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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왔을까?
김외숙의 문학카페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Nov 20 2025 10:14 AM
동네, Niagara On The Lake가 한결 고요해졌다.
늦가을에 들면서 아침마다 들려오던 잔디깎이 소리가 멈췄고, 무엇보다도 동네를 찾던 관광객들 발걸음이 덜하기 때문이다.
지난봄부터 이 늦가을까지 나도 손님을 많이 맞았다. 국경 너머에서 온 글 친구들, 서울서 온 가족과 친구, 그리고 가까운 도시에서 온 지인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몇 그룹의 손님들에게 바람을 맞았다. 그들은 내가 장거리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늘 맞았던, 초대 없이도 연중행사로 방문하던, 할로윈 날의 어린 손님들이다.
내가 믿는 종교의 관점에서 할로윈은 지키지 않아야 할 행사이지만, 나는 그날의 어린 손님들에게 따로 나름의 의미를 두고 준비한 선물 나누기를 좋아한다. 노년 인구가 더 많은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 잠시라도 즐거움을 나누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할로윈 행사는 스물한 해 전 이 땅에 왔을 때, 처음 경험했다.
눈에 보이던 모든 것이 낯설던 그때, 독특한 복장을 하고 캔디 바구니를 내밀던 아이들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의 정월 대보름날 행사를 떠올렸다. 백가반이라 하여 아이들이 복조리를 들고 이웃에 다니며 오곡밥을 얻던 유년의 풍습이었다. 남의 집에 가서 아이들이 조리를 내밀면, 어른들은 오곡밥을 주던 그 행사였다.
세월 지나 생각해 보니, 백가반이 그 해 아이들의 운수나 건강을 위한 세시 풍습이기도 했지만, 너나없이 가난하던 시절이라 풍습이란 이름으로 허용된, 밥 동냥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라도 허기졌던 아이들 배를 채워야 했고, 아이 어른 모두가 배고플 때였다.
이미 노년이 된 그 아이들은 그때의 경험을 가난하던 한때의 아픈 기억으로보다, 밥 동냥조차도 풍습이란 이름으로 당당하고 즐겁던, 삶 속의 추억으로 여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언스플래쉬
정월 대보름의 백가반과 캔디 바구니 할로윈의 유래는 다르지만, 대보름의 행사를 기억하는 나는, 할로윈의 아이들 방문도 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내 집에 오는 어린 손님들을 즐겁게 해 보내고 싶다는 마음의 관점.
드디어 10월 말을 며칠 앞두고, 캔디를 사고 잘 익어 빛깔도 탐스러운 사과와 귤로 몇 봉지 만들었다. 나의 할로윈 선물 봉지엔 아이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캔디와 함께 과일도 함께 넣는다. 과일은 할로윈의 의미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캔디만 먹일 수 없기 때문이고, 어차피 나는 나의 손님들에게 즐거운 추억 하나를 안길 목적이기에 내 방법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드디어 시월의 끝날 저녁이었다. 독특한 복장의 아이들이 노크하거나 초인종을 누르고, 나는 선물 들고 나가 그들이 내미는 바구니에다 넣고,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짓는 장면을 상상했다. 늘 그러했듯, 몇 걸음 물러선 곳엔, 엄마들이 지켜보는 장면도 내 머릿속으로 흐뭇하게 스쳤다. 엄마들이 동행하는 이유는 밤길이므로 안전을 위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인기척이 있어야 할 시간에 아무 기척이 없었다. 기다리다가 현관문을 열어 보았지만, 적막한 어둠뿐이었다.
내가 날짜를 잘못 알았나?
나의 손님들은 그 밤, 약속한 듯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한 번도 거른 적 없던 어린 손님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인구 감소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노년 인구가 우세한 이 동네도 피할 수 없던 현실이었을까?
나의 손님들 방문이 없던 그 밤에, 나눠주지 못한 캔디를 혼자서 녹여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근데, 왜 안 왔을까 하고.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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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