까? 늘 일만 해야 했던 그 세월이 버거워 술로 잊으려 했던 것일까? 친구도 피붙이도 가까이 없는 갱년기 여인의 울음이었다. 
  형은 돌아선 채 말이 없었고, 벤츠는 잔뜩 면상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가도 되겠구나.’
  구태여 ‘마음 편안히 떠나라.’ 라던가, ‘나랑 살자.’라는 말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마음이 몹시 허탈했다, 마치 그러지 않아도 될 어떤 일에 혼자 진땀 흘리며 용쓰다가 풀려나기라도 한 듯. 

 3.

  이제 잠시 후면 나는 아메리카를 떠난다, 공부를 위해 왔던 형이 사는 아메리카. 
  내가 목표한 이 땅에서의 꿈은 이룬 셈이다. 내게 부모 같고 친구 같고 때로는 애인 같기도 하던 형과 형수, 그들의 이 땅에서의 행복 없이는 내 꿈도 온전히 이루었다고 할 수 없는데, 나는 이제 그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금방 내 눈앞에서 분해되고 와해 될 것 같던,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날 것 같던 형의 가정은 두 사람이 부린 마술의 힘으로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칼로 물 베기 같은 것이 부부 싸움이라더니 베어질 수 없는 것을 베려고 하니 그들이나 나는 그토록 마음을 졸여야 했고, 힘들어야 했던 것일까? 그러나 두 사람이 보여준 마술의 비밀은 나는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들의 부린 마술은 어느 한쪽이 ‘ 내가 잘못했다.’라던 가, 하다못해 ‘미안했다’란, 철천지원수가 되기 직전까지 간 관계에서는 한 번은 있어야 됨직한 과정을 건너뛴, 아니 숫제 필요조차도 없다는 듯 생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순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거짓말처럼 두 사람이 다시 예전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태여 많은 말이 필요치 않은 관계, 그냥 눈빛 하나로, 그 속에 감춰진 마음 하나로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될 수 있는 관계. 그것은 어쩌면 오랜 세월 한 몸이 되어 서로를 쓰다듬으며 보낸 세월이 만든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장가가 보세요, 삼촌도.”
  끝까지 어리둥절한 채이던 내게 형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형의 마술의 비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같은 형수의 묘한 미소였다. 웃는 형수의 하얀 치아들이야말로 형의 손에 씌워진 검은 보자기를 젖히고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는 하얀 새 떼 같았다. 
  “너 많이 컸더구나, 짜아식. 가서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
  “그때는 혼자 오지 말고 식구들 데리고 오세요, 삼촌. 아니, 내가 참한 색싯감 찾아볼까?”
  형과 형수는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 그러나 여유를 부리며 웃고 있었다. 형수는 ‘참한 색싯감’이라고 했지만, 내 눈엔 오히려 눈물 글썽이는 형수가 또다시 참한 여성으로 보인다. 
  “형수 같은 사람 있으면 장가갈게요.”
  나는 행여 불쑥 솟구치는 내 충동을 나도 모르게 흘리기라도 할까 씨익 웃으며 서둘러 출국장으로 나갔다. 비록 문 하나 사이였지만 출국장 이쪽과 저쪽은 서로 낯선 땅이었다. 나는 형과 형수를 향해 한 번 손을 크게 흔들고는 돌아섰다.
  
  느릿하게 땅 위를 구르던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속도를 재촉하더니 방금 땅을 박차고 날기 시작했다. 마치 경지 정리를 잘 한 우리 땅의 평야 같은 눈 아래의 뉴욕, 내 젊음이 서린,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도시. 비행기는 형과 형수를 남긴 채 지금 자꾸만 위로 솟구치고 있다. 태평양 너머의 내가 당도할 땅은 귀향하는 내게 어떠한 기분을 안길까? 
  이제 이미 땅 위의 것들은 구름 속에 가려지고 나는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다. 아메리카에서의 내 꿈은 이루었으니 내 남은 삶의 꿈은 그 땅에서 이루게 될까? 꿈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관련된 주변의 꿈까지 이루어져야 진정한 꿈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형 내외와의 관계를 통해 깨달았다. 그것은 아메리카에서 얻은 부수적인 소득이기도 하다. 
  
  마치 거실의 소파에 기대고 있기라도 한 듯, 비행기는 지금 안락하게 날고 있다. 나는 좀 자야겠다. 아메리카에서 이룬 꿈을 한국이란 낯설지 않은, 아니, 어쩌면 아메리카보다 더 낯설 수 있는 땅에서 다시금 펼치려면 나는 좀 자둘 필요가 있다. 좀 쉴 필요가 있다. 
  모처럼 긴장 없는 부드러운 잠을 청하며 나는 눈을 감는다. 감은 내 눈앞으로 형의 손을 덮고 있던 검은 보자기에서 나온 하얀 깃털의 새가 ‘푸드덕’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고 있다. 내게 그것의 비법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매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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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외숙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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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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