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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오피니언

겨울이 깊으면 봄은 멀지 않으리

이남수(문협회원)


Updated -- Jan 28 2026 05:19 PM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23 2025 05:10 PM

수필이 있는 뜨락(17)


미국에서의 첫 겨울, 남편의 공부로 해서 처음 해외에서 살게 되었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도시, 미니애폴리스는 겨울이 아주 긴 곳이다. 그곳에서의 첫 해 겨울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10월이나 5월에 눈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이다. 하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3월이면 여기저기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전해진다. 반년이 겨울이어서 계절 구분을 “공사중”이거나 아닌 것으로 구분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가능한 날씨이다. 첫 해 겨울을 지나면서 2월이 되니,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눈 폭풍에 길이 막히고 집이 무너지고, 온 세상은 소리가 끊어진 듯 고요가 가득 찬 시간과 공간이 좋았다. 그러나 2월이 끝나갈 즈음에 그런 상황은 나에게 고립감과 답답함으로 엄습해 왔다. 여기에서는 그런 심리적상태를 Cabin Fever(춥고 긴 겨울 동안 실내에 갇혀 지내면서 느끼는 밀실 공포, 권태, 짜증, 답답함 등의 심리적 상태를 뜻하는 영어 표현)라고 불렀다. 세상 밖은 흰색과 회색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옷마저도 무채색으로 입고 살고 있으니 서울의 봄 소식이 들리면 내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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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be Stock

 

그러던 어느날, 내 또래 유학생 부인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날씨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했더니 나에게 식물원에 가자고 했다. 거기 가면 최소한 다채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첫 겨울에 아직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어서, 영어가 안되어서 더 답답했었다. 나중에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어떤 한국 할머니를 도와드리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늙어서 운전 못하고 언어가 안되면 타국 생활은 그게 곧 감옥이라고 얘기하면서 쓸쓸히 웃던 그 모습도 떠올랐다. 그 친구의 차를 타고 그 친구 애들과 우리 애들을 데리고 식물원을 갔다. 다행히 거기에는 형형색색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러고 나니 좀 마음이 풀렸다. 아이들도 모처럼 다채로운 색깔들의 향연에 들떠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거의 3주 전쯤 여기 토론토에도 주말에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면서 학교도 안 하던 휴교를 하였다. 보통은 눈오면 풍경을 즐기면서 음악도 듣고, 커피 한잔과 더불어 글쓰기도 하면서 잘 보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답답함과 고립감으로 그 눈 폭풍이 다가왔다. 아마도 2월은 다 지났고 올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은 겨울이었는데, 불현듯 이리 느껴지는 답답함은 무엇인가… 운전하더라도 웬만하면 갔던 길로 다시 가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내 성향이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이 폭설과 맞물려 드디어 오랜만에 너무나도 긴 겨울의 숨소리가 다시 느껴졌다. 마치 한 겨울 오두막에 갇혀서 꼼짝 못 하는 듯한 느낌을 옛날처럼 다시 마주한 것이리라. 원래 마지막 9부 능선이 제일 힘들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무거운 배낭 메고 설악산 마등령을 오르던 막바지에 느꼈던 기분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아홉 수가 늘 힘들다고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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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be Stock

 

불현듯 여행을 계획하게 한다. 어디든지 좀 콧바람을 쐬어야 한다는 것을 난 잘 안다. 아마도 잠깐의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향함은 일상에 대한 환기 효과라 할까. 요맘때면 한 번씩 발작처럼 일어나는 이 감정들,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몸도 많이 지쳐서 힘들어졌건만, 여전히 내 감정과 영혼은 청춘인 줄 알고 일어나는 이 감정을... 그래서 나이아가라를 다녀왔다. 굉음을 토하면서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보니 마음이 뚫리고 시원해졌다. 엄청난 양의 물은 물보라 속에 무지개를 만든다. 늘 그렇듯이 장대한 자연 앞에서 내 감정과 존재는 참으로 작다. 스스로에게 갇혀 자아 과잉에 빠진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토론토는 생각보다도 겨울에 의외로 갈 곳이 많지 않다. 운전을 싫어하는 나이기에 장거리로 운전하는 것은 내 선택지에 없으니까. 그나마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것은 어쩌면 신의 한 수라고나 할까.

새로운 곳은 아니었으되 나이아가라를 다녀오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사순절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그런 겨울의 끝에서 느끼는 갈급한 감정의 뒤집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어서 본다. 부활절이 올 때쯤 겨울은 자리를 내주고 봄소식이 오겠지. 겨울이 깊으면 봄은 멀지 않으리. 오두막집에 갇힌 듯이 갑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타리오 호수의 거친 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리고 5월에 튤립이 만발하는 오타와 여행을 위해 호텔을 예약해야겠다.

 

문인협회-이남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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