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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개방도 좋다만
"간단한 문제 아냐"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an 05 2026 04:42 PM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월19일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북한의 로동신문을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을 때, 북한에서 체험했던 로동신문과 관련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평양 시내 호텔에서 남성이 로동신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북한의 관영 매체가 만들어내는 선전물을 한국과 같은 자유언론 체제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는 쉬운듯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992년 노태우 정부 때 남북 고위급 회담을 취재하러 북한에 갔을 때였다.
일행은 평양 근교의 북한의 영빈관인 백화원 초대소에서 3박4일 동안 묵었다. 방에는 TV가 있었고 그날 자의 로동신문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평양에 들어가기 전 안기부(현 국정원) 직원이 백화원 초대소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수칙을 말해주었다.
방마다 도청 장치가 설치돼 있으므로 언행에 조심하라는 것부터 로동신문을 쓰레기통에 넣지 말라는 것이 있어 의아했다.
우리 일행 직전에 평양에 갔던 남측 취재진 가운데 보고 난 로동신문을 쓰레기통에 넣었다가 북측과 큰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북측은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들어 있는 신문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은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원수님 모독’이라고 펄펄 뛰더라는 것이다.
그제서야 필자는 백화원 초대소의 화장실 변기 옆은 물론 방안 어디에도 쓰레기통이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자 로동신문에는 한국의 신문이라면 1면에서부터 여러 면을 털어 보도했을 남한 대표단 방북 소식 대신 김일성 주석이 전날 만난 제3세계 국가들의 외빈 접견 기사가 사진과 함께 1, 2면에 대서특필돼 있었다.
기사의 양과 사진의 크기가 1, 2면에서 똑같기에 북측 안내원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남한 신문은 이런 경우에 1, 2면 기사를 묶어서 하나로 만들고, 사진은 1면의 사진 한 장만 쓴다”는 나의 말에, 북측 안내원은 “그러면 평등이 아니다”라고 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신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쓰레기통이 없어서 그냥 놔둔 기억이 난다.
당시 4페이지였던 신문이 현재 6페이지로 늘었다는 것 외에 체제선전과 김일성 3대 우상화 목적의 매체 성격이나 편집 방침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한다.
통일부가 이런 신문을 한국의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겠다고 보고한 것이다.
홍진석 통일부 평화교류실장은 “현행법상 일반 국민은 로동신문에 대한 실시간 접근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이 로동신문을 인용해 기사를 쓰고, 연구자들이 연구한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북한 노동신문을 못 보게 막는 이유는 국민이 그 선전전에 넘어가서 빨갱이가 될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 “국민을 주체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선전·선동에 넘어갈 존재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 “오히려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저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할 계기가 될 것 같다”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이 로동신문 등에 대한 접근 제한을 풀라고 지시하면서 “북한 자료를 공개하자고 하면, 대한민국을 빨갱이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이 있을 것 같다”라고도 했다.
그의 예상대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 로동신문을 우리 국민들이 못 보게 막지 말라고 호통쳤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북한에 백기 투항한 것”이라고 싸움을 걸었다.
북한 매체의 한국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남한체제를 헐뜯는 방향으로 재가공한 거짓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보도는 한국에서는 대부분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지만, 북한은 남한 내의 여론 분열과 북한의 내부 결속에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분단 이후 끊임없이 시도해 왔다.
그런 북한 매체의 보도 내용이 남한 사회에 공개된다면 대부분 외면당할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짐작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종북세력이 엄연히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의 매체 개방은 종북 세력의 활동 역량을 키워 주는 반면, 일반인들에겐 북한의 기만적인 선전술에 대한 경계심을 이완시킬 수 있다. 종북 세력들이 극소수라고 해도 그들이 일으키는 소음은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고, 불필요하게 체제 유지의 비용만 늘릴 우려가 크다.
따라서 긁어 부스럼이 될 우려가 있는 전면 개방 방식보다는, 국정원이나 언론사 등 전문 기관들이 북한 매체의 보도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해서 일반인의 바른 이해를 돕는 현재의 틀을 유지 강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북한 매체의 보도는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 부분을 제외하면 자료로서의 가치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매체에 인터넷으로 접속해 자료를 챙겨보고 있는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치로 인해 기존의 통로마저 막힐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북한 측이 한국 등 외부의 접속을 차단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폐쇄할 가능성도 있고, 그에 앞서 외부로부터의 접속량 폭주를 감당할 능력이 안 돼 홈페이지가 다운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개방을 체제 붕괴의 동의어로 여기는 북한이 한국의 개방 조치를 따라 할 가능성은 전혀 없겠으나, 대남 선전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그것만으로 우리의 개방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엄존하는 종북세력으로 인해 그것조차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한국은 AI 기술의 발달로 지식의 보편화와 함께 확증편향이 심화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종북 세력에게는 북한 매체 개방은 북한에 대한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남북 간 매체 개방에서 신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TV 등의 영상매체들이다.
동서독의 통일도 TV의 개방으로 성취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동독은 송출 방식을 달리해 서독 TV의 동독 주민의 시청을 막으려고 했으나, 기술적으로 역부족이어서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가정에 보급된 TV의 주파수를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한국TV의 시청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그것으로 모자라 한국의 TV나 라디오 시청 행위를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최고 사형까지 엄중히 처벌한다.
남한의 유행어를 말하는 것조차 처벌 대상으로 삼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이라는 것도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적국(敵國)으로 규정한 이후 남북 간의 대치는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휴전선에 지뢰를 매설하기에 바쁘고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 및 철로를 폭파했다.
한국의 북침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탈출을 막을 목적이 더 커 보인다.
코로나 19가 한창이던 2020년 북한은 청정지역 유지 목적이라며 북으로 들어오는 외부인을 사살하면서까지 막았다.
그 대표적인 희생자가 그해 9월 북한 해역에서 표류 중 북한해군 당국에 의해 총살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씨였다.
최근 이 사건 1심에서 피격 사실 은폐혐의로 기소된 안보 라인의 관련자들이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표류냐 자진 월북이냐가 쟁점이었던 이 사건은 그런 쟁점 이전에 구조를 요청하는 이씨를 사살했다는 점에서 북한 체제의 비인간성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북한은 북한을 탈출하는 주민에 대해선 등 뒤에 총을 쏘아 사살했다.
이처럼 북한은 외부 정보의 유입이나 내부정보의 유출을 필사적으로 막는 체제이고, 그같은 단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체제가 만들어 내는 뉴스를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가 얼마나 있나?
대통령은 오히려 야당과의 대화에 더 개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LA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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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