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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신춘문예 수필 입선
김유인 '내 인생 최고의 선물'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an 12 2026 07:09 AM
한인문인협회 주최, 한국일보 후원
국민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나에게 큰 보따리가 도착했다. 한글을 깨우치지 못할 때라 거기에 내 이름이 적힌 줄은 몰랐다. 우표가 아주 많이 붙은 커다란 보따리였다. 언니들은 그것이 내게 온 선물이라고 알려주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큰 소포를 풀었다. 단단히 묶인 포장 안에서 선명한 빨간색 란도셀 가방이 새 가죽 냄새를 방안 가득 풍기며 나왔다. 당시에는 귀했던 분홍색 자동 우산과 공주 그림이 그려진 자석필통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것들을 보자 언니들은 부모님께 불평 섞인 투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온전히 내 것이므로 언니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일본에 사시는 친척분이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다고 보내 주신 것이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도 상당히 비쌌던 가죽 란도셀의 선명한 빨간색을 잊을 수 없다. 당장이라도 가방을 메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입학식 전에는 가지고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다. 나는 부모님이 사준 운동화를 신고, 가방을 메고, 분홍색 자동 우산을 피고, 방안을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방 안에서 우산을 피는 게 아니라고 질색을 하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친구들 앞에서 자동 우산을 펼치며 어깨를 으쓱했고, 어머니께서는 혹시 귀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셨지만 다행히 오래 사용했다.
하지만 그 가방의 가치를 모르는 나는 학교에 입학을 하자 그렇게 좋은 가방이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가방을 든 애가 전교에서 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큰 운동장에 나만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내가 남과 다른 게 싫었다. 게다가 내 가방은 통가죽이라 너무 무거웠고, 1학년이 들기에는 수납할 곳이 너무 많았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천이나 인조 가죽으로 된 가방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버지께서는 “일본 아이들은 국민학교 6학년까지 드는 튼튼한 가방이다.”라고 하시며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계속 불평을 해서 결국 4학년 때 다른 아이들이 드는 평범한 가방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포기한 것은 무거운 통 가죽 가방이 아니라, 여섯 해의 시간을 준비해주신 부모님과 어른들의 묵직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됐다.
입학하던 날부터 어머니께서는 연필을 가지런히 깎아 지우개와 함께 필통에 넣어 주셨다. 그리고 매일 저녁이면 다음날 수업을 위해 필통을 열어 연필을 새로 깎아서 넣어 주는 것이 어머니의 일과였다. 그런데 나는 매일 연필을 잃어버리고 빈 필통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서는 점점 깊어지는 고민과 함께 혼잣말을 하셨다. ‘언니들은 안 그랬었는데…….’ 그러시면서 새 연필로 채워 주시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연필을 필통에 실로 꿰매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실은 단순한 실이 아니라, 어머니의 정성과 막내딸의 실수를 감싸는 사랑의 실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실을 통해 깨달았다. 선물은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 고급 포장지에 담겨 전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어머니의 실처럼 상대방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준비해 주는 것에도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또 다른 잊지 못하는 선물이 하나 더 있다.
재수까지 했지만 대학 입시 결과가 좋지 않아 우울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지낼 때 마침 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만나기를 원했지만 거절하고 집에만 있을 때였다. 중학교 동창인 친구가 집 앞으로 찾아왔다. 문 앞으로 나가니 예쁘게 포장된 선물과 카드를 건네주었다.
나는 친구에게 ‘들어오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친구는 어색하게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방안에 들어와 포장을 풀자, 작은 스케치북이 들어 있었다. 스케치북의 겉 표지에는 연 회색 종이위에 다른 색상의 종이를 덧대어 붙인 “어린 왕자”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표지를 넘기니 친구가 손수 그린 그림과 그 그림에 딸린 설명이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그림은 색연필로 그려져 있었고 글씨는 펜으로 한자 한자 정성껏 쓰여서 간결하고 아름다웠다. 친구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책이었다. 진짜 세상에 하나뿐인 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림책이었다.
아직도 그 책의 그림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첫 장에는 노란 머리의 어린 왕자가 파란 연미복을 입고, 긴 장화를 신고 펜싱 칼을 들고 서 있었다.
아마도 친구는 성인이 되면 잊기 쉬운 유년 시절의 순수함과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내게 그 책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과 글은 왕자가 우물에서 물을 푸는 그림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 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자, 단단하게 닫혀 있던 내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 문구는 입시 결과에 좌절하고 있던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방안에만 있던 나에게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아직 사막처럼 길이 없는 내 인생에서 숨어있는 우물을 찾아서 팔 수 있게 만들었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아직 젊다고 그 책이 나를 위로 했다. 이런 책을 선물을 하는 친구가 있는 나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학도 졸업하고 이제 새내기 직장인 티도 벗어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그 친구에게 의미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다가 내가 가장 힘들 때 그 친구가 나에게 선물한 책이 생각났다. 매일 들여다보며 용기를 주었던 그 책에서 그림을 골라 직조 공예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많은 그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우물을 푸는 그림을 골랐다. 도안을 그리고, 실을 골라 염색도 했다. 나무틀에 실을 한 올 한 올 걸어 친구를 생각하며 완성을 했다. 한 달간 퇴근 후와 주말은 약속도 안 잡고 작업에 매달렸다.
앉아서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허리가 아팠지만, 10년 전 친구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이어 나갔다. 작품이 완성되자 뿌듯했다.
액자에 넣어 친구 생일에 맞춰서 직접 친구의 집에 가져다주었다. 포장을 뜯은 친구는 놀라고 감탄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기가 선물한 그림책이 다시 벽걸이가 되어 돌아올 것을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아직도 그 벽걸이가 그 친구의 집에 걸려 있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하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구나 가족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모든 추억을 공유한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과 역사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단단한 끈으로 엮어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생의 최고의 선물이란 단 하나의 물건이 아니다. 나를 형성한 모든 기억과 그 속에서 받은 모든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다. 그 소중한 기억들이 나에게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나 역시 사회나 가족에게 받은 소중한 사랑을 타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을 완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유인
2004년 이민. 브런치 작가, 요양보호사.
당선 소감
전문적인 글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던 저에게 이토록 귀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부모님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 주었던 건 부모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저에게만 남아 있는 추억을 저만의 표현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이 추억들이 제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도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감사드리고, 옆에서 끝없는 조언을 해준 남편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심사평(김영수)
입선작 김유인님의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은 어린 시절에서 청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는 과정에 선물의 의미를 포개 넣어 사유를 이끌어낸 작품입니다. 가방이나 연필, 스케치북은 단순한 선물을 넘어 사랑과 우정을 은유하며 삶의 성찰로 이어지지요.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평범한 주제를 무심한 듯 펼쳐가는 기법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바탕을 이룹니다. 전반부의 다소 장황한 부분을 정리한다면 좀 더 함축미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화자가 받은 최고의 선물을 정의하는 메시지가 훈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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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