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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그대들은
김외숙의 문학카페
- 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
- Jan 07 2026 05:08 PM
지난 연말에 유독, 우리나라에서 날아 온 눈 감고 귀 씻고 싶던 일들이 많았다. 매일 들리던 소식은 비리에 대한 것이었고, 가족이 동원되고, 비리를 덮기 위해 비리를 더하고, 그것이 비리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부끄러운 줄 몰랐고, 그 중심에 권력과 돈이 있었다.
하나가 터지니 연쇄반응으로 여기서 저기서, 폭로로 이어졌는데 이미 썩어 문드러진 그들 세계의 비리는 국민만 몰랐지 공공연한 비밀이었던가 보았다. 그 불미스럽던 일들은 정화수 그릇 앞에 선 듯 조심스럽게 새해를 맞으려던 국민에게는 오물이 되어 새 아침의 식탁에 올랐으니 정치인 사이에 오간 돈과 권력과 그들의 입에서 쏟아진 언사의 부스러기였다.
실은 우리나라 정치가 말로서 품격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다. 평소 점잖았을 사람도 이상하게 그들만의 공간에 들어가면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들의 정치적 무기는 제대로 된 정책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격 있는 언술이 아니라, 크거나 작은 숫자를 뒷배경으로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상대편의 자존심까지 건드리는 거친 언사란 사실을 국민은 눈으로 귀로 지겹도록 보고 들었다.
그들은 왜, 고성능의 마이크 앞에서조차 목소리를 높일까?
훈련 등 특수한 목적이 아닌 한, 말의 설득력은 고성에 있지 않다. 그래서, 침묵이 금에 비유되기도 하지 않은가?
고성은 결국, 타당하지 않은 정책, 논리의 부재, 설득력의 빈약함을 스스로 알고 소리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오만한 무례에서 비롯될 것이다.
고성에 시달린 많은 국민은 그래서 숫제 눈과 귀를 닫는다고 한다.

픽사베이
이렇듯 이미 그들의 언행에 넌더리를 내면서 적응해버린 국민은 웬만한 고함에는 으레 그러려니 하더니, 화가 나도 단단히 난 일이 있었으니, 바로 새해 새 아침 밥상에 오른 어느 여성 정치인의 보좌관을 향한, 그 경조부박하던 언행 때문이었다.
‘한 자리 아이큐, 죽이고 싶다’는 등의, 문장에 올리기에도 부끄러운 언어가 정수리에 떨어졌을 때, 듣는 사람은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죽고 싶을 심정으로 말을 접었을 것이다. 소리는 접은 채, 소리의 격이 높은 학식이나 사회적 위치나 연륜에 있지 않음에 절망했을 것이다.
이 언어폭력을 다스릴 무서운 법은 없을까?
많은 젊은이가 그토록 지독한 언어폭력 속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줄 몰랐다. 엄마 같고 아버지 같고 형 같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수모와 이러한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며 사회생활을 하는 줄, 이제야 알았다. 끝까지 따라가 목숨 같은 밥그릇 떼기를 태연히 한 사람도 어른이라고 수종 든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그토록 가혹하게 대못질했으니,
목숨 같았을 밥그릇까지 떼어버리는 비정한 짓 저질렀으니.
어른이 어른 노릇 못했으니, 나이 먹은 자로서 대신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
부디 그대들은, 저지르고도 반성 모르는 우리 같지 않기를,
그러함에도 건강하고 성숙한 정신으로, 당당하기를.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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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련 기자 (press3@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