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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은 고갯길을 걷다
이현수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Nov 24 2025 10:48 AM
한국에 체류하던 아내와 나는 친구 부부와 함께 늦가을에 당일치기 문경새재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스쳐 지나갔을 그 유명한 고갯길을 우리가 밟아 본 것이다.

문경새재. 한국관광공사 사진
우리가 판교역에서 탑승한 KTX열차는 한 시간 반을 달려 연풍역에 닿았다. 창밖 풍경은 이미 가을빛으로 완숙했다. 들판의 벼는 고개를 숙였고, 멀리 겹겹이 포개진 산들은 옅은 안개 속에서 수묵화처럼 번져 있었다. 연풍역을 나서자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백두대간 마루를 넘는 높은 고개이다 (해발 642미터). 옛날에 영남 사람들은 길이가 약 6.5미터인 오르막길(조령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가 문경새재를 넘어야 한양에 갈 수 있었다. 현재의 황톳길은 굴곡 많던 옛길을 곧게 펴고 확장해 울창한 숲을 가로지르는 넓은 산책로로 조성되었다.
고령인 우리는 무리하지 않기 위해 조령길을 거꾸로 걸으려고 연풍으로 간 것이다. 연풍역에서 버스로 10여분간 산을 오르다가 조령산 등산로 입구에서 하차하여 반시간 걸어서 문경새재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는 제3관문 조령관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이 관문에서 제2관문 조곡관, 다시 제1관문 주흘관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 갔다. 황톳길 위에 낙엽이 수북이 깔려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을의 숨결처럼 들려왔다. 바람은 은은한 솔향을 실어 나르며 우리의 뺨을 스쳤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숲 속의 길을 천천히 걸으며 오래전에 문경새재를 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입신출세를 꿈꾸며 과거길에 나섰던 젊은 선비들, 등짐을 지고 장터로 향했던 보부상들이 걸어 올라갔던 그 길위에서 나는 험난한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던 옛 사람들을 떠올리며 깊은 연민을 느꼈다.
길가에는 문경새재를 노래한 시비(詩碑)들이 여럿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문재가 뛰어난 옛 선비들이 남긴 시를 읽으며, 그들이 느꼈을 정취를 음미했다.
평지에 있는 제1관문 주흘관에 다다르자 하늘은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붉게 물든 산자락이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문경새재 고갯길을 걷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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