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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변웅전입니다’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11 2025 12:02 PM
지난 11월 23일, 아나운서 출신인 변웅전(邊雄田) 전 국회의원이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는 직장 선후배로 만나 함께 근무했기에 그의 죽음은 남다르다. 1991년즈음, 나는 MBC에서 출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당시 변웅전 아나운서 국장으로부터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왔다. “내가 이번에 자서전을 내려고 해요. 혹시, 좀 황현수씨가 도와줄 수 있을까 싶어서요” 한다. 그때 방송에서 보던 그 깔끔하고 매끈한 외모와는 달리 소박하고 털털한 말투가 첫인상으로 남는다.

변웅전은 1970~80년대 방송계를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어나운서이자, M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명랑운동회’,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4년 뒤, “안녕하세요? 허~어허, 변웅전입니다. 시간 되시면 차나 한잔 하십시다” 한다. 그는 당시에 자회사인, <MBC예술단> 사장으로 재임 중이었다. 비서가 녹차를 내오자, 나를 부른 이유를 말한다. “황 차장, 나와 함께 같이 일해 줄 수 없으실까?” 하며 파견 근무를 부탁했다.
당시, 자회사로 파견 근무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MBC예술단>은 미래가 불투명해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평소 친분이 있던 민영기 기획실장에게 ‘파견을 가도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
“글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누가 같이 일하자고 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인데… 그리고 변 사장이 허투루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의 이미지가 MBC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해서 같이 근무하면 좋을 듯 싶은데…” 한다. 3주 후, 나는 변웅전 사장과 아침마다 티타임을 가지는 보직을 받고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1940년에 충청남도 서산군 서산면에서 태어났다. 서산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리과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는다. 1963년 중앙방송국(KBS 전신)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1969년에 MBC로 자리를 옮긴다. 1970~80년대에 ‘명랑운동회’,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다. 공개 방송에서 특유의 재치와 순발력으로 현장 분위기를 이끌고, 대본에만 의존하지 않고 출연자나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즉흥 진행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아침 프로그램인 ‘안녕하세요 변웅전입니다’의 진행을 맡으며, 다양한 유명 인사들과 친교를 쌓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내 재산의 일부였다’고 회고한다.
변웅전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MBC를 떠났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 일화를 소개하려면, 당시 MBC의 대표이사 선정 과정을 좀 설명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MBC 사장 임명 과정은 <MBC 주주 총회>에서 매우 합법적이고 독립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MBC 주식의 최다 지분(약 70%)을 소유하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약칭 방문진)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MBC 사장 임명을 ‘방문진’이 결정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들을 누가 임명하느냐 하는 것이다. 방문진 이사 9명 전원을 정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가 임명했다. 그래서 대통령은 직접 MBC 사장을 임명하지 않지만, 자신이 임명한 이사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MBC 사장 인선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93년 초에 새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MBC도 신임 사장 선임을 앞둔 주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사장 후보로 보도국의 이득렬 앵커와 강성구 국장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 청와대 홍보 수석비서관이었던 이경재가 평소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 변웅전을 청와대로 불러, ‘MBC 사장감으로 누가 좋은가?’를 묻는다. 변웅전은 “이제까지 외부 인사가 사장을 했는데, 새 시대에 맞춰 이번은 MBC 내에서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조 분위기도 있고… 그동안 MBC를 위해 열심이고 대중적 신뢰도와 이미지가 좋은 이득렬 앵커가 하면 좋겠다” 고 말한다. 그렇게 면담이 끝나고 나오는데, 로비에서 강성구를 마주치게 된다. 서로 머쓱한 상태로 인사를 했지만, 눈치 빠른 강성구가 ‘이득렬’을 밀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서로 친구 같았던 강성구와 변웅전의 사이는 나빠진다.

1972년부터 시작된 MBC <명랑운동회>를 변웅전이 진행을 맡으며,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중계 스타일로 국민적인 인기를 얻는다.
1993년 3월, 결국 강성구가 본사 사장이 되고, 변웅전은 1994년에 <MBC예술단> 사장으로 발령받는다. 1995년, 변사장은 남북 관계를 주도했던 안기부와 함께 <사할린 남북 합동 공연>을 추진한다. 지금 생각해도 남북이 함께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변웅전은 마당발 친맥(?)을 동원해 그 어려운 과정을 헤쳐 러시아 사할린에서 극적으로 공연을 올린다.
형식적인 공연 목적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으로 사할린에 남겨진 한인 동포들의 애환을 위로하고 남북의 화합을 도모한다고 했지만, 결국 ‘남북통일’이 목표였다.
당시 최고 인기가 있었던 김건모를 비롯해 신승훈, 노영심, 현철 등 10여 명의 톱스타급 가수와 연예인, 예술단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북한에서는 평양예술단 등 전문 예술단 소속의 성악가, 무용가, 기악 연주자 등이 출연했다. 사회는 변웅전과 북측 여자 아나운서가 함께 진행했다.
이 공연은 단순한 노래 교환을 넘어, 남북 출연진이 합동으로 상당히 화해적이고 상징적인 내용으로 기획된 훌륭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안기부의 허가를 받아 진행된 이 <사할린 남북 합동 공연>은 MBC에서 방영되지 못했다. 그 주요 원인으로는 강성구가 변웅전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 주도권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강성구는 그에 그치지 않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사할린 남북 합동 공연>을 하며, 북측에게 전달한 금품 과다 지출 등의 책임을 물어 변웅전을 경질한다.
졸지에 야인이 된 그에게 김종필 전 총재는 정치 참여를 권유한다. 하지만, 방송으로 돌아갈 꿈이 있어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김 총재의 설득에 결국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한다.
그 뒤 김종필을 ‘JP’라고 짧고 간결하게 불러, 당시 딱딱한 구시대 정치인의 이미지를 벗게 하고, 또한 ‘DJP 연합(김대중-김종필 연합)’이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그는 고향인 충청남도 서산·태안 지역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
그가 MBC를 떠나며 “나, 다시 돌아올 거야!” 했던 모습이 선하다. 아마, 그는 정치인보다는 방송인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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