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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김외숙의 문학카페
- 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 Dec 20 2025 01:02 PM
나는 그 분을 대면하여 뵌 적이 없다.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 온라인을 통한 어느 모임에서 뵌 것이 다였다. 모임의 성격상 자유롭게 참가자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던 시간이었음에도 그분은 늘 단아하고 고운 외양으로, 고요히 화면만 주시한 채 듣기만 했다.
그분이 특정 부문에서 프로로 활동하는 분이란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비록 사는 나라가 다르고, 그래서 화상을 통해서이지만 정기적으로 뵙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안부를 나누게도 되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오간 안부 글을 통해 그분이 혼자 사신다는 사실, 삶에서 이룬 프로의 세계를 더 깊이 추구하고 이루려는 열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부 글의 행간에 묻은 그분의 사유 세계와 목표를 향한 고요한 열망의 자세는, 나도 따라 하고 싶은 것이었다.

언스플래쉬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내게 없는 듯 흐르고 있던 의욕이랄까, 욕구랄까 하는, 나를 지탱하게 하던 에너지가 쑤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의욕 상실증세였는데, 가장 만만하게 추정되던 이유로, 잿빛으로 깊어 가던 날씨를 들 수 있었고, 늘 함께 한 짝 없이 홀로 지내는 일에 아직 덜 적응한 탓이란, 그리 틀리지 않을 자가 진단도 한몫했다.
그런데 의욕 상실증은 생각보다 심각하게 내 일상을 지배하면서 아직은 창창(?)할 내 앞날을 막막하게 여기도록 했는데 내 심정이 그러했을 때, 그분에게서 안부 글이 온 것이다.
‘이룬 것 없는 한 해.....문 닫고 심연으로 숨어들려 한다’, 라는 내용의 안부였다.
‘문 닫고 심연으로 숨어들려고 한다.’라는 그 문장에서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내 눈은 그 문장을 뒷받침할 ‘아무것 이룬 것 없는 한 해’란 글귀에 꽂혔다. 나와 비슷한 증세 같기도 하고 조금 다른 것도 같았는데,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자락을 밟고 선 그분과 나, 마음 스산하게 하던 두 여인의 그림이 몹시 걱정스러웠다. 나는 그분에게 국제 전화를 했다.
초겨울에 접어들면서 의욕 상실과 함께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핑 돌면서 우울하게 하던 증세,
그것이 정말 우울증의 시작이라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 같아, 내가 내 증세를 진단하려 그 이유를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이 한 해 나는, 스무 해 동안 매일 24시간을 함께하다가 한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후 지금은 처음 맞은 계절 속에 있었고, 하필이면 가득 쥐고도 빈손인 듯 여기게 하는 연말의 끝자락을 밟고 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울적할 깊은 겨울 속에 있었다. 그러니까 자가 진단에 의하면, 나는 눈물을 동반한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는 최적의 환경, 그것은 곧 좀 울어도 이해되는 시간 속에 있다는 의미였다.
나의 경우 돌이켜보니 12월 연말엔 늘 미흡했고 아쉬웠고, 후회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일 년 열두 달, 매일 놀고, 먹고, 게을렀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정신은 늘 뭔가를 생각했었고, 손은 정신이 시키는 뭔가를 컴퓨터에 옮기는 일로 수고했었다. 그 일 아니어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으면서도 견뎠고, 받은 스트레스만큼 말로써 글로써, 성질로 되갚지 않으려 참은 것, 또한 부지기수였다. 비록 손에 남을 열매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 우리 속에 녹아 정신의 깊이와 폭 확장에 분명히 기여했을 그 가치까지 이 연말에 함께 정산한다면, 그리 손해 본 한 해는 아니지 않나 싶은데, 눈이 자꾸 빈손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해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찾아오는 이 불청객 같은 연말의 순간, 한 장 남은 달력 깔고 앉아 ‘다 이루었다!’라고 고백할 사람은 누군가?
우리는, 올해도 하루하루를 잘 넘긴 것으로, 겨우 몇 번이었을지라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무엇보다도 그 많던 위험과 위기, 탄탄대로 같았지만 때로 좁디좁던 365일의 길을 무사히 걸어 또다시 이 해 끝자락에서 한 해를 정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잘 산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이루지 못하고 남겨두는 것이 있어야 새해에, 또 그다음 해에도 또 뭔가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울고 싶은가?
그럼, 우는 거다. 우는 일에 우리가 언제 너그러웠던 적이 없었으므로.
아직도, 문 닫고 싶으신가?
닫으시라,
그 문, 새해에 다시 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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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 기자 (press1@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