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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을 자처했으나 언제나 비범했던 우리의 ‘안스타’

영화전문 기자가 돌아본 배우 안성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11 2026 08:59 AM


2007년 1월 3일 저녁이었다. 서울 중구 충무로 삼겹살집이었다. 서른 명 남짓한 기자들이 함께 했다.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이 밥을 사겠다고 나선 자리였다. 두 사람은 2006년 9월 개봉한 ‘라디오 스타’가 “치유가 된 영화”라고 했다. 성원해준 기자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라디오 스타’의 이준익 감독과 정승혜(1965~2009) 영화사 아침 대표가 동석했다.

시종 따스한 웃음이 넘쳤다. 이 감독은 과장된 말투로 “나한테 돈 내라고 안 할 거지? 정말 성기형이랑 중훈이가 내는 거야?”라고 물으며 즐거워했다. 정 대표의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게 피기도 했다. 자리의 대미는 두 배우가 장식했다. 박중훈이 기타를 치며 ‘라디오 스타’ 삽입곡 ‘비와 당신’을 노래하자 안성기가 분홍 우산을 들고 옆에 섰다. 영화 속 장면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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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가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포근한 웃음처럼 그는 늘 주변 사람들을 배려했다. CJ ENM 제공

 

기자들은 그날 자리가 만들어진 진짜 이유를 이심전심으로 알았다. 정 대표는 암 투병을 하며 ‘라디오 스타’를 제작했다. 흥행(관객 187만 명)은 큰 재미를 못 봤다. 위로가 필요했다. 두 배우의 마음이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자리를 만들었다. 안성기는 말없이 특유의 ‘형님 미소’를 지으며 애정과 배려와 감사를 나타냈다. 배우 안성기보다 인간 안성기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추억이다.

2009년에는 이런 일이 있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2월 16일)한 다음 날로 기억한다. 안성기에게 전화를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에게 김 추기경의 선종에 대한 심정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는 “잠시 뒤 전화하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김 추기경 조문을 위해 명동성당에 가 줄을 서고 있었다. 추위가 꽤 매서웠던 때였다. 스타이면서도 평범하게 사람들 속에 살아가던 안성기다운 모습이라고 당시 생각했다.

2011년 봄 안성기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안성기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자리를 마련했다.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 영화제 홍보 담당이 법인카드를 들고선 당황해했다. 안성기가 이미 자기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손사래 치며 웃었다. 아무리 집행위원장이라도 영화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엄격함이 그의 미소에 어려 있었다.

안성기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주변인에겐 관대한 배우였다. 그는 촬영장에 늘 먼저 도착했고 가장 늦게 떠났다. 젊은 시절이야 하늘 같은 선배 눈치에 그럴 수 있었다고 하나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하는 현장에서도 그의 ‘업무 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안성기가 출연하는 영화의 감독이나 제작자는 배우와 관련해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 ‘스타 의식’ 없는 그가 배우들 중심축 역할을 하며 현장을 이끌어서다. 그래서 안성기에게 붙은 별명 중 하나가 ‘배우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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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맥심 모델로 나선 배우 안성기. 그는 CF모델로 나서기 전 영화배우 이미지를 해칠까 봐 술을 마시며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델이 된 후 30년 넘게 CF를 이어가는 성실함을 보였다. 동서식품 제공

 

영화계 주요 행사에는 늘 안성기가 있었다. 특히 영화인들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 그는 빠지지 않았다. 한국 영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처럼 누군가 앞장서서 영화계의 얼굴이 돼야 할 때면 안성기가 나섰다. 나이가 좀 있는 영화인들이 안성기를 “우리 안스타”라고 부른 이유이리라. 1980년대 중반 이미 톱스타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궂은일을 마다 않는 영화계의 진정한 별에게 따를 만한 애정어린 호칭이었다.

박중훈은 지난해 10월 낸 에세이집 ‘후회하지마’에서 “선배님(안성기)은 마치 성직자에 가까운 절제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봤다. “(가까이에서 보면) 성격도 급하고 승부욕도 대단한데… 절대 표현을 안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최근 만난 박중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성기 선배만 따라하면 배우 생활에 아무 문제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고 돌아봤다. 그는 홍파 감독의 말을 빌려 안성기를 “성실이라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된 한국 최초의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화려한 외모나 스크린 밖 구설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꾸준한 연기로 오래도록 사랑받았다는 점 때문이다.

안성기는 ‘황혼열차’(1957)를 시작으로 ‘노량: 죽음의 바다’(2023)까지 66년 동안 연기를 선보였다.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성실함’이다. 그는 늘 평범을 자처했으나 언제나 비범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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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가 지난 1998년 12월 4일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앞에서 스크린쿼터 폐지·축소 방침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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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imes.net/문화·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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