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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온도
최서린(문협회원)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18 2025 04:32 PM
수필이 있는 뜨락(16)
추워도 너무 춥다. 도움을 요청할 기력조차 없어 눈도 뜨지 못한 채 그저 오롯이 떨 뿐이다. 잠시 후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내 몸 위에 덮인 담요를 들추고 안쪽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는다.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몇 장의 담요를 더 가져와 겹겹이 쌓은 뒤 네 귀퉁이를 내 몸 아래쪽으로 꼼꼼하게 넣어 준다. 그제서야 따뜻한 바람이 느껴진다. 따뜻해지는 피부아래로는 여전히 차가운 피가 도는 것 같지만 그래도 좀 낫다. 이제 견딜 만하다고 안도하는 사이 감긴 눈 위로 깜박깜박하던 불빛이 깜깜한 어둠으로 뒤덮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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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커튼 고리들이 레일을 따라 빠르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커텐으로 가려진 너머에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기계를 치우는 듯했고, 다른 누군가가 시간을 초단위까지 읽고 있었다. 가족들이 들어오기 전에 정리를 끝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누군가 돌아가셨나 보다 했다. 그리고 전에 정신이 잠깐 들었을 때 옆 침대에서 몸부림치다가 떨어진 환자가 있었고, 그때문에 주변이 몹시 소란했던 기억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커튼이 열렸다. 하얀 시트가 깔린 자리위에 환자복이 납작하게 접혀 있었다. 전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끙끙 대던 신음 소리로 기억되는 그를 잠시 생각하는 동안 새로운 환자가 왔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덜 풀렸는 지 조용히 잠만 자고 있었다.
견디기 힘들었던 추위는 어느덧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선이 맞닿는 곳, 방의 중앙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데스크가 둘러 있고, 안쪽으로 간호사들이 몇 명 앉아 있었다. 밤인지 낮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환한 불빛에 눈이 시렸다. 몇 시나 되었을까? 시계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았다. 중앙의 데스크 안 쪽에 하얗고 큰 사각 기둥, 시계가 있음 직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기둥 위쪽으로 모니터가 달려 있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띄엄띄엄 의자가 놓여 있는 곳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 눈에 들어오는 남편이 세상 풀 죽은 어깨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응급실이었다.
하루가 지나는지 이틀이 지나는지도 모른 채 약기운이 돌면 잠이 들고, 눈을 떠 하는 일이라고는 모니터안의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분주한 간호사들이 오가는 횟수를 세어 보는 것뿐이었다. 수혈을 여러 팩 해야 할 만큼 대수술이었기에 응급실에 들어왔다지만, 몸이 회복하는 동안 정신은 또렷했기에 나는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낼 궁리를 했다.
시계가 없는 응급실이었지만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오전 7시면 의사와 간호사들이 회진을 했고, 세 번의 식사 시간과 두 차례 허락되는 면회는 매번 같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때문에 24시간 환하게 밝혀진 불빛 속에서도 밤인지 낮인지 대강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해보며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스스로 뿌듯해하며 시간을 보냈다. 더이상 시계를 찾거나 시계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 자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모니터를 관찰하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방법 중 하나였다. 침대에 누워서 똑같은 하루를 여러 번 보내는 동안 그림처럼 멈춰 있던 모니터 안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져갔다. 오래도록 앉지 못하고 선 채로 응급실 문만 바라보고 있던 사람은 어느 날부터 인가 보이지 않았고, 의자 서너 개를 붙여 놓고 누워 있던 사람도 사라졌다. 그런 가하면 또다른 사람이 서 있던 사람의 자리에 서고, 누워 있던 사람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알 수는 없지만, 그들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부디 행복한 결말에 의해 사라졌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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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일반실로 옮겨졌다. 환자복을 입었을 때와 달라진 모습에 내 일처럼 기뻐해주던 간호사들의 얼굴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지금 내 공간에는 시계가 있고, 모니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세상을 볼 수 있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추위와 그것을 이겨내도록 도와준 사람들의 따뜻함보다 더 강렬한 느낌은 없다. 내 평생 가장 추웠던 날 체온을 되찾도록 도와준 사람들과 간절한 기도로 응급실 주변을 채웠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만큼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주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기 위해 항상 내 주변을 살피려고 노력한다.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돌봄을 직접 돌려줄 수 없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Pay It forward…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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